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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AI 시대의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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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지난해 11월 챗GPT 3.5가 전격적으로 출시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GPT4가 나왔다. 드디어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실감 나게 다가오고 있다. 수퍼 컴퓨터로 24시간 쉴 새 없이 기계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은 인간 행동과 언어의 모든 패턴을 분석하여 스스로 생성한 정보로 자신의 판단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20세기에는 기계화 도입으로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대체하는 변화가 나타났다면 21세기에는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대체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마침내 직업 대전환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까지 전 세계에서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69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의 등장으로 향후 5년 이내에 기존 일자리의 23%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 도입으로 사무, 행정 분야뿐 아니라 법률, 의료, 연구 등 전문분야까지 변화의 바람은 거세게 불 것이다.

반복적 일보다 창의력 중요해져
호모 파베르에서 호모 루덴스로
수도권 교통 주거도 상상력 필요
상상력으로 미래 국정 설계해야

제러미 리프킨이 예견한 ‘노동의 종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은 주 3일 정도 일하거나 일없이 기본소득만 받으며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옛날 귀족들은 일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노동은 하인들에게 시키고 자신들은 문학, 예술 등과 같은 도락을 일삼으며 평생을 살았다. 이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하던 인간인 ‘호모 파베르(Homo Faber)’에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개념인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대전환하여 살게 될지 모른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주 70시간 정도 일했다. 이제 유럽에서는 주 30시간 정도 일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인간의 노동시간이 아니라 기술혁신이기 때문이다. 문화나 예술도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낸다. 이전엔 놀이라고 치부하던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활동이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먹는 것이나 여행 등 취미 생활로 돈 버는 유튜버들도 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 자신을 과학자가 아니라 상상력을 자유롭게 끌어내는 예술가라고 했다. 21세기 미래를 주도하는 것은 노동의 힘이 아니라 상상력의 힘이 될 것이다. 노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관료제적 특성들은 이제 20세기 역사적 유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울의 주택난이 심각해도 이를 풀어내는 상상력은 초라하다. 서울은 지구단위 계획 때문에 도심은 상업지구로 만들고 주거는 외곽이나 신도시로 내몰았다. 그래서 직장 출퇴근에 한 시간 이상 걸린다. 기존 사대문 안에 있는 초등학교는 주민이 없어서 전교생 100명을 겨우 유지할 정도다. 명동의 땅값이 평당 수억원이 넘지만 사오층 정도 상가건물이 즐비하다. 반면에 뉴욕 맨해튼에는 수십층짜리 주상 아파트들로 가득 차 있다. 서울이 U자형 스카이라인인데 반해 맨해튼은 역 U자형으로 도심에 초고층 건물과 주거공간이 많다. 이처럼 명동 등 도심과 용산역에서 서울역까지 철로 위에 60~70층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100여만원의 월세를 내고도 24시간 어린이집, 병원, 공유 주방, 피트니스 센터, 스카이라운지 등의 시설을 갖춘 도심 고층 임대아파트에서 젊은이들이 살게 해야 한다.

김포 골드라인 초과밀 문제로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려는 정치권 논의가 뜨겁다. 일본 도쿄에는 출퇴근 시간에 많은 특급 전철이 일반 전철의 절반 정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는 특급열차가 통과할 대기 공간이 정차 역에 없어서 대부분 전철이 모든 역에 정차한다. 주거공간이 수도권 외곽이기에 긴 시간 출퇴근 교통지옥에 시달린다. 현재 1호선은 10량, 경전철은 4량, 대부분 지하철은 8량으로 운행한다. 출퇴근 과밀 시간에 몇 개의 차량을 더 연결하여 운행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하철 8량에 4량 정도를 추가하면 수송인력이 50% 늘고 이곳을 카페나 레스토랑처럼 운영할 수도 있다. 지정 좌석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탑승하여 커피 마시고 토스트 먹으며, 일도 하고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며 출퇴근할 수 있다. 승하차는 차량 연결문을 통해 8량이 있는 곳을 통해 하면 된다. 스위스 산악열차도 스타벅스 카페 차량을 객차에 연결하여 운행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선 평범한 생각이나 반복적 일은 컴퓨터,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 우리가 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창의력뿐이다. 20세기 관료제의 꽉 막힌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21세기에 AI를 뛰어넘어 인류가 잘살 수 있는 길이다. 국정을 맡은 정치지도자들과 관료들도 과거에 얽매인 정치와 규제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미래의 문제를 푸는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