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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그들은 알고도 물었다 “한국에는 유인 우주계획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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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지난달, 추석 연휴를 끼고 국제우주대회(IAC)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갔다. IAC는 전 세계 우주 전문가들이 1년에 한 번 만나는 행사로, 많게는 9000명이 모인다. 이번 대회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무력 충돌로 3000명에 채 못 미쳤다.

바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에 내린 우리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이 행사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 화면과 청사 밖에서 대기하는 택시, 주요 도로에 걸린 배너도 IAC로 장식됐다. IAC 2023은 일람 알리예프 대통령의 개막 연설에 이어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개막 강연으로 시작됐다.

바쿠 2023 국제우주대회 참관
올해는 중국 기관·기업이 주도
달기지서 곰팡이 활용방법 등
유인 우주탐사 아이디어 만발

주요국 우주청장 한자리 모여

지난달 5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화상으로 나와 연설하고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5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화상으로 나와 연설하고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시장에 마련된 부스는 비즈니스 회의가 열리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IAC는 정치 무대이자 친선과 교류의 장이며, 주요국 우주청 청장급 인사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드문 기회다. 우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주관한 고위급 회의 참석에 이어, 아랍에미리트(UAE) 무하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MBRSC)의 주요 인사와 만났다. MBRSC는 3개 팀과 동시에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부스를 꾸몄다. 크고 작은 탁자와 의자, 중동풍 카펫으로 꾸민 공간은 소장과 2명의 부소장이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필자와 아는 살렘 후마이드 알 마리 MBRSC 소장은 아랍 최초의 우주인인 하자 알만수리를 소개했다. “내가 명색이 소장인데 이 친구랑 있으면 다들 나한테 사진 찍어 달라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알만수리는 전직 공군 조종사로, 40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선발됐다. 그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UAE 학생을 대상으로 한 우주과학 공모전에 선정된 15개 실험을 진행했다. 앞서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는 2017년, 트위터에 “UAE의 우주인 프로그램에 많은 우리 어린이가 등록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필자는 유엔 회의에서 만난 루마니아의 최초 우주인 도린 프루나리우와 우연히 마주쳐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아폴로 9호 우주인인 러스티 슈바이카르트는 먼발치에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는 여전히 건장해 보였다.

IAC는 여러 나라 남녀 우주인들의 외교무대였다. 도린과 러스티 같은 퇴직 우주인과 달리 현직은 선내복을 입고 다녔다. 국제우주대회는 유인탐사를 포함해 그 나라 우주 계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장이다. 한국이 누리호와 달탐사 그리고 우주청 문제로 떠들썩한 것과 달리, 바쿠에서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많이 후원한 중국국가항천국

중국국가항천국(CNSA)은 이번 IAC를 최고등급인 프리미어급으로 후원했다. 플래티넘 후원 기관으로는 사우디우주국(SSA)과 스페이스X, 튀르크 우주국이 뒤를 이었다. 이렇다 보니 미국 NASA, 유럽우주국(ESA), 프랑스국립우주센터(CNES), 독일항공우주센터(DLR)는 후원에서 빠졌다. 일본 우주항공개발기구(JAXA), 영국우주국(UKSA)이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10개 넘는 중국 기관과 기업이 전시 면적의 7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은 충격 이상이었다.

필자는 전공 분야보다는, 보통 때 접하기 어려운 세션에 주로 들어갔다. 대부분 유인탐사 분야였다. 독일 은퇴 교수는 유인탐사 시대에 테니스 같은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사람은 고강도 운동과 일시적인 휴식을 반복하면서 몸이 활성화하는 한편 정신적 고양을 경험한다. 덤으로 비만과 당뇨·심혈관질환을 이길 수 있다. 전략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근면과 책임감, 낙관과 자기만족, 스트레스와 불안 조절도 운동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달이나 화성처럼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테니스공은 주변 온도와 기압·습도에 따라 바닥에 닿았다가 튕기는 강도가 달라진다. 라켓 재질과 구조, 구장 환경도 한몫한다. 발표자는 달에 운동시설을 세울 때 무엇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숙제 거리를 줬다.

어떤 중국 학생은 사람의 소뇌를 모방한 로봇을 소개했다. 우주선 내 물체를 인식, 추적해 제어하는 개념이다. 같은 대학 연구실의 동료 학생은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애벌레처럼 생긴 우주 로봇을 제어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우주선에 불이 났을 때 냄새로 불이 난 지점을 찾는 방법을 보인 중국 학생도 박수를 받았다. 더 이상 그들은 추격자가 아니었다!

일론 머스크와 원격 대담도

그런가 하면 한 생물학자는 미래의 달기지에서 곰팡이로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을 줄이는 방법을 설명했다. 달 착륙 후, 기지 건설과 운영, 현장 자원 활용과 에너지 생산, 운송과 장기 체류로 순환되는 가치사슬에 관한 연구도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의 젊은 연구자는 거미처럼 생긴 3족 로봇을, 중미의 한 대학교수는 화성 장기 체류 임무에 대비해 학생들과 했던 모의기지 훈련을 소개했다. 독일 학부생들은 인공지능(AI)과 챗GPT로 달 기지에 사는 우주인 활동을 돕는 연구로 주목받았다. 이번 IAC 기간에 한국과 NASA의 고위급 회의가 열렸다. 상대측은 한국에 유인 우주계획이 없느냐는, 굵직한 질문을 던졌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2023년 우주대회는 일론 머스크와 원격 대담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새벽 5시, 귀국편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필자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