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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과 짝 지어 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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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훌륭한 인물 곁에는 뛰어난 보조자가 있기 마련이다. 셜록 홈스 곁에 왓슨 박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데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숨은 공이 컸다. 혼자서 일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좋은 성과를 내는 일은 드물다.

한때 컴퓨터 개발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작업 방식으로 ‘짝 프로그래밍’이 있다. 두 명의 개발자가 한 대의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를 함께 작성하는 것이다. 둘이 함께 작업하니 실수가 줄어들고 성능도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에 쫓기는 회사로서는 한 작업에 두 명의 개발자를 배치하기란 어려운 터였다. 그래서인지 짝 프로그래밍 기법은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인간과 AI의 협업 갈수록 늘어
사용자 관련 정보 제공 필수적
정보보호에 더욱 신경을 써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이제 인공지능과 짝을 지어 일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에 코드를 작성하라고 시킨 다음 인간이 그 결과를 검수하거나, 반대로 인간이 짠 코드를 인공지능이 검수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코드 작성뿐만 아니라 회의록 작성, 문서 요약이나 번역 등에서 인공지능은 뛰어난 보조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회사가 서둘러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실무에서 적용되는 사례는 아직 흔하지 않다. 인공지능에 작은 작업을 하나 부탁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그 작업의 배경, 내용, 기대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일을 시키느니 직접 일을 처리하는 것이 편한 때가 많다. 가령 휴가 계획을 세운다면 직접 앱을 켜서 원하는 장소를 찾는 것이 편하다.

그럼 인공지능이 뛰어난 보조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내가 처한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내게 주어진 예산은 얼마인지 잘 알고 있을수록 진정으로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의 인공지능에는 아직 이런 정보가 부족하다.

만약 미래의 인공지능이 우리가 검색한 자료들, 주고받은 이메일과 메시지, 방문한 웹사이트의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내 상황을 고려해 적절하게 도와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능한 보조자가 하는 역할이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지켜보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때 꼭 필요한 조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얼마 전 빌 게이츠는 머지않아 모든 이들이 인공지능 보조자를 두는 세상이 올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이 교육, 의료, 사무 작업, 엔터테인먼트 및 쇼핑 등 생활 전반에 밀착해서 도움을 줄 것이라 한다. 이로써 인간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를 활용하려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컴퓨터를 켜면 바탕화면에 앱 아이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화면이 떴다. 이용자가 직접 자판을 두드려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처럼 터치 한 번으로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것과는 한참 멀었다.

그럼 40년 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처럼 필요한 앱을 골라 설치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그저 인공지능에 짧은 단어로 업무를 지시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이 내 상황을 고려해 관련 정보를 찾아 분석하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일을 내 취향에 맞게 처리해 줄 수 있다. 미래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불편하게 컴퓨터를 사용했을까 의문을 가질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에는 중대한 딜레마가 숨어 있다. 과연 우리에 관한 정보를 인공지능에 광범위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진정한 보조자가 되려면 직장과 일상의 모든 정보를 알려 주어야 한다. 셜록 홈스가 사건 내용을 왓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왓슨은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똑똑하고 강력한 인공지능에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내 회사의 비밀을 완벽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인공지능에 알려줄 수 없다. 결국 왓슨이 홈스의 좋은 보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홈스가 왓슨을 그만큼 신뢰한 덕분이다.

이제껏 우리가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정보의 더미에 압도당하기 일쑤였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되면, 빌 게이츠가 예견한 대로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통째로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과연 실현될 것인지는 우리가 인공지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렸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정보 보호와 보안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