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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완의 중동 포커스

비대칭 보복에 싸늘해진 국제 여론, 이스라엘 움직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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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수완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중동이슬람전략모듈 교수

김수완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중동이슬람전략모듈 교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 사태’는 20세기 이후 중동에서 발생한 최악의 참사가 되고 있다. 지난 2일 기준으로 가자지구에서만 이미 2만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 규모다. 희생자의 74% 이상이 여성·어린이·노인 등 약자 계층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년 10개월여 동안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9800여명)와 비교할 때 가자 사태의 인도주의 재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비극을 초래했을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동안 잊히는 듯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하마스의 공격으로 수면 위로 재부상했고, 세계는 다시 중동과 팔레스타인을 주목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 된 상반된 세 약속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 지난해 12월 16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초대형 먼지 구름이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 지난해 12월 16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초대형 먼지 구름이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의해 체결된 세 가지 상반된 약속에서 갈등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벨푸어 선언’, 전후 아랍 독립국을 약속한 ‘후세인-맥마흔 협정’, 전후 중동 지역의 식민 통치를 약속한 프랑스와의 비밀 협약이 그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지난 2022년 기준 590만 명을 넘어섰다.

누가 봐도 승산 없는 전쟁을 선택한 하마스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급물살을 타고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과정은 가자 사태로 인해 잠정 중단됐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인지하기 시작했다.

민간인 2만2000명 이상 희생
바이든 “지지 잃고 있다” 경고
이집트는 3단계 휴전안 제시
하마스 증오 이스라엘이 변수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소(PCPSR)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마스에 대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주민의 지지도는 이전보다 크게 올랐다. 가자지구 주민 57%와 서안지구 주민 82%가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마스 궤멸, 인질 석방, 가자지구 위협 종식 등 이스라엘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러나 강경보수 연정을 통해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네타냐후 정권은 국내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었고, 마침 발생한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강경 대응은 군사적 사안을 넘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가자 사태 초반에 하마스 공격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국제사회 여론은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이 급증하면서 인도주의적 휴전 요청으로 돌아서고 있다.

대선 앞두고 고심 깊어지는 바이든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 여론에 반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인도주의적 휴전 요구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외교적 비난과 고립에 빠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악화하는 국내외 여론에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이던 젊은 미국 세대는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을 방관하는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학 내부 갈등의 격화는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사임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으로 국제사회에서 평판이 나빠지고, 민주당 내부 지지층조차 분열하는 상황에 이르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이 국제적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며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가자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난해 10월 18일 유엔 안보리의 논의로 시작됐으나 미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및 반대표 행사로 인도주의적 휴전에 대한 결의안 채택이 무산됐다. 지난 12월 22일 유엔 안보리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추가 지원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으나 즉각적 휴전 촉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가자지구 민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구호 확대 결의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근 이집트가 제시한 ‘3단계 휴전안’에 대해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확대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즉, 1단계로 2주간 휴전을 통해 하마스 인질 40명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120명을 맞교환하고, 2단계로 팔레스타인자치정부와 하마스의 통합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3단계로 하마스의 인질 전원 석방과 이스라엘방위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군 및 팔레스타인 통합 과도정부와 포괄적 휴전 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 궤멸을 전쟁 목표로 설정한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포함된 통합 과도정부를 인정할지가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2단계부터 난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도 전비 등 부담 요인 많아

가자 사태의 장기화는 이스라엘에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오는 2월까지 약 18조원으로 예상되는 전쟁 지속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고, 경제 활동에 종사할 예비군 30만명의 동원도 큰 부담이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하마스 지원 아랍 세력들과의 충돌도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예멘의 후티 반군의 공격과 이들의 중심에 있는 이란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채 상시적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일부 군병력 철수와 인질 협상에 대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협상 가능성은 가자 사태 국면 전환에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2022년 12월 우파 연정과 통과시킨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이 최근 이스라엘 대법원에 의해 무효 처리됐다. 이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추가적 악재와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연임을 위해 가자 사태의 조기 해결이 절실한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네옴시티를 주축으로 하는 ‘사우디 비전 2030’의 성공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안정과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자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원하는 것은 희생과 참사의 중심에 있는 가자지구 주민들이다. 결국 관련 당사자들과 주요 행위자들의 속내는 지금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휴전을 통한 사태의 마무리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는 미지수다.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는 중동 평화는 미봉책이자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수완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중동이슬람전략모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