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기고] ‘토양 불소기준 완화’ 피해는 전체 국민, 특혜는 일부 이익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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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권리 ‘환경권’ 중요
‘환경권’을 외면한 사익추구
공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어

최상일 광운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

최상일 광운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

국민의 건강과 생태계의 안전을 위한 국가의 환경정책이 일부 이익집단의 요구에 따라 국제 동향에 역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우리의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한 마음으로 기고문을 시작할까 한다.

불소의 유해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 보고서에 따르면 불소에 대한 노출은 인체의 거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소아와 어린이 그리고 신장 또는 갑상샘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불소를 섭취하면 건강상 유해성이 더욱더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일부아동에게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발생 등 정신건강 및 어린이 발달장애 간의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 생태계 영향으로 불소의 식물 축적은 식물 성장을 저하하고 수확량의 감소를 유발하며, 곤충 및 가축의 생육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환경 기준치는 ‘환경권’ 확보 문제

최근 대한주택건설협회는 불소 오염토양에 대해 국가가 제정한 토양오염 법적 기준치가 매우 낮으니 현재의 400mg/kg보다 높은 값으로 완화를 요구하는 규제개혁심판을 신청했으며, 이에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지난 9월 25일 환경부에 인체·환경에 위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우려 기준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2023년 10월 17일자 설명 자료를 통해 ‘해외 불소기준 및 시험방법, 국내 불소 배경농도 수준, 위해성 평가 등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기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분명한 사실은 설정된 기존 환경기준은 다양한 학문, 규범적 믿음과 가치 그리고 일반적인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과학적 통찰력을 고려하는 복잡한 과정과 위해성평가를 거쳐 정립된 수치이다.

헌법상 권리인 ‘환경권’은 중요하다. ‘환경권’을 외면한 사익추구는 공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자 모 신문기사를 보면 ‘미국 8배, 일본보다 10배 세계 최강 불소 규제’라는 제하로 우리의 불소 토양오염기준이 너무 강해 공사 기간 지연 및 공사비가 증가되고 있다는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즉 환경오염 기준치는 국민의 행복권을 담보로 한 중요한 수치로 분명히 규제가 아님에도, 수치의 근원은 따져 보지도 않고 필요에 의한 수치만 골라 비교함으로써 마치 과대 규제인양 보도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런 식의 비유라면 덴마크는 우리의 400mg/kg보다 무려 20배 강한 20mg/kg을 토양 기준치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캐나다는 국토면적이 한국보다 99배나 넓지만 불소기준은 200mg/kg(농경지)으로 2배 강하게 설정되어 있다. 국토면적이 우리와 비슷한 오스트리아도 200mg/kg(농경지·주거지)으로 2배 강하게, 우리보다 조금 작은 리투아니아도 200mg/kg(농경지·주거지·공원)으로 2배나 강하게 설정되어 있다.

최근 자연기원 불소 함유토양에 대한 용출 연구에서 정제수로만으로도 전 함량 대비 0.03~2.43%가, 산성비에 노출되는 경우 0.17~31.7%까지 용출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항·경주 지역 418개 간이상수원 지하수의 광범한 수질조사 결과 다수의 시료에서 불소 농도가 먹는 물 기준치(1.5mg/L)를 초과하였다. 이렇게 불소 오염토양은 지하수 및 지표수의 수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주택건설공사는 특성상 지하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부지 전체를 굴착한다. 굴착 시 잘게 파쇄되는 토양은 비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물과의 접촉 면적도 증가하기 때문에 불소 등의 오염물질 용출이 급격히 증대해 자연 수계의 오염을 유발하여 이는 먹는 물과 지하수의 오염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위해성 평가로 정립된 현행 불소 우려기준 400mg/kg과 일본·독일·스위스 등과 같이 지하수·지표수를 연계하는 기준을 함께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소 토양오염기준, 국내 평균 농도보다 높아

국내 지질 특성상 자연기원 불소 오염토양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우리나라는 생활지역과 농업지역 등 엄격히 관리되어야 할 1지역 토양의 불소 평균 배경농도는 229.6mg/kg으로 오염기준 400mg/kg 보다 월등히 낮은 값이므로 합리적인 불소 기준 설정에 국내 불소 배경농도를 연계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일례로 2022년 9월 15일 기준 서울특별시 사업시행인가 자료에 의하면 사업추진 부지 총 162개 중 37개 현장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며, 그중 오염이 발견된 현장은 10개소이다. 즉 사업추진 부지의 6.2% 정도에서만 정화가 필요한 셈이다.

또한 주택건설의 특성상 지하공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토양이 굴착되어 건설부지 밖으로 반출되므로 반출된 오염토양을 외부 토양정화업체에서 정화 처리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추가 공사 기간 지연은 발생하지 않는다.

즉 국가 기준치가 잘못되어 주택건설 진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과도한 주장이며, 토사 굴착 및 반출로 인하여 공사 기간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토양정화를 위한 행정절차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공사지연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는 행정절차를 간소화한다면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오염토양을 정화 처리하지 않고 건설 토사로 무단 불법 반출되는 사례가 너무 많으므로 이와 같은 행위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환경부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기대하며

만약 불소 토양오염 기준치를 올린다면 기존 기준치와 상향된 기준치 사이의 정화되지 않은 불소 오염 토양은 전국 어디에나 뿌려질 수 있다. 건설 전 땅속에 존재하던 불소 오염토양은 굴착으로 파쇄 및 미세화되어 오염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 지역의 주거지 건설현장, 농경지 복토, 운동장, 공원 조성 등에 사용된다면 국민의 불소 노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원래 불소 오염토양과 전혀 상관이 없는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건강과 재산상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즉 환경 기준치는 다른 분야의 규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우리의 환경부도 미국의 환경보호청 같이 독립성과 독자성을 확보하여 규제 완화라는 미명하에 일부 이익 집단에 특혜를 주어 대다수의 국민이 피해를 보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오염부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특정 주택업체의 바람과 민원으로 국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체·환경에 위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라는 미명하에 정부도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환경부가 법을 제정함에 있어 주요 목적은 환경오염과 환경 훼손을 예방하고 환경을 적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이다. 따라서 이에 걸맞게 독립성과 독자성을 갖춘 환경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독자적인 입장에서 환경부는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합리적인 기준안을 제시해 주기를 바라며, 차제에 다음의 4가지 사항도 반드시 함께 고려하여 주기 바란다.

첫째, 현재 23개인 토양오염물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 추가 지정이 필요하다. 둘째, 기존 우려기준과 지하수·지표수를 연계하는 기준을 함께 적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셋째, 건설 토사로의 오염토양 무단 불법 반출이 금지돼야 한다. 넷째, 공사 지연 방지를 위해 토양정화 행정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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