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45년… 이제야 아버지 땅에/독립운동가 김성숙씨 아들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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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술학원 교수… 어머니는 중국인/산소·독립기념관 등 자취 돌아봐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Song of Arirang)을 보면 금강산 승려출신이라는 김충창이 나온다.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이 자기의 사상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목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김충창이 독립운동가로 임정 국무위원이자 광복후 혁신계 정치인으로 크게 활약했던 고 운암 김성숙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김성숙씨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면서 중국땅에 두군혜란 이름의 중국인 아내와 아들 3형제를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구나 드물다.
그 아들 3형제 중 둘째인 두건씨(57·화가)가 지난 12일 서울에 왔다.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하는 「중국 조선족 작가전」에 작품을 냈다가 개인적으로 족형뻘인 김서봉 미협이사장의 초청을 받고 이루어진 한국 나들이다. 두건씨는 북경 중앙미술학원 교수에다 중국미술가협회 이사직함까지 갖춘 중국에서는 꽤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서양화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귀국한 아버지로부터는 끝내 소식조차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그후 45년은 아버지를 향한 안타까운 기다림과 원망의 세월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부친 김성숙씨가 임정환국 제2진으로 고국에 돌아간 뒤 어머니 두군혜여사는 자기 성인 두씨를 붙여 개명한 겸·건·련 등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상해로 나왔다가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내전이 마무리되던 49년 다시 북경으로 이주했다.
어머니 두여사는 광동의 명망가에서 태어나 중산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여성.
김성숙씨와는 1920년대 후반에 처음만나 국경을 넘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끝에 결혼했다.
2차대전 종전후 남편과 헤어진 뒤로는 이른바 「신생 해방중국」의 교육건설·여성운동의 전면에 나서 활약했고,북경 2여중·북경 6중 담임교장을 끝으로 60년대 초부터 은퇴생활을 하다 76세 되던 지난 81년 지병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버지의 별세소식을 모르셨지요. 소식없는 아버지를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어머니에게서 단 한마디라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두건씨가 한국에서 살고있는 아버지의 본부인 소생 김숙녀씨(74)·김정봉씨(68)와 곡절끝에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88년 여름부터. 아버지가 어머니와 같은 지병인 천식으로 고생하다 69년4월 별세했다는 이야기를 배다른 누님 숙녀씨로부터 그때 처음 들었다.
서울에 온 뒤 파주에 있는 묘소와 독립기념관 등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두건씨는 『사후에나마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지하에 계신 어머니께선 얼마나 기뻐하실까요』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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