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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SF영화가 한국에서 유독 찬밥 신세인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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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더 문’(The Moon)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두 편 있다. 그중 하나는 국내 배급사에서 원제에 없던 정관사를 넣었다. 영국과 미국 합작 영화인 ‘문’(2009)은 홀로 달에서 근무하는 샘 벨의 얘기다. 그는 통신위성이 망가져 3년간 외부와 단절된 채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외롭게 지낸다. 3년간 헬륨3 채굴 일을 마치고 2주 뒤 지구로 귀환하려는 샘은 기지 안팎에서 환영을 본다. ‘문’은 제작비의 두 배를 버는 성공을 거뒀지만, 한국 내 관객은 1만4300명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듬해 휴고상 최우수 장편 드라마상을 거머쥔다. 2009년엔 ‘월-E’, 2011년엔 ‘인셉션’이 탔고 ‘소스 코드’(2012)와 ‘어벤져스’(2013), ‘그래비티’(2014), ‘인터스텔라’(2015), ‘마션’(2016)이 뒤를 잇는 그 상이다.

더문·승리호 등 잇단 흥행 실패
스타워즈도 한국에선 맥 못 춰
서구 과학 발전 뒤에는 SF 있어
한국은 영화서만 과학자 존중

영화 ‘더 문’의 스틸 컷. 대한민국의 유인 달탐사선 우리호가 달 상공에서 운석에 부딪치는 장면. [사진 CJ ENM]

영화 ‘더 문’의 스틸 컷. 대한민국의 유인 달탐사선 우리호가 달 상공에서 운석에 부딪치는 장면. [사진 CJ ENM]

‘더 문’(2023)은 한국의 ‘우리호’가 발사되는 뉴스로 시작한다.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유인 달착륙 도전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지만, 태양풍이 덮쳐 황선우만 살아남는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5년 전에도 같은 시도를 했는데, 공중폭발과 함께 전 대원이 산화했다. 정부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더 문’의 과학 자문을 맡은 필자는 흥행을 바랐는데, 스크린을 찾은 국내 관객은 51만 명에 그쳤다. 호의적인 SF 팬은 섬세하고 치밀한 시각특수효과(VFX)를 칭찬했지만,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줄거리와 개연성을 문제 삼았다. ‘더 문’은 북미와 독일·호주 등 155개국에 선판매됐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기생충’에 이어 역대 한국 영화 2위에 등극했다. 동시에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는 후문이다.

실망스러운 국내 SF영화 성적

최근 개봉된 국내 SF 영화는 흥행성적이 어땠을까? 류준열·김태리 주연의 ‘외계+인’ 1부는 154만 명, 공유·박보검 주연의 ‘서복’은 39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외계+인’은 런던에서 호평받았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국내 SF 영화의 인터넷데이터베이스(IMDB) 평점을 찾아봤다. ‘승리호’는 10점 만점에 6.5, ‘고요의 바다’는 6.9, ‘택배기사’ 6.4, ‘정이’가 5.5로 하나같이 실망스럽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의 대표작인 ‘스타워즈’의 국내 성적표를 보면 답이 있을까? 검색해봤다. 최저 관객을 기록한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21만 명, 최다 관객이 찾은 ‘깨어난 포스’도 327만 명에 그쳤다.

십수 년 전 호주국립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페니 사켓 학장은 교수와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스타워즈’ 광선검 20개를 공동구매해서 나눌테니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것. 광선검은 이틀 만에 동이 났다. 그녀는 나중에 호주의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가 된다. 그맘때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즈연구소장을 지낸 피트 워든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로 변장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5년 전, 필자가 천문연구원에 초청했을 때 피트는 ‘스타샷’(Star shot)을 소개했다. 제일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까지 광속의 15~20%로 나노 탐사선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브레이크스루 이니셔티브’를 이끌면서 여러 곳에서 ‘스타샷’ 협력을 제안했는데, 한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SF가 현실이 되는 시대

지난 10월, ‘더 문’의 김용화 감독과 함께 디지털 특수효과 영화제에서 관객 앞에 섰다. 감독은 영화 뒷얘기를, 필자는 과학자로서 느낀 것을 공유했다. 이어 12월 초, ‘더 문’을 주제로 연 포럼에 초청됐다. 우주인 이소연 박사와 진종현 VFX 감독, 항공우주연구원의 김방엽 박사와 필자가 패널로 참여했으며 우주정책연구센터 안형준 박사가 진행을 맡았다. 이 박사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고백했다. NASA 우주인 캐디 콜먼이 샌드라 불럭과 수시로 만난 얘기도 들려줬다. ‘그래비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진 감독은 과학자같이 연구에 몰입했다. 월면의 흙과 지형, 질감과 그림자, 크레이터 규모와 화면 속 느낌, 까만 하늘, 모든 게 철저한 계산과 분석으로 재현됐다. 착륙선에서 내려다보는 월면과 하강할 때 날리는 흙먼지도 마찬가지다. 지뢰가 터지는듯한 운석 폭격 장면도 컴퓨터그래픽과 VFX로 현실이 됐다. 극 중에 차관의 인터뷰가 나온다. “달에는 막대한 자원이 매장돼 있고 그중 헬륨3는 인류가 1만 년 동안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는 달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거죠.”

우리 국민은 우주인의 희생과 막대한 세금을 치르더라도 우주자원 채굴을 열망하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성탄 직후, 다누리호 폴캠(PolCam)으로 찍은 월면 지도가 공개됐다. 천문연구원이 만든 폴캠은 티타늄에 민감한데, 달 표면의 티타늄 분포는 헬륨3와 비슷하다는 게 핵심이다. 독자들은 지금, SF가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문’에는 남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고위 관료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현장과 호흡하면서 전문가들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 현실은 왜 SF보다 비현실적일까. 서구의 과학적 호기심과 기술적 도전 뒤에는 SF라는 뿌리가 있다. SF는 소재만 다를 뿐 오지 않은 현실과 미래의 이야기다. 흥행은 작품의 가치에 대한 상업적 평가인 동시에, 미학에 관한 그 사회의 이해와 관용을 대변한다. SF가 왜 한국에서 유독 찬밥신세인가에 대한 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