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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폴 도너번의 마켓 나우

철 지난 경제모델 못 버리면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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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경제 데이터의 질이 최근 수년간 계속 떨어지고 있다. 데이터 산출에 필요한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 수가 줄고 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데이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요청하는 추가 예산안은 번번이 의회 문턱에서 좌절한다. 영국 통계청(ONS)은 자신이 발표하는 실업 데이터를 믿지 않는다. 기업심리지수는 경기상황을 과장하거나 왜곡한다. 정치적 양극화 역시 심리지수를 왜곡한다. 소셜미디어의 선정주의가 득세하는 지금, 소비자 심리와 소비자 행동 간의 관련성은 약화하고 있다.

경제 현실의 변화도 초고속이다. 새로운 사업 방식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비즈니스 세계의 진입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기업가는 물건을 파는 물리적 공간이 더는 필요 없다. 이베이(eBay) 계정과 인터넷 연결로 충분하다. 기존의 경제적 인과관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유연근무제 확산으로 통근을 위해 운전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석유 수요는 유가 변동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됐다.

미 고용 데이터, 믿을 수 있나. [일러스트=김지윤]

미 고용 데이터, 믿을 수 있나. [일러스트=김지윤]

경제 데이터의 품질 하락에 더해 경제적 관계가 변화하면서 경제 모델이나 금융 모델의 미래예측력이 떨어졌다. 경제·금융 모델들은 다음 분기에 경제와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내려고 과거를 관찰한다. 과거의 패턴이 반복된다는 전제가 깔렸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어졌고 과거에 반복됐던 경제적 관계들이 지금은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존의 모델들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진짜 문제는 기존 모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애널리스트들과 경제학자들이다. 모델 개발에는 엄청난 지적인 노력과 시간이 든다. 경제학자들이 만들어 낸 모델이 그들의 평판을 좌우할 수도 있다. TV 출연이나 신문 칼럼 기고 요청도 평판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학자의 평판이 자신이 개발한 모델의 예측력을 통해서 형성됐다면 모델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향수(鄕愁)는 설 자리가 없다. 사라진 과거의 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위험하다. 금융 분석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모델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문제다. 그들은 시장을 왜곡하는 평가를 내놓을 것이고, 이는 곧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마저 왜곡할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이 향수병에 걸리면 더 심각한 문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하는 말 중에는 화석화된 경제 모델에서 나온 것들도 있다. 과거가 미래의 안내자 구실을 못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데 주저한다면 정책적 오류라는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