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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배수의 진' 확실히 쳤다면 전쟁 없었을지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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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30면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단체 하마스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2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북부 경계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단체 하마스 사이에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2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북부 경계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랍의 유명한 장군 타릭 이븐 지야드(Ṭāriq ibn Ziyād)는 711년 약 7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을 침공했다. 아무리 지금부터 1300년 전이라고 하지만 겨우 7000명의 군사로 한반도보다 더 넓은 스페인의 영토를 정복하겠다고 나섰다면 무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타릭 장군은 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토의 60% 이상을 정복한다. 이런 기적 같은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기에 아프리카와 스페인 사이의 바다를 지브롤터 해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7000명 군대로 스페인·포르투갈 정복

그런데 이런 타릭 장군의 스페인 정복 과정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에 상륙한 후 타릭 장군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를 불태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타릭의 부하들은 배를 불태우면서 스페인 정복에 대한 타릭 장군의 의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스페인 정복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두 죽는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배를 불태운 덕분인지 전투에 임했던 타릭의 군사들은 스페인을 몇 년이라는 단시간에 정복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진을 펼쳐서 도망갈 곳이 없는 군사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싸운다는 의미에서 ‘배수의 진(背水之陣)’이라고 부르는 전략이다. 서양에도 이런 배수의 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Burning the Bridge Behin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군대가 일단 다리를 건너간 후에 건너온 다리를 불사른다는 뜻이니 결국 배수의 진이 되는 셈이다. 타릭 장군의 경우에는 다리가 아니라 배를 불사른 경우지만 말이다.

그런데 게임이론에서는 배수의 진에 대한 해석이 일반인들과는 좀 다르다. 일반인들은 배수의 진을 친 군대가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해 승리한다는 의미라고 보지만, 게임이론 전문가들은 배수의 진 의미를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전략이라고 본다. 바다를 건너서 아프리카로부터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살라버린 타릭의 군대와 맞서게 된 스페인 성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전에는 “용감하게 싸워서 한 달만 성을 지키면 적은 지쳐서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부하들을 격려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는 “적군 7000명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야 우리가 살 수 있다”라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과연 적군 7000명을 모두 죽이는 것이 가능할까? 성안의 군인과 백성들은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타릭 장군이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지만, 저항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하면 스페인 성주나 그 부하들은 항복이라는 선택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랍의 장군 타릭 이븐 지야드. [위키피디아]

아랍의 장군 타릭 이븐 지야드. [위키피디아]

겨우 7000명의 군사로 저 넓은 스페인 영토의 성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도 타릭의 배수의 진에 지레 겁먹은 스페인의 성주들이 스스로 성을 나와 항복한 경우가 많았기에 타릭의 스페인 정복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배수의 진이 훌륭한 전략인 이유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적군이 겁을 먹고 항복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를 보면서 새삼 배수의 진 전략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분명히 밝힐 것은 지금부터의 게임이론적인 분석은 순수하게 전략적인 차원의 것이므로 어느 쪽이 비인도적이고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는 논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놓고 이스라엘의 허술한 방비와 명성이 자자한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가 하마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게임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전략적 실수는 배수의 진 전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현재 이스라엘 군사 행동으로 판단해 보면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지탄을 받더라도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완전히 섬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의료 시설이 파괴되면서 전 세계가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이스라엘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다. 그런데 하마스는 이런 이스라엘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전문가들 중에는 하마스가 오히려 스스로 죽어서 소멸하더라도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두 명도 아니고 그 수많은 하마스의 전투요원이 모두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민간인들을 죽이고 인질을 납치했을 때는 이스라엘이 인질의 안위와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피해를 두려워해서 하마스를 소멸시킬 수준의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치 타릭의 군대가 스페인의 성을 공격하기는 해도 싸우다 지치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것이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받고도 한참 동안 가자지구의 공격을 하지 못했고, 미국과 주변 아랍 국가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스라엘군의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완전히 소탕해 뿌리 뽑기까지는 어떤 비난과 희생도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알고 보니 이스라엘군은 철수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타릭의 군대가 죽기 전에는 아프리카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타고 온 배를 불살라버리지 않은 격이다. 배가 바닷가에 묶여 있으니 스페인 성주들은 타릭의 군대가 싸우다 지치면 배를 타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성에 숨어서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타릭의 군대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고 결국 성이 함락되는 상황이 바로 현재의 하마스 상황이라고 보인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다. 하마스에게 만일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하마스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는 인식을 이스라엘이 미리 심어 주었다면 지금의 비극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즉 타릭 장군이 배를 불살라 버린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하마스에게 명확한 시그널을 주었다면 양측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번 비극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배수의 진은 자신의 군대가 죽을힘을 다해서 싸운다는 의지를 적에게 미리 보여주어 적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하마스에게 그런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전략적으로 치명적인 실수이다. 내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이번 전쟁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백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북한의 상황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퇴·양보할 것이라는 환상 주면 안 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북한이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점령한다면? 주요 도시에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바로 북한으로 쳐들어갈 수 있을까? 혹시 ‘이 정도 피해는 참아야지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라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은 나오지 않을까? 또 정말 우리의 군사적 우방이라고 하는 미국과 일본은 서울에 떨어진 미사일을 마치 미국과 일본 영토에 떨어진 미사일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을 응징할 것인가? 혹시 ‘지금 한국을 도와서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동경이나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쏠지 모르니 한국인들을 진정시키고 전쟁을 피하자’라는 의견이 나오지는 않을까?

전면전은 너무 피해가 클 터이니 그냥 대한민국이 피해를 참고 견디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국내외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견은 당연히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배수의 진이 아니므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고 양보할 것이라는 착각과 환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과 그 우방들이 북한에 대해서 확실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는 가장 중요한 전략인 것이다. 과연 우리가 어떤 배와 다리를 불살라야 북한에게 확실한 배수의 진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지 정부와 국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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