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DJ 만난 뒤 “할 수 없구나, 반도체 포기”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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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14면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⑤ 험난했던 반도체 빅딜 비화

1999년 1월 28일 LG반도체 청주·구미·서울공장의 근로자들이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현대전자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중앙포토]

1999년 1월 28일 LG반도체 청주·구미·서울공장의 근로자들이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현대전자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LG 그룹이 전자산업을 하는 한 반도체는 꼭 필요한 것이고 그걸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LG반도체와 현대반도체가 빅딜 대상으로 된 이상 이를 합리적으로 풀어갈 묘안이 없을까 궁리했다. 그리하여 낸 아이디어가 LG와 현대가 50:50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LG의 청주공장과 현대의 이천공장은 지금처럼 각사가 그대로 운용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R&D)과 신규투자만 지주회사에서 결정하면 과잉투자 문제는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계안 현대 전무도 그 안이 좋겠다고 동의했다. 구자경 LG 회장을 찾아가서 설명했더니 “구씨와 허씨가 동업해서 사이좋게 지내오고 있는데 정씨(현대)와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안을 가지고 강봉균 경제수석을 만났다. 강 수석은 “50:50은 안 된다”며 반드시 경영주체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기통신을 보세요. 코오롱과 포철을 50:50으로 해 놓으니까 신규투자도 기술도입도 개발도 제대로 합의가 안 돼 못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반도체는 첨단기술인데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업종 아닙니까”라고 하면서 한사코 7:3 비율로 경영주체를 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양사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통합법인의 경영주체를 정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LG·현대 7시간30분 협상에도 평행선

이렇게 하여 10월 15일 구본준  LG반도체 사장과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을 전경련에서 만났다. 경영주체를 선정하기 위해 먼저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전문평가기관을 정하고 평가항목을 결정해야 했다. 양사가 조금도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오후 3시30분에 회의를 시작해 밤 11시까지 7시간30분 동안이나 협의를 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중에 각 사에서 5개씩 골라 전경련에 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제시한 회사 중에는 분명히 한 두 군데 겹치는 회사가 있을 것이고, 양측에서 공통으로 추천한 회사를 선정하면 불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쪽 명단을 펴 보니 한 군데도 일치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제시한 5개 회사 외에 3개를 더 써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일치하는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궁리 끝에 절충안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상대방이 제시한 회사 중에 하나씩 골라 두 개의 회사로부터 평가 결과를 받아 협의하면 경영주체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가 동의를 했다. LG 측은 현대가 추천한 에이티커니(AT Kearney)를, 현대는 LG가 추천한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를 선정했다. 평가기준에 대해서는 재무구조, 기술능력 등등 5개 항목에 합의했다. 양사 대표는 회사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먼저 LG에서 전화가 왔다. 자기들이 선정한 베인앤드컴퍼니가 과거 현대의 일을 한 실적이 있어서 평가가 현대에 유리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까 현대 측에서 자기들이 선정한 에이티커니가 과거 LG와 프로젝트를 한 실적이 있어서 평가가 LG 측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통고해 왔다. 다시 양사 대표를 전경련으로 오게 했다. “그 동안 두 회사가 제시한 회사가 모두 16개다. 내가 이 16개를 제외한 세계 100대 컨설팅 회사 중에서 하나를 골라 제시하면 수용하겠느냐”고 했더니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ADL(Arthur D. Little)을 제시했다. 양사 모두 동의해 주었다. ADL은 기술 분야에 특장을 지닌 컨설팅 업체로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MIT 교수가 만든 회사로 미국에서도 명성이 높은 곳이다.

세계적 컨설팅사 ADL의 평가 보고서. 반도체 통합법인 경영주체로 현대전자가 적합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손병두]

세계적 컨설팅사 ADL의 평가 보고서. 반도체 통합법인 경영주체로 현대전자가 적합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손병두]

우여곡절 끝에 11월 11일 ADL이 평가기관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할 수 있었다. ADL은 세계 도처에서 일하던 반도체 컨설턴트들과 평가 전문가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았다. 발표 예정 기일은 다가오고 있는데 LG반도체공장 현지 조사 등이 지연되고 있었다. 나는 ADL코리아의 정태수 사장을 불러 ADL이 LG의 공장방문도 못했는데 기술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정 사장은 현장을 보지 않고서도 기술평가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반도체 기술평가는 유저(사용자)들이 제일 잘 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LG의 반도체를 사용해 본 업체를 통해 기술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이 언론에서는 반도체 빅딜 무용론이 잠시 거론되기도 했으나 김대중(DJ) 대통령이 12월 14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반도체 통합 약속을 지켜라”고 강하게 말함으로써 빅딜 무용론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ADL은 경영주체 선정기관으로 선정된 지 40여일 만인 12월 23일 실사보고서를 냈다. 평가 결과는 현대전자가 통합법인의 경영주체로 더 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LG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ADL을 상대로 미국법원에 소송을 내겠다며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나는 LG 측에 “반도체 대신 대산석유화학단지를 전부 가져가서 석유화학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면 어떤가” “아니면 데이콤을 인수해서 앞으로 유망한 통신사업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루는 청와대 김중권 실장이 나를 보자고 했다. 김 실장은 지금 LG 주장과 현대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데 전경련 의견은 어떤지 제시해 달라고 했다. 김우중 회장에게 보고했더니 한쪽 란에는 LG 주장을, 다른 쪽 란에는 현대 주장을 쓰고, 전경련 란에는 ‘정부의 의견에 따르겠음’이라고 써서 제출하라고 지시해 그렇게 했다. 1998년 연말이 그렇게 지나갔다.

DJ ‘뉴욕 외채협상 난항’ 신문 보여줘

1999년 5월 20일 현대와 LG 그룹 ‘반도체 빅딜’ 계약 후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회사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LG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1999년 5월 20일 현대와 LG 그룹 ‘반도체 빅딜’ 계약 후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회사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LG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1999년 1월 6일 오후에 구본무 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래서 통합을 원치 않던 LG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 6시 뉴스에 LG가 반도체 지분 100%를 현대로 넘기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는 급히 LG 빌딩 구본무 회장실로 가서 “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진짜 다 넘기기로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구 회장의 답은 이랬다. “청와대에 가 DJ를 만났더니 그 날 조간 신문을 내 앞으로 툭 던졌다. 신문에는 반도체 빅딜이 지연되어 뉴욕에서 외채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순간 ‘아 할 수 없구나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왕 넘기는 김에 100%를 다 넘기는 것으로 했다.”  뒤이어 내가 “아무 조건 없이 넘겼습니까?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구 회장은 “데이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반도체를 빼앗긴 회장이 됐습니다. 종업원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고 했다. 구 회장으로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몰린 끝에 내린 불가항력의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되지만 그 자리에선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마음이 착잡했다. 구 회장은 “(전경련이 결정한 평가방식에 따라 반도체를 내놓게 되었으니) 앞으로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나가 허허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수야 없지만 회원사로서 할 일은 다하겠다”고도 했다.

LG는 1월 7일 각 언론사에 “LG는 반도체 빅딜 문제가 우리나라 전체 산업구조 조정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대승적 차원에서 LG반도체의 모든 지분을 현대전자에 100% 양도키로 전격 결정하였음”이라는 보도자료를 팩스로 보냈다. 그 후 현대가 LG반도체의 인수과정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5월 20일 LG와 현대는 서울코리아나호텔에서 반도체 사업 부문 통합을 위한 주식 양도 계약을 했다. 7월 8일 현대는 양수도 대금 조건을 이행하고 LG반도체 주식을 넘겨 받았다. 주식 양수도 계약금은 2조5600억원이었다. LG의 데이콤 인수는  지분 보유제한이 풀려 데이콤 지분 24%를 4465억여원에 인수받음으로써 마무리 됐다. 사실 반도체를 내놓긴 했지만 좋은 가격에 넘긴 데다 데이콤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으니  LG는 밑진 장사를 한 게 아니라 실익을 챙긴 것이란 평가가 업계에서 나돌았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전경련 일을 하는 동안 반도체 빅딜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상식으로는 LG나 현대가 삼성과 함께 서로 경쟁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해 나간다면 우리나라가 더 큰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반도체 경기는 사이클을 그리기 마련인데 지금은 일시적으로 과잉투자처럼 보이나 수요가 회복되면 금방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고 우리가 앞으로 키워야 할 첨단산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경영주체를 하나로 정하지말고 50:50의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강하게 정부에 설득하려 했지만 내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참으로 아쉬운 빅딜이었다.

그 뒤 현대반도체의 후신인 하이닉스반도체가 채권단에 의해 매물로 나왔을 때 구자경 LG 명예회장을 찾아뵙고 “이 참에 LG가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1년 전이면 돈을 벌었을 텐데 지금은 매력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반도체에 매력이 없어졌다고 해서 다소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빅딜 이후 구본무 회장은 전경련에 대한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회비도 어느 그룹보다 서둘러 냈고 전경련 일에 협조적이었다. 구본무 회장은 경기도 곤지암 CC로 회장들을 초대하여 골프를 친 후 만찬 때 그 유명한 ‘구본무 특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계속〉

손병두. 동서투자자문 사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강대 총장, KBS 이사장, 호암재단 이사장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서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하며‘빅딜’과 구조조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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