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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의사 늘리기보다 더 중요한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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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30면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최근 정부는 의대 정원의 대폭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산업 경쟁력에도 장기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은 그동안 누적된 의대 쏠림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인재 부족에 시달려 왔다. 이 결과로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의 미래 유망산업 경쟁에서 중국·일본·대만에 비해 매우 불리한 형편에 처해 있다.

우리 산업 경쟁력 약화의 한 단면이 삼성전자의 휴대폰용 핵심부품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수입량이다. AP는 휴대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초고집적회로(VLSI) 부품인데, 삼성전자는 미국의 퀄컴으로부터 AP를 주로 수입한다. 이 AP 수입에 드는 비용이 지난 3분기 기준 올해 거의 9조원에 달한다. 고부가 제품이라 삼성전자도 AP를 개발했으나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만 문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산업은 철강·조선·2차전지·화학·디스플레이·휴대폰·전기자동차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의대 쏠림으로 각 분야 인재난 가중
반도체 등 산업 인력 확보가 더 긴요

분야별 인력의 단순 숫자는 중국과 비교가 불가능하며 인력의 질도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 의대 쏠림이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그 이전의 각 산업 분야 실력 있는 인재들이 회사에서 대거 은퇴하고 있어서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의대 정원 증원의 근거인 ‘의사 부족’ 논리는 현재 우리나라의 실제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의 1인당 연간 병원 방문 횟수는 2019년 기준 17.2회로 선진국 평균 6.8회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심지어 우리와 의료제도가 비슷하고 노령화가 더 심각한 일본의 약 13회보다도 더 많다.

우리 국민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 훨씬 자주 병원에 간다. 의사 숫자는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의사 한 사람이 진료하는 환자 숫자가 많기 때문에 병원을 쉽게 간다. 이러한 효율성은 당연히 한국 의료시스템의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다. 비록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 전체 인구가 늘지 않고 있는 데다 AI와 의료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재의 의료인력으로도 노령화의 파도를 못 넘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건강보험정책인 문케어 그리고 근래의 실손보험이 의료 과소비와 비급여 진료를 부추기고 현재 직면한 필수 의료 분야의 공백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저출산 문제를 고려할 때 의대 정원 확대는 더욱 자제해야 한다. 10년 전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0.4%가 의대에 진학했던 것에 비해 현재는 약 0.6%, 20년 후에는 1.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의대 쏠림은 고착되어 서울대의 경우에도 입학생의 커트라인 기준 성적이 전국의 어느 의대보다도 떨어지고 어느 대학이든 입학 후 의대 재수를 위한 자퇴생이 학사 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의대 정원의 확대는 다른 분야의 인재 고갈을 의미한다. 일부 분야 의료인력의 경우에는 오히려 줄이기를 고려해야 한다. 내 관찰에 치과의사는 이미 과잉 상태이며, 많은 한의사가 도수치료로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보기에 안정되고 수입이 좋은 의사 되는 문을 넓힌다면 좋아할 학부모가 많고 또 필수 의료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의사 증원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의료시스템 개혁 대신에 여론을 내세우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는 미래의 위기에 눈감는 대중영합주의이다. 저출산과 줄어드는 노동인구를 고려할 때 이제 더는 낭비할 여지가 없다. 산업 분야에서도 부가가치 낮은 곳은 질서 있게 퇴장하고 유망한 곳에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 대중영합주의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심화할 것인가, 불필요 인력 낭비를 줄이고 산업 경쟁력 향상에 집중해 튼튼하고 빚 없는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나는 정부에 진지하게 묻는다.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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