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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원경의 이코노믹스

저성장 늪에서 벗어나려면 규제 역설·족쇄 다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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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로 추정된다. 새해 경제성장률이 2.2%로 예상되는 만큼 성장률을 올리기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응용일반균형모형을 통한 기업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규제 완화 외에 다른 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 규제비용을 10% 줄이면 국내총생산(GDP)이 4.8% 증가하고 실업률이 0.14%포인트 감소한다.

탈규제화에 따른 자유경쟁 촉진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규제 정도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신사업출현 속도를 규제 정비가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다. 기득권 카르텔, 이해관계 갈등이 새로운 산업 성장을 제약한다. 새해 화두로 글로벌 수준의 규제 혁신을 제시하는 이유다.

비대면 진료, 초진 확대가 바람직

우선 새롭게 대두하는 성장 산업의 발판 마련을 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타다와 같이 택시 서비스를 대체·보완하는 혁신 모빌리티 플랫폼 도입을 금지한 데서 비롯된 기회비용은 막대했다. 택시기사 부족으로 택시 대란이 벌어지자 교통 대란으로 이어졌다. 신산업이 등장하면 기존 기업이나 기득권 집단이 변화에 맞서 갈등을 빚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조정에 실패한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비대면 진료도 바이오헬스 산업의 선진화로 바라봐야 한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예외적이면서 한시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를 최소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경우에는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도록 하고 상황에 따라 초진까지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 세계 대한민국 공관의 외교관·공관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 간 비대면 진료가 시행돼 국민은 비대면 진료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의료계 반발은 외국 사례를 볼 때 맞지 않는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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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재진만 주로 허용했으나 초진까지 확대하는 경우도 늘었다. 프랑스처럼 주치의와 비대면 진료를 하거나 주치의 의뢰서가 있을 경우 다른 의사와 비대면 초진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 초진 위험성에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가 주도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은 원격의료 진료비가 없다. 중국은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미국은 1997년 연방정부 메디케어에 처음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보험 급여를 실시했다. 일본은 2021년 8월 ‘온라인 진료 특례 조치의 항구화’를 공표하면서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2022년 초진 온라인 진료 허용과 초진 수가 신설을 했다.

바이오 헬스와 의료 서비스 등
신성장 산업에 규제혁신은 필수

달라진 기업 환경 변화 발맞춘
산업생태계 발전 위해서도 필요

기존 규제도 개선하고 정비해서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 유도해야

환자 데이터 제3자 전송 허용해야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은 연 3.9% 성장세를 보여 왔다. 2027년에는 약 700조~800조원까지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산업 육성 차원에서 환자가 동의할 경우에 의료기관이 제3자에게 환자의 의료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 데이터 활용을 통해 보험사가 고도화한 헬스케어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이 맞춤형 익명 데이터베이스(DB)를 보험사의 자료 활용목적과 신청내용에 맞도록 구축해야 함은 물론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국회를 통과했다. 규제 혁신의 효과가 제대로 발생하려면 의료계가 올 10월까지 관련 시스템 구축에 협조해야 한다.

대형마트 규제로 시장 왜곡 발생

규제가 오히려 새로운 경쟁자의 독점을 초래하고 기존 산업을 억누르는 경우도 있다. 기존 기업이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규제로 성장할 수 없다면 규제를 완화해 산업 생태계 혁신을 이뤄야 한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온라인 배송 관련 규제 혁신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현재 새벽 배송업의 절대 강자는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해 2023년 3분기까지 8조 원대 매출을 올리며 분기 최대 매출을 갱신했다. 영업이익도 2022년 3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국내 대형마트 3사 중 이마트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쓱닷컴’으로 수도권 일부 지역에 제한된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쓱닷컴은 용인과 김포 소재 물류센터로 서울과 인천, 경기 고양·의왕·성남·남양주·의정부 등 일부 수도권 지역에 새벽 배송을 한다. 수도권에서도 쓱닷컴의 물류센터와 멀리 떨어진 강동구 일부, 경기 하남·과천·시흥 등엔 새벽 배송이 안 된다.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이후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해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형마트를 주축으로 하는 오프라인 유통업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간 유통업계를 이끈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쇼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3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57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위는 쿠팡(37.7%), 2위는 네이버쇼핑(27.2%)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목적이 중소유통업 보호지만 해당 제도가 중소유통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대형마트 규제를 계속하는 것은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

규제 정비 부르는 달라진 유통 채널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이나 의무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 새벽 같은 영업제한 시간대나 의무 휴업일에도 매장에 있는 물건의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해야 이들 업체가 쿠팡과 경쟁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 해외 국가에선 대형마트 규제 정책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점차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 ‘경제현대화법’을 도입해 기존 출점 규제 대상 규모를 300㎡에서 1000㎡로 바꿨다. 오랫동안 제한해온 야간·일요일 영업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허용했다.

우리도 유통 채널이 혁신적인 변화를 거친 상황을 고려해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기업에 부과하는 의무 휴업과 온라인 배송 금지라는 이중 규제는 시장 왜곡과 소비자 후생을 후퇴시킨다. 10여년의 유통 규제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규제를 설계하면서 소비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적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고 협력해야 할 존재이다.

내국인의 도심 공유숙박 허용 필요

한편, 기존 규제를 푸는 게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옳기에 규제 정비를 단행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 영업에 제한을 뒀던 국가들도 최근 여행 트렌드를 반영해 그 제한을 푸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을 숙박용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지방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도 맞다. 지방소멸을 하소연하는 지역민에게는 생존권 보장과 같은 조치다.

내국인도 외국인처럼 도심에서 공유숙박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로 한정한 도심 공유숙박 사업 허용 지역을 경기·부산으로 확대해야 한다. 연간 180일로 묶인 영업 일수 제한도 풀어 관광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를 고려하면 이 같은 규제 개선이 관광객 유치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젊은 관광객을 중심으로 호텔 같은 전통 숙박 시설보다는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숙박 시설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 실제 국내 여행 시 공유숙박 등 민박 시설 이용 증가율은 펜션, 호텔보다 월등히 높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공유숙박시설을 운영하려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농어촌민박업’ 또는 ‘한옥체험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거지 일부를 손님에게 빌려주는 개념이라 호스트가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는 요건도 있다. 이러한 제도는 손질의 대상이다.

물론 규제를 없애는 것만이 규제 혁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새롭고 좋은 규제를 만드는 것도 규제 혁신일 수는 있다. 다만 다른 나라 사례를 참조해 소비자 편익을 위해 잘못된 규제는 과감하게 고쳐야 산업이 활성화하고 국민 후생이 증진한다. 규제 개선을 위해서는 방향성도 중요하다. 탑다운 방식은 국가 주도로 빠른 상황 대처에 효과적이다. 바텀업 방식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장점이 있다. 두 방식의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그런 소통을 통해 우리 경제가 새해엔 저성장의 늪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란다.

조원경 UNIST 교수 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