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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첨단 기술의 게이트키퍼

중앙일보

입력

허봉재 에이치시티 대표

2000년 옛 현대전자 품질보증실에서 출발한 시험인증·교정 전문기업 에이치시티가 분기 기준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창립 멤버 3인방 중 한 사람인 허봉재 대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기술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투명경영’과 ‘직원 교육’을 기본 중의 기본으로 꼽았다.

창립 맴버인 허봉재 대표는 HCT의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창립 맴버인 허봉재 대표는 HCT의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어떠한 신기술과 신제품이 탄생해도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첨단 기술이 제품·서비스 형태로 인간에게 가닿기 전에, 안전성과 편의성을 따져보는 곳이 시험인증·교정기업이다. 특정 산업군, 특정 기술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산업군을 고루 아우르는 시험인증·교정기업의 일거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늘어난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국내외 제조기업은 자체적으로 시험인증 업무를 수행하기보다 외부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국가마다 시험인증 기준과 절차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국시험인증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시험인증 시장은 약 14조5600억원 규모이며, 이 중 8조1071억원에 달하는 제3자 서비스 시장은 연평균 6.1%씩 빠르게 커지는 추세다.

국내 대표적 시험인증·교정기업인 에이치시티(HCT)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에이치시티는 올 3분기 매출액 195억6200만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 매출액을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1.6%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26억7000만원, 당기순이익은 20억8200만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0.6%, 116.5% 늘었다. 허봉재(65) 대표에게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비결을 묻고자 지난 11월 6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에이치시티 본사를 찾았다.

23년 전 에이치시티는 옛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서 생산한 제품의 시험·교정을 담당했던 품질보증실이었다. 현대전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자 통신단말기, 운송, 카오디오, 모니터, 컴퓨터, 반도체 등 16개 사업부를 하나씩 분사했다. 당시 품질보증실에는 이수찬 현 에이치시티 회장과 허봉재 대표, 권용택 미국 법인장이 각각 부장, 차장, 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들이 2000년 5월 품질보증실 직원 46명을 이끌고 나와 현대교정인증기술원을 설립했다. 에이치시티로 사명을 바꾼 건 2007년이었다.

현재 에이치시티는 전 세계 200여 개국을 대상으로 글로벌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내 기업의 해외 수출을 발 빠르게 지원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에 해외 지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약 50억원을 투자해 현지 시험소를 준공했다. 또 해외 유력 인증기관인 TUV와 UL, Dekra, CTIA 등으로부터 공인 랩으로 인정받았다. 허 대표는 에이치시티의 견고한 성장 배경으로 ‘투명경영’과 ‘직원 교육’, ‘선제적 대응’ 등을 꼽았다.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되는 그의 경영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K-방산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제고

시험인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신제품 출시에 앞서 안전성과 편의성을 테스트하고 ▶기존 제품을 해외로 수출할 경우 해당 국가의 시험인증규격 적합 여부를 따지는 일이다. 교정은 제품이 균일한 성능을 나타내는지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작업 등을 가리킨다. 허 대표는 “에이치시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시험인증 서비스와 교정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민간 시험소”라며 “두 분야가 비로소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에이치시티의 올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약 54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연간 매출액은 전년도 매출액 약 671억147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허 대표는 이 같은 호실적에 대해 “5G(5세대 무선 이동통신) 분야에서 기술적 강점을 지켜온 덕분에 스마트폰 시험인증 신규 수주를 확대할 수 있었다”라며 “교정 분야에서도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을 비롯한 신규 거래처 확보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제적으로 뛰어들었던 배터리 방폭 시험사업 역시 전기차 시장 확대와 더불어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5G 시험인증을 공식적으로 수행한 곳이 에이치시티입니다. 삼성전자 5G 스마트폰의 한국 KC 인증과 미국 FCC(미국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 승인 모두 에이치시티에서 수행한 시험성적서를 바탕으로 이뤄졌어요. 요즘 K-방위산업(이하 방산)이 급부상하고 있는데, 무인기든 전투기든 항공기든 무선통신 설비가 들어가지 않는 방산 장비는 없습니다. 방산 분야에서 에이치시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요.”

허 대표는 이같이 말하며 본사 앞에 건설공사가 한창인 건물을 가리켰다. 그는 “방산과 원전 분야 연구동을 짓고 있다”며 “해당 분야 사업 확장성을 높게 보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월 말 82억원 규모의 군 교정 자동화 시스템 제조사업 계약을 체결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KOTRA(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10대 주요 무기 수출국 시장 점유율 동향’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8~2022년) 한국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9위에 속한다. 이는 앞선 기간(2013~2017년)과 비교해 74% 증가한 수준이다.

에이치시티는 이미 미국 록히드마틴사 F-35 전투기 교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보잉사 서플라이체인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허 대표는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 그는 “현재 아시아는 방산 분야에서 떠오르는 시장이다”라며 “한국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방산 장비 테스트베드가 되는 데 에이치시티가 일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이치시티가 방산 장비의 부품부터 완성품까지 모두 다루게 된다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글로벌 방산업체는 에이치시티와 협업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허 대표는 “한국의 시험인증·교정기업 대표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도중, “국내 중소 시험소 다수가 차례로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에 인수되는 모습에 화가 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토종 기업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에이치시티를 글로벌 시험인증기관과 비교해 절대 부족하지 않은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고백했다.

“한국이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이다 보니 이곳에서 시험인증을 받으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안전성을 인정받는 데 무리가 없어요.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이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품 테스트를 의뢰하는 기업은 시험인증기관에 부품 리스트 등 세부적인 사항을 모두 제출해야 해요. 기업 자체 노하우가 유출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한편 에이치시티는 방산과 함께 바이오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선점했다. 지난해 에이치시티는 호서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비임상시험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를 주력으로 하는 합작법인 ‘에이치엔에이치바이오’를 설립했다. 허 대표는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바이오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에이치엔에이치바이오는 동물보호법 강화에 따라 동물을 직접 사용하는 실험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발맞춰 세포나 미생물을 활용하는 동물대체실험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베풀고 또 베풀어라

창립 멤버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던 허 대표에게 그간의 소회를 물었다. 허 대표는 “분사한 사업부 중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도 있고 에이치시티처럼 현재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은 기업도 있다”며 “창업 초반부터 에이치시티의 순항을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중소기업 품질보증실에서 제품 시험을 의뢰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인하우스가 아닌 제3자 민간 시험인증·교정기업의 장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창업 초반 그는 창립 멤버 3인방에게 ‘신의 한 수’와도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바로 ‘자녀를 비롯한 친인척 모두가 에이치시티에서 일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 그는 ‘투명경영’이 장수 기업의 기본이라고 봤다. 허 대표는 “직원에게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현 경영 상황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며 “올해 실적은 얼마인지, 이에 따라 배당과 인센티브는 어떻게 책정될지 솔직하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에이치시티가 살아남은 또 다른 비책은 사무실 곳곳에 비치된 ‘행동강령’에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꾸며놓은 행동강령에서 ‘재미있게, 서로 도와가며, 스스로 공부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허 대표는 “사업의 핵심은 우수한 인재에 있다”며 “직원 교육은 대기업만의 역할이 아니라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에이치시티는 매주 수요일에 시험인증·교정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직원 대상 세미나를 개최한다. 시험인증·교정 분야는 특히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이치시티 관계자는 “노하우가 부족하면 제품과 장비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이는 적합한 테스트를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시험 과정 자체가 잘못되면 제품 리콜, 폐기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직원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용 문제와 높은 퇴사율이란 장애물 때문이다. 허 대표는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산다”고 고백했다. 이는 『주역(周易)』문언전(文言傳)의 한 구절로, 선행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베품의 미학이다.

“먼저 베풀면 반드시 복이 몇 배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제 경영 철학이기보다 생활신조에 가깝습니다. ‘혹시나 손해 보진 않을까’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놀랍게도 이직한 직원 중에 몇 개월 지나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연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직원 교육이 아깝지 않은 이유입니다.”

허 대표는 직원 교육과 행복이 일맥상통한다고도 했다. 그는 “회사와 함께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직원이 행복할 수 있다”며 “에이치시티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오래가고 좋은 회사’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뿐더러 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래야 직원이 행복하고 이 행복감이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허 대표는 직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젊은 친구들은 넘치는 열정에 못 이겨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방황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인생의 지름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직업이란 것도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여야 경쟁력이 있다”라며 “축적된 경험과 농익은 역량으로 시험인증·교정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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