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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지? 다큐 사진 대가 강운구, 암각화에 꽂혀 중앙아시아에 간 사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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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21면

‘암각화 전시회’ 여는 사진작가 강운구

청동기·철기시대 암각화가 문화재 표지판도 없이 무심히 여기저기 널려 있는 카자흐스탄의 외진 곳 돌란알르이. 몇 년 전 이곳을 찾아간 사진작가 강운구(82·사진)에게 그곳 노인은 물었다. “이걸 보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노인은 또 “여태 뭘 하다가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먹고 살기에 바빴다”고 대답했다. 노인은 말했다. “어디서나 먹고 사는 것이 문제지. 여기서도 그래.”

이 에피소드는 강 작가가 새로 펴낸 사진집 『암각화 또는 사진』에 나온다. 동명의 사진전도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시작해서 내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 “왜 이제야 왔느냐”라는 질문이 작가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1971년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신문에 실린 그 사진을 보고 ‘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을까’라는 질문을 50년간 품어온 뒤 그 답을 찾기 위해 중앙아시아 암각화 탐사를 간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개척자

사진작가 강운구의 암각화 연작 중 ‘사이말루 타시, 키르기스스탄’(2018). [사진 뮤지엄한미]

사진작가 강운구의 암각화 연작 중 ‘사이말루 타시, 키르기스스탄’(2018). [사진 뮤지엄한미]

강 작가가 늦게야 간 것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개척자’로서 이곳에서 수많은 인물사진과 인물이 깃든 풍경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老) 대가는 그저 “먹고 살기 바빴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카자흐스탄 시골 노인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며 공감한다. 덤덤하면서도 깊은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장면, 마치 ‘사람’이 평생 최대 관심사라는 강 작가의 사진작품들과도 비슷한 장면이다.

‘고래가 왜 세로로 서 있을까’라는 질문은 곧 ‘왜 수천년 전 선사시대 사람들은 고래를 그렇게 그렸을까’라는 질문이다. 즉 작가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시공간을 확장해서 먼 과거로까지 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작가는 스스로 찾아나섰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약 3년간 국내 암각화와 더불어 한국 문화와 연결고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알타이산맥 지역을 탐방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러시아·몽골·중국 등 총 8개국의 30여 개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그는 전시 프리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 그림이 서있는 것에 의문 자체를 품은 사람이 없었어요. 내 친구 중에 시인이 있는데 ‘난 봤는데 서 있는 줄도 몰랐어’라고 하더군요. 질문이 없으니 해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해석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지만, 최초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작가 강운구, [사진 뮤지엄한미]

사진작가 강운구, [사진 뮤지엄한미]

“제가 내린 결론은 반구대 암각화에서 살아 있는 고래는 수직으로 서서 헤엄치고 있고 죽은 고래는 수평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수평으로 된 고래들은 뒤집혀 있어요. 그리고 죽은 고래를 건지려는 듯한 어부들의 배가 보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수평과 수직으로 삶과 죽음을 가리켰던 것 같습니다. 고래나 물고기와 반대로 뭍짐승은 살아있는 것은 네 발로 땅을 디딘 게 수평으로 그려져 있고 사냥 당해죽은 것은 수직으로 그려져 있어요.”

강 작가의 가설이 학문적으로 검증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가설은 순수하고 강렬한 호기심을 품은 이가 발로 뛰고 직접 관찰하며 얻은 것이기에 매력적이다. 게다가 뮤지엄한미의 설명대로 “사람, 사람이 사는 방법과 환경에 늘 관심을 두었던” 포토저널리즘 작가가 자신의 사진작품과 글로 해석한 암각화는 더 이상 지루한 학문 연구 자료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옛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강 작가는 암각화가 옛 사람들의 “사진”이라고 말한다

전시 사진 중에 암각화 사진은 흑백이고 암각화가 있는 지역 사람들의 삶과 풍경은 컬러인데, 작가에 따르면 “과거의 삶은 흑백으로, 현대의 삶은 컬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진 하는 사람으로서 최대의 관심사는 사람이고 그 다음에는 사람과 관계된 풍경입니다. 풍경은 나를 숨쉬게 합니다. 암각화 찾아다니다가 고개를 들면 기가 막힌 낯선 풍경들이 가슴에 들어옵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다음은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카자흐 노인 “뭐하다 이제 왔나”

‘반구대, 한국’(2019). 작가는 1971년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림 속 고래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에 호기심을 품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뮤지엄한미]

‘반구대, 한국’(2019). 작가는 1971년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림 속 고래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에 호기심을 품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뮤지엄한미]

암각화를 사진이라고 하는 게 신선합니다.
“학자들은 대개 암각화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제 견해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암각화가 오락이고 예술이라는 겁니다. 옛 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가 본 것, 자기가 경험한 것만 그렸기 때문에 저는 이게 일종의 그림일기라고 봅니다. 그림일기에는 기록성이 있기 때문에 ‘이건 고대의 사진이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또한 암각화는 유목민의 것입니다. 어떤 암각화에서도 꽃이나 곡식 같은 식물을 그린 건 본 일이 없어요. 농부라면 그런 걸 그렸을 텐데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유목민이기 때문에 짐승들만 그린 겁니다. 유목민들은 계절 따라 이동하면서 머무르는 지역에서 파티나가 낀 바위를 만날 때마다 암각화를 새겼을 겁니다. (파티나는 바위의 광물질이 표면으로 스며 나와 녹슨 것. 바위 표면과 내부의 색깔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에 암각화를 새기기 좋다.)  반구대 암각화 그린 사람들은 유목민은 아니었겠지만 어부들이었겠죠.”
‘탐블르이, 카자흐스탄’(2017). . [사진 뮤지엄한미]

‘탐블르이, 카자흐스탄’(2017). . [사진 뮤지엄한미]

옛 사람들도 자기표현을 했다고 보시는 거군요?
“암각화를 보면 혼자 활 쏘는 그림들이 수백 개 있거든요. 제가 보기에 그건 ‘내 친구가 활을 이렇게 쏘더라’하고 그린 게 아니라 ‘내가 오늘 아침에 이렇게 활을 쏴서 이렇게 한 마리 잡았지’하고 그린 겁니다. 또, 모든 암각화에 남근이 크게 그려진 남자들이 있어요. 자기 친구 물건 크게 그리지 않아요. ‘내 거 이만큼 크다’라고 자랑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암각화가 기본적으로 자화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울산 반구대는 촬영이 힘든 곳인데 몇 번 정도 방문하셨습니까?
“오랜 세월에 걸쳐서 7번 정도 갔습니다. 말씀대로 촬영이 대단히 어려운 장소입니다. 당국에 허가 받기도 어렵고… 예전에 사연댐 물로 1년에 몇 달씩 잠겨 있으면서 훼손이 됐잖아요. 지금은 보호한다고 온갖 장치를 바위 틈새에 달아 놓아서 그거 피해서 사진 찍기가 또 어렵습니다. 또 물을 건너지 않으면 접근할 수가 없어요. 반구대는 파티나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그는 반구대에 예전에 파티나가 있었다고 본다.) 즉 바위 표면 색깔이나 홈이 파인 곳 색깔이나 똑같기 때문에 그림이 잘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해뜰녘이나 해질녘에 빛이 비쳐들 때만 잘 보입니다. 아무튼 7번 방문 중에서 최고는 중앙아시아 돌고 와서 2020년에 갔을 때였습니다. 눈이 트여서 못 보던 게 보이고 해석이 되더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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