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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명 ‘복덕방’ 사람 북적이는 도심 호텔에 빅딜 비밀 캠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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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14면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③ 재계 복덕방 롯데호텔 3117호

만 26년도 더 지난 1998년 7월 4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을 나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막내 딸의 결혼식 날이기도 했거니와, 팔십 인생 동안 적지 않은 세파를 겪은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면서도 중요하고 보람된 일을 떠맡은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며칠전 나는 청와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5대 그룹 회장단 간 회의가 열리는데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상근부회장이던 나도 참석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은 외환 위기 해결책 가운데 ‘빅딜’, 즉 기업간 사업교환을 통한 구조조정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재계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이 기업 회장들과의 회의를 소집했으니, 결과에 따라 각 그룹의 주력 산업이 바뀌고 기업의 명운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국가 대사 앞에서 딸아이 결혼식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나는 형님에게 혼주 역할을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5대 그룹 회장의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뒤 회의가 시작됐다. 2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회의에서 DJ와 전경련 회장단 간에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이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결의했다. DJ는 “이런 모임을 상설화 하자.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을 대표로 하고 강봉균 경제수석과 손병두 부회장을 간사로 해 모든 경제 문제를 오늘처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했다. 이로써 정부와 전경련 간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마련됐다.

3각 빅딜 원점으로 돌리고 9개항 합의

1998년 7월 26일 당시 5대 그룹 총수와 경제부처 장관들이 롯데호텔에서 제1차 정·재계 간담회를 열고 ‘5대 그룹의 빅딜 적극 참여’를 합의했다. [중앙포토]

1998년 7월 26일 당시 5대 그룹 총수와 경제부처 장관들이 롯데호텔에서 제1차 정·재계 간담회를 열고 ‘5대 그룹의 빅딜 적극 참여’를 합의했다. [중앙포토]

회의 결과는 9개항의 합의문으로 발표됐다. 전경련은 ‘대기업 간 빅딜은 해당 기업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정부는 사업 교환이 원활히 되도록 제도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는데 노력한다는 약속을 했다. 나는 이 모임 후 기자 간담회에서 “그 동안 논의되던 3각 빅딜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모든 빅딜은 업계 자율로 추진하게 될 것”이며 “빅딜의 대상 업종과 시행 방안 등은 기업 스스로 결정토록 해야 한다는데 청와대도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나는 끝까지 회의장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것은 예기치 않은 일 때문이었다. 회의실 입구에서 대통령이 참석자와 일일이 악수를 나눌 때 내 차례가 되자 DJ는 “오늘 집안에 경사가 있다지요”라고 했다. 회의 시작 후에도 DJ는 “손 부회장부터 먼저 보고 하세요”라며 나의 발언 순서를 맨 앞으로 돌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다. 보고를 마치니 “이제 나가 보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일어나 인사를 하고 청와대 정문을 나서니 예기치 않은 경호차가 내 차 앞에서 인도를 하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토요일 오후라 한강 다리 정체가 심했는데 경호차를 따라 서울 강남의 딸 예식장에 20분만에 도착해 가까스로 혼주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식장에는 대통령이 보낸 큰 화환이 놓여 있었다.

청와대 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제1차 정·재계 간담회가 7월 26일 오후 4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8층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렸다. 극비리에 추진했지만 한 일간지에 회의 소집 사실이 보도되는 바람에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규성 재경부 장관,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 이기호 노동부 장관,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취재진에 막혀 한 때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했고 대기업 회장들이 식재료 운반용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회의에서 강봉균 수석은 “빅딜을 하면 벌거벗고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겠다”고 말했다. 그처럼 정부의 빅딜에 대한 의지는 강하고 바램은 간절했다. 강 수석은 사업교환 업종에 대해서는 ‘경쟁력이 없거나 적자를 내거나 과잉 투자된 기업’이라고 세 가지 기준을 밝히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업종이나 기업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회의는 길어져 밤 11시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회의장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질문이 내게 쏟아졌는데 관심은 역시 빅딜이었다. 나는 “결혼에는 중매가 있고, 연애가 있을 수 있는데 연애가 가장 좋은 것이다. 빅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각빅딜 구상에서 거론되지 않은 대우, SK도 향후 빅딜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서로 이익이 된다면 꼭 4대 그룹만 한정해서 논할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보다 구체적인 회의 논의 내용은 다음날 전경련회관에서 발표했다. 2000년 3월까지 상호지급 보증을 완전히 해소한다 1999년 말까지 평균 부채 비율 200% 이내로 감축한다 수출 증대와 수입 억제로 국제수지 흑자를 달성한다 이를 위해 무역금융과 연불수출금융을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3주 내 빅딜안 내기로 청와대와 약속

1998년 9월08일 당시 손병두(왼쪽에서 두번째) 전경련 부회장이 과잉·중복투자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8년 9월08일 당시 손병두(왼쪽에서 두번째) 전경련 부회장이 과잉·중복투자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가운데 “2년 내 부채비율 200%로 낮춘다”는 목표는 재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나는 이듬해인 1998년 4월 1일 DJ 대통령과 호텔 엘리베이터를 동승할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 차 영국 런던 방문 때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DJ에게 “부채비율을 줄이는 목표는 좋으나 2년 내 200%는 너무 급합니다. 일본이 500%에서 200%로 낮추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업종의 성격에 따라 부채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업종도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지금 500~600%에서 200%로 내리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라고 말씀드렸다. DJ는 “사정을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DJ는 이헌재 금감위 위원장한테 전화를 걸어 신중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빅딜의 공은 전경련으로 넘어 왔다. 8월 10일 5대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에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구체적인 빅딜 방안에 대한 최종 결정과 이행은 그룹 총수가 할 일이었지만 개별 그룹간 의견을 조율해 최적의 방안을 만들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내가 떠안은 과제였다. 개인간의 작은 거래도 쉽지 않거늘, 기업의 명운이 걸린 빅딜에 얼마나 많은 의견 대립과 이해 상충이 있을 것인가. 험난한 도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보안 유지였다. 만일 빅딜 방안이 합의되거나 이행되기 전에 밖으로 새 나갔다고 가정해보라. 시장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은 물론이고,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 기업의 종업원들은 거리로 나설 것이며 투자자들에게도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힐 게 뻔했다. 그래서 이 일은 전경련 부회장이던 내가 실무자 한 사람만 데리고 철저하게 비밀리에 이행하는 것으로 했다. 나는 이병욱 전경련 기업경영팀장을 뽑았다. 업무 능력과 성실함 이외에 입이 무겁다는 점을 샀다. 개별 그룹에서도 빅딜 논의에 관여하는 사람을 총수와 구조조정 본부장 등 소수의 사람들로만 제한했고 정부와의 창구도 강봉균 경제수석으로 한정했다. 당시 고교 후배인 최홍건 산업자원부 차관이 “선배님 어떻게 되어갑니까”라며 자주 물어왔는데 그에게도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일할 사람을 정한 다음 할 일은 비밀 캠프를 차리는 일이었다. 보안 문제도 있고 해서 북한산 자락에 있는 모 호텔을 염두에 두고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설명했더니,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동을 걸었다. “그런 곳이라면 하루도 못가 기자들에게 발각되고 말 것”이라며 “차라리 사람 북적거리는 곳으로 가야 안들킨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청와대 오찬간담회 무렵부터 언론사 기자들이 늘 나의 동선을 체크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금방 동선이 노출될 게 뻔했다. 그래서 차라리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도심 호텔에 만날 사람이 있어 드나드는 것처럼 꾸미는 게 더 효과적인 보안책이 될 수 있었다. 8월 11일 롯데호텔 신관 32층 회의실과 3117호 객실을 잡았다. 호텔 측에 극비로 해달라는 것과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전화는 단절토록 부탁했다.

암호명은 ‘복덕방’으로 붙였다. 실제로 롯데호텔 3117호는 기업간 빅딜 흥정을 붙이는 ‘재계 복덕방’과 같았다. 나는 복덕방 점주가 됐고, 이 팀장은 상근 직원이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데 있었다. 빅딜 업종과 대상 기업을 정하고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내놓기로 청와대와 합의된 시한은 8월말까지였다. 3주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다.  〈계속〉

손병두. 동서투자자문 사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강대 총장, KBS 이사장, 호암재단 이사장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서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하며‘빅딜’과 구조조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경제채널 ‘CNBC’의 한국 파트너사인 CNBCKOREA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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