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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태준의 마음 읽기

폭설과 연말의 시간을 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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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제주에는 지난주에 폭설이 내렸다. 어느 시간에는 흰 쌀알 같은 싸라기눈이 떨어지더니 또 어느 시간에는 눈보라가 매섭게 치고, 바람이 잦아들면 함박눈이 소복이 내렸다. 세계가 거대한 흰 빛 덩어리 같았다. 담장의 돌에도 흰 빛이 쌓이고, 오가는 길, 장독대, 지붕에도 흰 빛이 앉았다. 국화의 마른 꽃 마른 잎에, 막 꽃망울을 맺은 수선화에 흰 빛은 돌았다.

나는 눈이 올 때면 뒷집에 가서 텅 빈 마당을 한참 동안 지켜보곤 한다. 뒷집은 먼 친척의 집인데, 사람이 살지는 않는 빈집이다. 이 빈집 마당에 눈송이가 붐비는 것을 보곤 하는 것인데, 내리며 날리는 눈송이의 운동과 빈 마당의 오랜 적막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게 된다. 눈송이는 움직이고 또 움직이려고 하고, 고요를 견고하게 고집하는 빈 마당은 눈송이의 움직임을 묶어놓으려고 한다. 나는 눈이 오는 날에 본 이런 풍경과 정취를 졸시 ‘뒷집’을 통해 노래했다. 시는 이러하다.

“사람 없는 뒷집/ 빈 마당은/ 고요가 나던 곳// 오늘은 눈발 흩날려// 흰 털 새끼 고양이/ 다섯이/ 뛰는 듯// 움직이는/ 희색(喜色)// 그러나// 고요를 못 이겨/ 눈발이 멎다”

폭설 내린 세계는 흰 빛 덩어리
소거와 재생의 시간 함께 살아
팔풍 불어도 우리 삶은 계속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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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고, 눈이 멎는 날을 살다 보면 두 개의 시간이 교체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나는 눈송이가 내리고 쌓이는 시간이요, 또 하나는 쌓인 눈송이가 녹아 물이 되는 시간이다. 이 두 개의 시간은 물론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앞의 시간이 무언가를 단단하게 붙여서 꼭 봉하는 밀봉의 시간이라면 뒤의 시간은 봉하여 두었던 것을 떼거나 여는 개봉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하므로 앞의 시간은 지워 없애는 소거(消去)의 시간이요, 뒤의 시간은 다시 살아나는 재생(再生)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연말의 시간과 다가올 신년의 시간도 앞서 말한 두 개의 시간에 견줄 수 있을 법하다. 눈송이는 한 해의 시간을 덮고 봉하고 잊게 하지만, 물이 되는 시간은 흰 빛이 사라지고 대지의 황토 빛이 다시 드러나면서 새로운 생명 활동과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때에 이르러 돌아보니 크고 작은 일이 적지 않았다. 팔풍이 불었다. ‘종용록’에는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여덟 가지의 바람이 내게도 불었고, 그 팔풍에 마치 격랑에 휩싸인 배처럼 내심(內心)이 요동쳤다는 생각이다. 초연할 수가 없었다. 여덟 가지의 바람이란 자신에게 이로운 것, 자신에게 불리한 것. 나쁜 평판을 듣는 것, 좋은 평판을 듣는 것, 남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 남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거나 비판받는 것,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 즐거운 일을 겪는 것이 그것이다. 헤아려보면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 않았다. 특히 관계의 인연이 다하는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뒤따랐다. 누군가 세연(世緣)이 다해 내 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슬픔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흙이 여기저기 조금씩 눈에 띄었다. 눈이 녹아 물이 되었기에 흙은 충분히 젖었고 심지어 비옥해 보였다. 텃밭에 심어놓은 파는 더욱 푸릇푸릇해 보였다. 파는 아무렇게나 심어 놓아도 뿌리를 내려 바로 선다고 하더니 폭설에도 오히려 더 자란 듯이 보였다. 늦가을까지 바질의 잎을 땄는데 이제 바질은 마치 다 털고 난 깻단처럼 그 선 자리에서 그대로 말랐다. 물기가 없다. 그래서 어제는 바질을 뽑았다. 하지만 바질의 씨앗이 땅 곳곳에 떨어져 굳이 바질 씨앗을 뿌리지 않더라도 새봄이 되면 곳곳에서 움트고 자라고 향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화단의 화초들의 마른 줄기도 잘랐다. 마른 꽃들의 푸석푸석한 얼굴을 떠나보냈다. 마른 줄기를 자르다 보니 벌써 밑동 쪽에는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거기에도 생멸(生滅)이 있구나 싶었다. 소거의 시간이 있었고 동시에 재생의 시간이 함께 있었다.

눈이 물로 바뀌는 시간이 되자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무거워져 곧 무너져 내릴 듯하고 눈보라가 칠 때는 새가 보이지 않더니 눈이 멎자 새가 가장 먼저 다시 날기 시작했다. 더 고음(高音)으로 우는 것 같았다. 맑고 명랑하게 빛나는 소리였다. 새들은 동백나무에도 내려앉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동백나무에 앉아 붉은 동백꽃 곁에서 노래했다. 나는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잔설을 치웠다.

폭설의 전후에도, 연말과 연시에도 생활은 계속된다. 귤밭에는 귤을 따느라 분주하다. 나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연락과 우편물을 받았고, 신년 달력도 배달되어 왔다. 눈송이가 세계를 하얗게 덮고, 또 그 눈송이가 물이 되는 동안에도 말이다. 그렇게 삶의 시간은 계속된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