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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회 정략적 탄핵소추 남발 막을 장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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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

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

탄핵소추가 남발되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 169명이 발의한 검사 2명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거의 같은 탄핵소추안을 지난달 9일에도 발의했으나 갑자기 철회하고 재발의했다. 탄핵소추안에 붙인 증거자료의 대부분은 언론 기사였다.

손준성 검사 탄핵소추안은 1차 소추 때 증거자료 13건 중 12건, 2차 소추 때 증거자료 14건 중 13건이 언론 기사다. 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은 1차 소추안 증거자료 9건, 2차 소추안 증거자료 12건이 모두 언론 보도였다. 이정섭 검사는 최근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해왔다.

야당, 언론보도 모아서 소추 강행
국회조사도 생략 가능해 부작용
권한 정지 다툴 가처분 도입 필요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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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는 사실관계가 최종 확정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가 언론 기사를 모아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현행 국회법에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은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조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의결서가 송달된 순간부터 소추된 공직자의 권한이 정지된다. 사표도 수리할 수 없다. 이처럼 영향과 파장이 매우 큰데도 국회는 조사도 거치지 않는다. 발의해 72시간 이내에 의결하면 그만이다. 탄핵소추안을 법사위에서 조사하자는 의안이 제기됐으나 가볍게 부결됐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60년 전에 예견한 전문가가 있었다. 탄핵제도는 1948년 제헌헌법부터 도입됐지만, 구체적 절차가 법률로 정해진 것은 1964년의 일이다. 당시 공화당 의원이자 헌법학자였던 이종극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탄핵소추안을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한다’로 명시했다.

그런데 당시 국회 운영위가 그 대목을 ‘조사하게 할 수 있다’로 고쳤다. 그러자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 전문위원은 “탄핵소추는 탄핵 사유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 경우에 의결하는 것이므로 법률적으로 그 위법 여부를 미리 조사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예비심사 기관이 법사위가 되든 특별위원회가 되든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지금처럼 압도적 다수당이 탄핵소추를 주도하면 국회 법사위 조사도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헌법학계에서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 소추 대상자의 권한이 정지되도록 한 헌법 제65조 제2항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가 2005년 발간한 ‘현행 헌법상 헌법재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보면 탄핵소추안 의결로 권한 행사가 자동 정지되는 나라는 핀란드·칠레·멕시코 정도다.

탄핵소추로 인한 권한 정지에 대해 가처분으로 다툴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구속된 피고인이 보석허가를 청구할 수 있고, 행정처분을 받은 사람이 집행정지를 신청할 수 있듯이 탄핵 소추된 자가 권한 정지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 가처분 절차를 보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가처분은 대체로 탄핵소추안 가결 후 이른 시점에 절차가 진행될 것이고, 헌재는 초기에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언론 기사를 모아 붙인 정도의 탄핵소추안으로는 가처분이 쉽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무작정 권한부터 정지시키고 보자는 정치적 꼼수는 실현되기 어려워진다. 탄핵 소추안 의결 시 자동 권한 정지 조항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헌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가처분 도입 방안이 더 현실적이다. 국회 법사위 조사 의무화와 함께 가처분 제도가 도입된다면 졸속 탄핵을 예방하는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첫 탄핵심판은 2004년, 탄핵소추가 지금처럼 남발된 것은 2020년대 들어서다. 1964년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탄핵소추의 실현 가능성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전문위원의 경고는 무시됐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 야당은 자신들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사를 너무 쉽게 탄핵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를 간과해 잘못 설계된 제도를 조속히 바로잡는 것이 다음 국회의 과제다. 59년 전에 국회가 잘못 설계한 법률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해 선견지명을 보여준 국회 전문위원의 이름을 소환한다. 그의 이름은 ‘한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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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