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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석무의 실학산책

지금 불행한가? 그러면 책을 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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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오늘 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저)를 읽었다.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던 다산 정약용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과 형(정약전), 제자들에게 보낸 한문으로 된 편지를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1979년 겨울에 초판이 나왔으니 무려 44년 전에 출간했지만, 중간에 글을 손보고 또 새로운 편지를 추가해서 다섯 번째로 간행되었으니 꽤 공력이 들어간 책임에 분명하다. 또 독자들의 호평까지 높아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책의 하나이다.

조선 최고의 학자, 사상가, 실학자, 대시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아들에게 전해주는 삶의 지혜, 형님과 학술 토론하던 깊고 넓은 학문, 제자들에게 전해주는 인간과 학문에 대한 높은 지혜가 빠짐없이 담겨 있는 세상에 드문 책의 하나임도 분명하다. 특히 아들이나 제자들에게 주는 편지에는 유독 효제(孝弟)와 독서를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고 독려하는 내용이 많아 우리의 마음을 끌게 하기에 충분하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독서야말로 사람이 따를 본분”
율곡 “선과 악이 책에 다 있다”
독서인구 줄어드는 세태 유감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선사가 그린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중앙포토]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선사가 그린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중앙포토]

효제를 실천하고 책을 끊임없이 읽어야만 올바른 인간이 되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거듭 강조해주는 점에서 확신에 찬 다산의 마음과 실학을 이해하게 해준다. ‘효제’란 부모 형제에게 잘하라는 인간의 도리로서 바로 천륜(天倫)에 해당하여 유교 사상의 첫 번째 덕목이다.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인간의 당연한 행실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독서’, 그 수많은 편지마다 독서가 빠진 글은 많지 않다. “독서 한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 많은 백성들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情狀)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이나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독서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本分)이다.”(제자 윤혜관에게 주는 글)

그렇다. 인간이 짐승이나 벌레의 부류와 다른 이유가 바로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있다고 했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짐승이나 벌레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독서가 바로 인간의 본분이라는 확언을 하기에 이르렇다. 인간이 행해야 할 본분을 다하지 않고서야 인간일 수 없다니,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해준 것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조선의 대현(大賢) 율곡 이이(李珥)도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성현의 용심(用心,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의 흔적(跡)과 착한 일은 본받고 악한 일은 경계해야 하는 내용이 책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聖賢用心之跡 及善惡之 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격몽요결』)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성현들이 책에서 가르쳐주기 때문에 책을 읽고 책 속에 어떤 일이 착한 일이고 어떤 일이 악한 일인가를 나열하여 착한 일은 본받고 악한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성현의 책에 있기에 성현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율곡의 뜻이다.

궁극적으로 율곡의 생각이나 다산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인간의 최고 목표는 성현의 수준에 이르는 일이다. 유학사상은 요순(堯舜)이나 주공(周公)·공자(孔子)를 최상의 성인으로 보고 효제를 행하고 독서를 통해서 요순이나 주공의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기 때문에 독서가 바로 성현으로 올라가는 길임을 밝힌 것이다.

다산은 더 나아가 불행한 사람이 불행을 극복할 유일한 길이 독서라는 사실을 첨가했다. 다산의 귀양살이로 집안이 폐족이 되었으므로, 폐족에서 벗어날 길 또한 독서 한 가지뿐이라고 까지 말했다. 성현의 수준에 이르는 목표로 독서를 해야지만 당장의 불행과 불우한 처지를 극복하는 일 또는 독서 한 가지뿐이라면서 어떤 경우에도 독서만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공자나 맹자의 책을 읽어야 성인을 알게 되고 율곡이나 다산의 글을 읽어야 현인들을 알게 된다. 그래야 인간이 짐승이나 벌레의 부류와 구별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세상, 이제 독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간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출판계는 울상이고 종이까지 천대받는 세상이 되어간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가는데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다산의 유배지 편지는 공개하려던 저술이 아니고 아들·형·제자들에게 보낸 사신(私信)이어서 더욱 그의 깊은 속마음까지를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감내하기 어려운 유배살이 중에 온갖 삶의 지혜를 상세하게 기록해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읽을수록 맛이 깊고 의미가 커서 나는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책이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