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죽은 김오랑이 ‘군사반란’의 증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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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길었던 9시간을 다루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밤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장성들과 모의해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하고 군사반란을 일으킨 과정을 그린다. 전쟁도 불사하는 반란군 지휘부와 책임 모면에만 급급한 진압군 수뇌부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유독 안타까운 장면은 진압군 측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던 젊은 소령(정해인)의 죽음이었다. 실제 인물인 김오랑 소령(중령 추서)은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는 신군부 측 무장병력에 맞서다 6발의 흉탄을 맞고 전사한다. 당시 나이 35세.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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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소령은 사령관이 “다른 참모들과 함께 빠져나가라”고 지시하자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 “사령관이 계시는데 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도경비사령관도 “승산이 없다”는 참모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친다.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비슷한 시각, 국방부 벙커에선 병장 정선엽이 반란군 총탄에 스러진다.

판세가 기운 상황에서 그들의 죽음과 저항은 의미 없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전두환과 그 일당이 벌인 ‘생일집 잔치’가 혁명이 아닌 반란으로 판결 내려진 것은 ‘김오랑’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상황은 일찍 종료되고, 대통령 재가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소신과 원칙대로 버틴 결과 참모총장 연행은 ‘12.13. 05:10 a.m.’, 즉 사후 재가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날 밤 육군본부엔 무책임한 책임자들이 있었다. 줏대 없이 우왕좌왕했던 그 ‘똥별들’ 상당수는 5공화국에서 진급도 하고 장관도 했다. 하지만 같은 밤 민주공화국을 사수하려 했던 젊은이들은 12·12가 군사반란임을 증거하며 역사의 별이 되었다. 맑고 푸르렀던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