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의 국민연금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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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민주당.민노당이 국민연금 개혁법 합의안을 만들어 국회 처리를 시도할 전망이다. 4년째 표류해 온 연금개혁이 가시권으로 접어든 셈이다. 보험료를 올려 재정 안정을 꾀하되 60%의 노인에게 월 8만원가량의 수당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기초연금제 도입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3당이 합의안을 표결 처리하면 물리적으로 저지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한나라당이 제정신인지, 수권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기초연금제는 모든 노인에게 가입자 평균소득의 20%를 지급하는 제도다. 보험료를 안 내도 나라 재정에서 월 13만~30만원의 연금을 주겠다고 하니 솔깃하게 들린다. 보험료를 못 내 '연금 사각지대'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좋게 보이지만 문제는 천문학적인 재정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지금 9%인 노인이 2050년에는 38%가 된다. 기초연금제를 하면 돈을 감당할 길이 없다.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제의 장점만 앵무새처럼 내세울 뿐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은 한번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재원 조달 방안도 없다.

이 돈을 대려면 증세(增稅) 외에는 방법이 없다. 소득세나 부가세를 30% 이상 올려야 한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감세 (減稅)를 당론으로 내세운다. 기초연금제가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정 부담 때문에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선진국과 거꾸로 가자고 하니 도대체 한나라당의 진심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연금재정 안정을 위해 노후연금액을 깎자고 한 게 주요 패인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국민도 기초연금제의 허실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오히려 등을 돌릴 것이다. 더 이상 얄팍한 술수로 국민을 속이려 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