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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40년 제조기업의 무한 변신

중앙일보

입력

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0) 한상원 다스코 회장

창업 이후 40여 년간 12번에 걸쳐 업종 확대와 다각화에 나선 기업이 있다. 광주와 호남을 대표하는 제조기업 다스코 얘기다. 미래 먹거리 찾기를 쉬지 않는 한상원 회장의 고집 덕이다.

한상원 다스코 회장이 도료용 가드레일과 영농형 태양광 패널 모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한상원 다스코 회장이 도료용 가드레일과 영농형 태양광 패널 모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지난 1983년 한상원 회장이 창업한 다스코는 광주·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제조기업 중 하나다. 중공업·중화학 산업단지가 밀집한 동남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평가받는 호남에서, 제조 기반 기업으로는 일찌감치 지난 2004년 코스피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다스코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무려 12번에 걸친 업종 변경과 사업 다각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 미래 시장가치를 내다본 한 회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도로 가드레일에서 시작해 신재생에너지에 이르는 다스코의 경쟁력은 광주·호남 지역의 제조업 모범 사례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전남 화순 다스코 본사를 찾아 한 회장을 만났다.

광주도 아닌 전남 화순에 이 정도 대규모 제조 설비를 갖춘 기업이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고향이 전남 해남이다. 첫 사업은 광주에서 시작했다가 1996년 화순으로 왔다. 당시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공단지가 조성되면서다. 다스코는 지역 유일의 상장사다. 또 대도시인 광주와 가까워 직원들의 출퇴근과 주거 환경이 좋다. 화순에 자리 잡은 이유다.

1983년 동아앵글로 처음 창업했다.

조립식 앵글 선반을 떠올리면 된다. 부산에서 앵글을 구입해서 지역에서 조립해 팔았다. 그런데 일감이 많지 않아, 일주일에 일하는 날이 사나흘밖에 안 되더라. 다른 아이템을 알아보다가 가드레일 시공업을 찾아냈다. 처음부터 가드레일 제조에 나선 건 아니고, 제품을 떼다 시공만 했다.

가드레일 시공업은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하다.

1986년 들어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SOC 붐이 크게 일었다. 마침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열어야 했으니 도로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한국은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로 악명 높은 나라였다. 이유가 뭘까? 교통사고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인프라가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도로 방호벽이 대부분 콘크리트라 공기(工期)도 긴 데다 안전 면에서도 형편없었다. 점차 철제 가드레일 교체 수요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시대 변화와 타이밍에 잘 올라탄 셈이다.

그렇다. 철제 가드레일 시공을 시작하니, 일주일에 3일만 일하기는커녕 밀려드는 일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가드레일 시공업을 시작한 게 바로 다스코다. 그러다 1996년 들어 동아기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가드레일 생산(제조)까지 시작했다. 이후 지방 국도 위주로 사업을 확대해갔다.

가드레일 시공과 제조는 완전히 다른 영역 아닌가.

맞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니 개발과 제조 모두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했다. 국내 도로안전시설 기준을 다스코가 다 만들다시피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1997년 기존 W형 가드레일을 대체하는 고규격 가드레일 개발에 성공했다. 충돌실험을 거쳐야 성능을 인정받는데, 당시 국내에는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전무했다. 하는 수 없이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농공과대학까지 가드레일을 들고 가서야 충돌실험을 할 수 있었다. 시속 80~100㎞로 달리는 차량 충돌실험으로 국토교통부 신기술 101호 인증을 받았다. 가드레일과 기둥 사이 연결 부위에는 폐타이어를 활용한 충격흡수장치도 만들었다. 이 역시 신기술 인증을 받았다.

기존 가드레일과는 어떻게 달랐나.

이전까지 쓰던 W형 대비 단면을 30%가량 늘렸다. 다양한 차종에 대비할 수 있도록 폭도 최대화했다. 기존 제품은 대형 트럭의 경우 범퍼가 높아 차량이 가드레일 밖으로 넘어갈(Override) 위험이 컸다. 반대로 소형차는 범퍼가 낮아 가드레일 하단에 끼어버리는(Snagging) 경우가 잦았다. 두 가지 모두 탑승자에겐 치명적이다. 우리가 개발한 가드레일은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제품을 찾기 힘든 신기술로 인정받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가는 모든 도로에 다스코가 만든 가드레일이 깔렸다.

국내 도로교통 안전의 숨은 공로자라는 생각이 든다.

철제 가드레일 사용이 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획기적으로 떨어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중앙분리대도 없었다. 1998년쯤 들어서야 4차선 이상 도로에 중앙분리대 설치가 의무화됐다. 중상자 수가 중앙분리대 설치로 또 한 번 크게 감소했다.

도로 가드레일에 이어 교량용 난간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예전에는 교량용 난간 재료로 알루미늄을 많이 썼다. 가볍고 가공이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락사고가 빈번했다. 차량이 바다나 강에 추락하면 그야말로 중대사고 아닌가. 신기술 가드레일 제조 때부터 전략적 파트너로 함께했던 포스코와 함께 ‘브리지레일’이라고 부르는 교량용 난간을 개발했다. 인천 영종대교가 설치 1호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을 조성하는 데 제일 중요한 SOC가 바로 영종대교였다. 4.2㎞에 이르는 길이에 1층은 열차가, 2층은 차량이 다니는 구조다. 양 사이드에 2개, 중앙에 2개를 더해 브리지레일 4개를 줄지어 설치했다. 영종대교, 부산광안대교, 거가대교 등 우리나라의 500m 이상 교량에는 거의 대부분 우리 제품이 설치돼 있다.

해외 SOC 사업도 활발하다.

한상원 회장이 최영찬 대표에게 다스코의 주요 사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상원 회장이 최영찬 대표에게 다스코의 주요 사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쿠웨이트만 바다 위 인공섬에서 걸프만 바닷길까지 36㎞가 넘는 초대형 교량이 있다.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 교량’이다. 여기에 우리 브리지레일이 깔렸다. 브루나이 틈부롱 브리지, 인도 뭄바이 브리지 등 세계적인 대형 교량에도 우리 제품이 설치돼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전략적으로 살피고 있다. 미래형 스마트 시티를 조성하는 네옴프로젝트 말고도 사우디에는 원래 산이 많아 추락사고가 빈번하다. 리야드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사우디 전 국토를 조사 중이다. 리야드에는 지하철도 있다. 도시 미관상 도심 구간 교량의 밑부분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감싸 열차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시설을 ‘에지 유닛’이라 하는데, 이것도 우리 제품이다. 2018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탔다.

2004년에는 코스피 상장에 나섰다. 관련 업계에선 드문일 아닌가.

당시는 가드레일 사업이 호황기라 투자금을 유치하려고 IPO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사업자금은 충분했다. 다만 지방에 있는 기업이다 보니 네임밸류가 수도권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고, 직원들 사기도 올려주고 싶었다. 더 큰 회사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상장을 결정했다.

SOC 분야는 개발이 진행될수록 사업 기회가 줄어든다고 들었다.

그렇다. 가드레일만 해도 국내 도로는 이미 포화 상태다. 새로 건설하는 도로도 예전에 비해 많지 않다. 현재 가드레일과 브리지레일은 일감이 많지 않아 자회사로 분사해둔 상황이다. 모기업인 다스코에서 영위하는 SOC 사업은 방음터널 사업뿐이다. 이 밖에 단열재와 데크플레이트 등 건축자재 사업도 영위 중이다.

방음터널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인가.

도로변에 아파트가 밀집된 곳이 많다. 시속 100㎞ 넘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는 아파트 주민에겐 거의 폭탄 터지는 소음 수준이다. 방음터널은 말 그대로 터널을 만들어 소음을 가둔다. 우리 제품은 지붕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해 전기도 생산한다. 화재가 나면 자동감지 시스템으로 지붕이 열려 유독가스 사고도 막는다. 얼마 전 큰 화재사고가 발생했던 과천 방음터널과 달리 중불연 제품을 사용해 화재에도 강하다. 태양광 방음터널도 우리가 세계 최초다. 서울 동부간선도로에 이미 설치돼 있고, 호남고속도로 확장공사에도 우리 방음터널이 설치된다. 이로써 발전 소득까지 확보하게 됐다. 기존 방음벽은 버드 킬(bird kill)도 너무 많다. 방음터널은 높이가 4.5m로 정도로 낮아 버드 킬이 없고, 소리도 완벽하게 잡아낸다.

신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08년부터 가드레일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함을 직감했다. 사업 확장과 다각화를 고민했고, 방음터널과 건자재에 이어 태양광발전까지 이르게 됐다. 신재생에너지는 크게 해상·풍력·육상 발전으로 나뉜다. 해상발전 기술은 유럽이 톱이고 우리는 아직 기술이 부족하다. 한국이 강점인 건 태양광발전이다. 호수나 댐 같은 공유수면과 육상 태양광발전 기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태양광발전 사업은 이미 레드오션 아닌가.

그렇다. 그러니 차별화해야 한다. 다스코는 ‘영농형 태양광’에 주력하는데, 논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1만9834㎡(6000평) 땅에 농사를 지어도 연평균 소득이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도면 대농인데도 그렇다. 그런데 이 정도 땅에 태양광 설비를 갖추면 연 소득이 6000만원 수준까지 오른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왜 떠나나? 돈을 못 벌어서다. 자녀 교육과 노후보장이 안 된다. 소득이 충분하면 떠나라고 해도 남는다. 우리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도 화석연료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하면 뭐하나. 에너지로 다 나가서 적자다. 만약 영농형 태양광이 확대 보급되고 전기차 시대가 완전히 열리면 원유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준다. 그러면 농촌 공동화와 청년실업까지 해결할 수 있다. 영농형 태양광이 농촌을 살리고 에너지를 살리는 방법이다.

획기적인 제안이다. 실제 설치 사례가 있나.

이미 화순에 여러 곳 설치했다. 농지를 태양광 부지로 전용하는 게 아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태양광발전도 같이 하는 거다. 지상에서 4m 정도 높이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니 기계농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국의 공유 수면에도 설치를 추진 중이다. 얼마 전에는 국내 금융사에서 투자 제안을 받기도 했다.

사업적 호기심이 많은 건가, 아니면 절박함인가.

사업의 라이프사이클은 원래 생각보다 굉장히 짧다. 성장 정체는 갑자기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항상 미래 일감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다. 새 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바로 수익이 나기는 어렵다. 대개 5년은 적자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그러다 5~6년이 지나면 선순환구조를 갖추게 되고 비로소 수익이 창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경영 철학 실천과 함께 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2018년 학교법인 홍인학원을 인수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영산중학교와 영산고등학교를 운영 중이다. 인수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매년 6억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투자하고 있다. 해남 땅끝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살면서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가족을 보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밖에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게 뭔지 고민했다. 내가 가난을 면한 건 모두 나라와 사회에서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이를 되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라 생각했다. 즉, 인재 양성이다. 영국의 이튼스쿨 같은 학교를 만들려 한다. 매년 학생 9명을 선발해 실제로 이튼스쿨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를 돌아본다. 우리의 어린 학생들에게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DNA를 배우라’고 말한다. 지금은 과거의 영광이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산업혁명도, 컴퓨터 연산도, 축구·당구·골프·테니스 같은 스포츠도 모두 영국에서 출발했다. 혁신의 DNA다. 그걸 배우게 하고 싶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위한 미래 비전이 궁금하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속가능하려면 장수 기업과 100년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일본은 100년 기업이 4만 개가 넘는데, 우리는 8개뿐이다. 기업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게 첫째다. 창업자에겐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란 게 있다. 2세들은 그렇지 않다. 창업주 이후에는 직원 중 제일 똑똑한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그게 바로 내 가족과 직원들, 또 협력업체가 사는 길이다. 2세들은 배당만 받아도 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시대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걸 못 해서 망한 기업이 수없이 많다. 반대로 능력을 갖춘 2세 경영인들도 있다. 이들에겐 부의 대물림 차원이 아니라 가업승계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 일례로 상속세·증여세가 너무 과도하다. 자칫하면 국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기 쉽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장정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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