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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란 ‘루비콘강’ 건넌 러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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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기원전 49년 명령을 어기고 로마로 진군하던 줄리어스 시저는 당시 반역죄에 해당하는 그 강을 건너겠다고 장군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루비콘강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에 올랐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난 30년간 러시아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 차원에서 동북아에서 이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때론 미국과 한국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양보하도록 하면서도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에 대해서는 눈 감고 제재 이행에는 소홀했다.

러, 북에 정찰위성 기술 제공한듯
SLBM 프로그램 지원도 시간문제
한·미·일, 러가 대가 치르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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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러시아도 중국도 그동안 한국·일본·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지원하지는 않았다. 러시아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너무 큰 데다 많은 러시아 전문가와 관료가 북한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러시아가 포함된 핵무기 보유 클럽에 들어오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러시아가 오랜 관례를 깨고 지난주 루비콘강을 건넜다. 지난 8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웹사이트(Beyond Parallel)에 발표된 상업 인공위성 이미지를 활용한 리포트를 보면 미국 백악관의 경고에도 북한이 나진항에서 선박을 통해 러시아로 무기를 보내고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러시아가 최근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위한 기술을 지원했고 반대급부로 북한산 포탄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제 한국과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다지 효력 없는 한 가지 선택지는 러시아를 회유해 대북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푸틴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 와해,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지만 북한의 핵 위협 봉쇄다. 사실 어떻게 보면 푸틴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을 증대시켜 미국의 전략 역량을 유럽과 우크라이나에서 거둬들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채찍도 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많은 민주주의 국가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러시아의 협력을 더 끌어낼 가능성도 없다. 양안 관계에서 중국이든 북한의 도발이든 그 어떤 독재 국가가 무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단결만큼 효과적인 억제는 없다.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국의 우크라이나를 위한 연대는 민주주의 국가를 공격하면 경제 제재와 지정학적 외톨이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이러한 확신이 부족해 보이지만, 전 세계 경제·기술·외교 최강국의 힘을 모두 합치면 러시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침략자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에 대해 가할 수 있는 대가에는 적어도 모든 미국 동맹국들의 공동 규탄과 추가적인 징벌적 경제 제재를 포함해야 한다.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인해 안보리에서 다뤄지긴 힘들겠지만, 추가 제재에 대한 법적 근거는 분명하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제재에 포함되는 무기를 실어 나르는 해양 선박 금지와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결의안 이행을 명백히 저해하는 행위다. 러시아의 호전성을 볼 때 해양 선박 금지는 집행 측면에서도,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그러나 억제 측면에서 러시아의 긴장 고조 행위에는 상응하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아직은 북·러의 무기 거래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재래식 무기를 공급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로켓 발사 관련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뿐만 아니라 핵무기에 필수적인 재진입 기술 지원까지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러시아가 과연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과 미국·한국·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러시아가 심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너무 늦기 전에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을지도 모르지만, 억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