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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강과 사람의 서사가 함께 흐르는 ‘영산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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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31면

영산강 ©김지연

영산강 ©김지연

‘사진계의 박완서’라고 불리는 사진가가 있다. 오십대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는 점이,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데뚝한 결실을 거두었다는 점이 닮아서 생겨난 별칭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정미소’ ‘남광주역’ ‘광주극장’ ‘묏동’ 등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것들을 기록했다. 시간의 슬픔과 소중함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김지연식 화법’도 이루었다. 그런 그녀가 2021년 새로운 사진 시리즈 하나를 전시와 책으로 내보였다. 사진 속에 사진가 자신이 담겨있는 사진 한 장과, ‘그 강이 무슨 강이든 내 인생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로 시작되는 작업 노트와 함께. 제목이 ‘영산강’이었다.

김지연은 광주지역으로 흐르는 영산강의 한 다리 옆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강의 이름도 모른 채 살다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이후로는 아예 강의 존재조차 잊고 살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서 아직도 고향집이 남아있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60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다. 영산강이 그제서야 보였다. 그 강에 탯줄을 묻으면서부터 시작된 자신의 삶이 보였다.

2020년 봄부터, 사진기를 들고 영산강가 탯자리 주변과 강물이 시작되는 근원지부터 서해바다에 이르는 길을 강을 따라 걸었다. 담양에서부터 목포의 끝 고하도까지 140㎞에 달하는 노정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애써 아름다움을 찾지는 않았다. 서먹하면 서먹한 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의 물빛대로 찍었다. 발목을 적시며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던 정자교보 대신 새로 만들어진 보를 건넜다. 아버지가 세운 학교 터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물새와 억새를 만나고, 과일 따는 아낙과 늙은 농부를 만났다. 그 만남들을 찍고, 여러 색을 띤 강의 얼굴과 함께 담았다.

기우뚱 지붕이 한쪽으로 기운 채 영산강가에 아직 남아있는 고향집 마당에, 이제 일흔이 넘어 돌아온 자신을 세워두고는 집과 함께 찍었다. 사적인 연민의 공간이자 회귀의 지점으로서 영산강을 찍은 특이한 사진 시리즈가 이렇게 해서 완결되었다.

사진 속에서, 강과 사람의 유장한 서사 위에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서정이 함께 흐른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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