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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여당의 땅 짚고 헤엄치기, 전국구 기억하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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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파란만장한 한국의 비례대표 선거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민주주의의 꽃 중의 하나는 다수결에 의한 선거제도이다. 국가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가 국가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 반영되기 때문이다. 1인이나 소수에 의한 독재를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민주국가뿐만 아니라 독재국가에서도 스스로 독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선거제도를 이용한다.

다수결 선거제의 맹점 보완 목적

문제는 다수결 선거제도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소수에 비하여 다수의 행복은 중요하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의사가 반영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여기에서 ‘절대’는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또한 ‘절대’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 역시 정치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 선거제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비례대표제도이다. 한국과 같이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의견은 그대로 사표(死票)가 된다. 복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도를 통해 사표를 방지할 수 있지만, 거대 양당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면, 중선거구에서도 소수 정당의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1963년 첫 도입…의석수 1위 당에 절반 나눠주며 입법부 장악
1972년 유신으로 유정회 탄생,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 지명
1980년 신군부 전국구 부활…의석수 1위인 정당에 3분 2 배정
다수의 횡포에 실종된 소수 의견, 이번엔 반드시 선거제 고쳐야

득표율 37% 자유당, 의석은 과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거대 여야의 표 계산 속에 소수 정당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진보 계열 정당인과 시민단체들. [연합뉴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거대 여야의 표 계산 속에 소수 정당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진보 계열 정당인과 시민단체들. [연합뉴스]

또한 득표율과 지역구 의원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1954년 선거에서 36.8%를 득표한 자유당은 전체 203석의 과반수가 넘는 111석의 지역구를 차지했다. 1963년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이 33.5%의 득표로 지역구 131석 중 88석(67%)의 의원을 배출했다. 1978년 총선에서는 야당보다 적은 득표율을 기록한 민주공화당이 지역구에서는 신민당보다 7석을 더 많이 차지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례대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63년 이후 비례대표제도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전국구’였다. 지역구에서 131명, 전국구에서 44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다. 전국구 의석은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었지만, 의석수 1위 정당의 득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전국구 의석의 2분의 1을 배분하도록 규정되었다.

득표율과 관계없이 집권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제도로 이용된 것이다. 전국구 제도를 통해 여당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 당시 총선의 결과 33.5%를 득표한 민주공화당에 22석, 20.1%를 득표한 야당에 14석의 의석이 배분되면서 민주공화당은 전체 175석 중 110석의 과반 이상 다수 정당이 되었다.

거대 양당의 횡포, 비례제 퇴색

1970년 전국구와 관련된 국회의원 선거법이 개정되었는데, 전국구 의석 배분의 기준을 지역구 5석 이상(이전 3석 이상), 득표율 5% 이상 얻지 못한 정당에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지 않기로 하면서, 거대 양당 외에는 국회의원이 나올 수 없도록 했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의 합의는 소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비례대표의 취지를 더욱 퇴색시켰다.

1972년 유신체제가 시작되면서 전국구는 사라지고,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지명하는 유신정우회가 탄생했다. 거대 양당이 지역구의 2분의 1 정도를 양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지명하도록 했으니, 집권 여당이 자연스럽게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수를 차지하도록 고안되었다.

1978년 12월 12일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은 야당보다 더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68개 지역구 의석수에 77개 유신정우회 의석수를 더하여 총 145석(신민당 61석)으로 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제명은 거대 여당의 힘으로 가능했지만, 역설적이게도 10·26 사태의 중요한 배경의 하나가 되었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로 배정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오면서 정상적인 국회의원 선거제도로의 회귀가 예상되었지만, 12·12 이후 권력을 장악해 나간 신군부는 5·17 계엄선포를 기점으로 입법부 장악을 위한 전국구 제도를 부활하였다. 의석수 1위인 정당에 전국구의 3분 2를 배정하도록 한 것이다. 게다가 득표율이 아닌 지역구 의석수로 전국구 의원을 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야당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허수아비 야당이 있는 상황에서도 35.6%의 득표밖에 얻지 못했던 집권 여당은 61석의 전국구 의석 덕분에 국회 의석 전체의 54.7%를 가져갔다. 1985년 총선 역시 비슷한 결과였다. 신군부의 여당은 득표율 35.25%로 전체 야당이 얻었던 60% 이상의 득표율에 뒤졌지만, 전국구에서 61석을 확보함으로써 전체의 과반이 넘는 148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규정

여당은 낮은 득표율에 당황했고, 이듬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였다. 전국구 제도를 이용한다면, 내각제 개헌을 통해 계속 집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전국구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제1당인 여당에 가던 전국구의 3분의 2가 2분의 1로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갔을 따름이었다.

덕분에 과반은 아니지만, 34%의 득표율로 41.8%의 의석을 가져갈 수 있었다. 1991년에 가서야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전국구 규정이 바뀌었지만, 득표율이 아닌 지역구 의석수로 비례 배정하도록 했다.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적은 득표율로도 특정 지역에서 더 많은 지역구 의석수를 확보함으로써 전국구 배정에서 특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해결 못 해

1996년 지역구 의석수가 아니라 득표비율에 따라 전국구를 배분하도록 선거법이 개정되었고, 2000년 총선에서는 전국구가 ‘비례대표’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한 비례대표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1년 헌법재판소는 특정 정당 소속 후보자 1인에 대한 투표를 통해 정당 지지도를 계산하여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왜냐하면 특정 선거구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냈을 경우 후보자와 지지 정당을 분리하여 투표할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특정 지역에 후보자를 내지 않았을 경우 그 지역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선출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무소속 후보에 대한 투표는 비례대표 선출에 반영될 수 없었다.

취지 못 살린 준연동형 비례대표

이에 따라 2002년 지방정부 선거, 2004년 총선부터 1인 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비례대표의 여성 배려가 50%로 상향되었다. 여기에 더해 소수 의사를 좀 더 배려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2019년부터 도입하였다.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를 보장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50% 한도 내로 완화한 제도였다.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출발부터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소수 의견을 더 무시하는 제도가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처럼 여론이 극단적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소수 의견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거대 양당의 횡포로 지역구 5석이나 득표율 5% 이상을 얻지 못한 정당에 전국구 의석을 배려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정당등록을 취소했던 민주화 이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비례대표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개선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비례대표도 유권자가 선택해야 한다. 비례대표를 정당이 정하는 현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당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원하는 비례대표를 선택할 수 없다. 이 점은 직능대표를 정당이 추천하지 않고 직능단체에서 선출하는 비례대표 선출방식의 변화와 연동되어야 한다.

위성정당 막고 권역별 대표제로

권역별 비례대표 역시 필요하다. 전국의 득표율로 비례대표를 선출한다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현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특혜를 누려왔던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정당의 출현이 특정 정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 역시 필요하다. 아베 정부의 보통헌법 개헌을 막았던 것은 연립 정당인 공명당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다수의 행복에 의해 희생되는 소수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다수와 소수 사이의 차이가 10%도 되지 않는 현실, 그리고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고립된 소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 소수의 의견이 반영된 제도가 필요하다. 늦지 않았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