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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볼만한 전시: 파레노의 물고기, 김창열의 물방울에 홀리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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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18면

리움미술관에서 2월 말부터 대규모 전시를 할 필립 파레노의 설치미술 ‘내 방은 또 하나의 어항’. [사진 각 미술관]

리움미술관에서 2월 말부터 대규모 전시를 할 필립 파레노의 설치미술 ‘내 방은 또 하나의 어항’. [사진 각 미술관]

지난해는 경기 침체로 미술시장이 조정을 겪었지만 미술 관람의 저변은 더욱 확대된 해였다. 주요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의 2023년 티켓 매출을 보면, 프리즈 서울과의 공동 티켓 매출은 전년과 비슷했으며 키아프 단독은 두 배 늘었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전이 33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서울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이 개관 이후 최다 관람객인 25만 명을 불러들이는 등 여러 전시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리움 계열인 용인 호암미술관의 김환기 전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에 카텔란 전과 달리 유료였음에도 15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서울 성곡미술관의 원계홍 전처럼 입소문을 타고 뜻밖에 큰 화제가 된 전시도 있었다.

5월엔 뭉크, 9월엔 오지호 회고전

갤러리현대에서 5월에 작고 3주기 회고전이 열릴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 ‘회귀 SNM93016’. [사진 각 미술관]

갤러리현대에서 5월에 작고 3주기 회고전이 열릴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 ‘회귀 SNM93016’. [사진 각 미술관]

올해는 어떤 전시가 기다리고 있을까? 주요 미술관과 화랑이 내놓은 전시 일정을 보면, 세상을 떠난 거장의 대규모 회고전은 지난해에 비해 많지 않다. 올해 이러한 전시 중에는 5월에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작고 3주기 회고전이 있다. 갤러리현대는 그가 “물방울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사유”했으며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와 함께하는 15번째 개인전으로 그의 예술 작업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5월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시작하는 노르웨이 거장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전시가 있다. 뭉크의 ‘절규(비명)’는 미술 문외한조차 잘 알지만 그의 다른 작품은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에 착안해, 그의 덜 알려진 면모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다. 9월에는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오지호(1905~1982)의 대규모 기획전이 시작한다. 미술관은 오지호가 “전남 화순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그의 주요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한국 근현대 자수’전(5월~8월)에 나올 엄정윤의 자수작품 ‘민들레’. [사진 각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한국 근현대 자수’전(5월~8월)에 나올 엄정윤의 자수작품 ‘민들레’. [사진 각 미술관]

올해는 작고한 거장보다 동시대 스타 미술가들의 대규모 전시가 더 많다. 우선 리움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2월 말부터 여는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이 있다. 이번 전시는 리움의 역대 최대 규모 전시가 될 것이라고 미술관은 밝혔다. 프랑스 작가 파레노는 천장을 가득 메운 만화 말풍선 모양의 풍선과 녹아내리는 얼음 눈사람 등 위트 넘치는 설치미술부터 영화작품까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해왔다. 한국에서는 그룹전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미술관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리움의 호암미술관은 9월부터 화가 니콜라스 파티의 개인전을 시작한다. 파티는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화가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한국에서도 컬렉터에게 인기가 많다.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할 칸디다 회퍼의 사진작품. [사진 각 미술관]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할 칸디다 회퍼의 사진작품. [사진 각 미술관]

서울 국제갤러리는 5월에 독일 사진 거장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을 시작한다.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일원으로 장려한 공공 건축 공간을 인간이 없는 텅 빈 상태에서 찍은 사진으로 유명하다. 9월에는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독일에서 활동하는 북유럽 출신 작가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신작이 소개된다. 이들은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건축적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작가들의 개인전도 준비되어 있다. 8월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린다. 그는 건축물, 특히 그가 살아온 집들을 반투명한 천으로 재현해서 건축물의 혼령이나 건축물에 대한 아련한 기억 같은 느낌을 주는 설치미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 왔다. 작가는 “예전부터 나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것인데, 돌이켜 보면 그것이 다시 기억과 관련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9월에는 리움미술관에서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가 열린다. 작가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포자 같은 미생물을 작품 재료로 활용하는데, 이들은 공중을 떠 다니며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건축 관련 전시가 많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예 2024년 전시 의제를 ‘건축’으로 설정했다. 먼저 4월부터 7월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노먼 포스터 개인전이 열린다. 199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 건축가로서 UFO를 연상시키는 거대 고리 모양 애플 사(社) 신사옥(미국 캘리포니아) 등 하이테크 건축으로 유명하다. 또한 평창동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는 5월부터 8월까지 강홍구 작가의 불광동 사진 작업 컬렉션과 은평 뉴타운 사진 작업 컬렉션을 아카이브 차원에서 조망하는 전시 ‘도시-서울-나누기’가 개최된다.

요즘 핫이슈 생성형 AI 관련 전시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할 노먼 포스터의 ‘달 거주 프로젝트’. [사진 각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할 노먼 포스터의 ‘달 거주 프로젝트’. [사진 각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4월부터 9월까지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이자 최초의 여성 조경가인 정영선(82)의 반세기에 걸친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개인전을 연다. 서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호암미술관 희원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미술관은 이 전시로 “조경을 시각예술이자 종합과학예술의 한 분야로 조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7월부터 12일까지 ‘퍼포밍 홈: 대안적 삶을 위한 집’ 전시를 개최하는데, 200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주거 건축을 통해 삶의 다양한 공간과 환경을 살펴보는 기획전시다. 조병수·승효상·최욱·서재원 등 건축가 20여 명의 작품이 소개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최대 사회적 화두인 생성형 인공지능(AI)에 관한 전시도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과 연계해 4월부터 8월까지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 전시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미술가 필립 파레노와 피에르 위그가 1999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구입한 가상세계 소녀 캐릭터 ‘앤리(Annlee)’를 중심으로 한다. 2000년대 초에 18명의 아티스트가 이 캐릭터를 이용해 가상 존재의 미래적 모습을 예견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것을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현재에 되돌아보는 전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비슷한 기간에 ‘인공지능’ 전시가 열리는데 미술관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문제를 조망하고 기술과 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다.

올해 전시의 또 하나 화두는 여성이다. 호암미술관이 3월부터 시작하는 ‘여성과 불교’전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젠더의 관점에서 동시대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전시”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 해외 미술관이 소장한 불교미술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5월부터 8월까지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또한 ‘여성’이라는 화두에서 볼 수 있다. 자수가 주로 여성의 영역이었기에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되어 있었음을 인지하고 근대 자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김인숙·나사균·박을복·송정인·이신자·장선희·조정호·한상수 등 4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아시아 여성 작가’ 전시를 열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아시아 여성 예술을 신체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아키 사사모토, 파시타 아바드, 홍이현숙 등 3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이렇듯 올해 전시는 고전적인 블록버스터 전시보다 동시대미술 스타들의 개인전과 건축, 인공지능, 여성 등의 화두를 지닌 기획전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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