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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은미의 마음 읽기

단체사진에 고하는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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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은미 소설가

최은미 소설가

얼마 전 강릉에 다녀왔다. 지난여름에 출간한 소설 『마주』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시상식이 강릉에서 있었다. 강릉으로 가는 동안 나는 공교롭다는 말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던 것 같다. 『마주』를 내고 나서 특별한 계기도 없이 오래전 강릉에서 보냈던 며칠이 떠오르곤 했는데 몇 달 뒤 다른 곳도 아닌 강릉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으니까.

바다와 맛집을 찾아 종종 오가긴 했지만 내게 강릉은 다른 무엇보다 ‘사임당교육원’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강원도 각지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강릉 주문진에 있는 그 교육원에서 4박 5일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강원도교육청 직속기관인 사임당교육원에선 때마다 도내 ‘여고생’을 선발해 교육을 진행했는데 어느 한 해에 나 또한 그곳에 가게 되었다.

여고 시절 사임당교육원 사진
119명에 강요된 ‘국가와 모성’
40대가 된 그들은 지금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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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를 내고 난 뒤 그때가 불쑥불쑥 떠올라 나는 그 교육원을 경험한 누구와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4박 5일 내내 한복을 입고 생활했다는 것과 아침마다 이불의 각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맞춰서 개야 했다는 것, 원주여고에서 온 어떤 아이를 내가 내내 좋아했다는 것과 마지막 날 밤 강당의 조명과 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사임당교육원이 개원한 게 1970년대 중반이었으니 내가 고등학생이던 90년대 중반에는 교육생 기수가 쌓이고 프로그램이 자리 잡은 때였을 것이다. 2011년의 연혁엔 35년간 누적 10만6388명의 학생이 다녀갔다고 되어 있으니 경험자가 어딘가에선 나타날 것이다, 생각하면서 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임당교육원 얘기를 짧게 올렸다.

금세 댓글들이 달렸다. 누군가는 한복을 입고 활을 쏘던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퇴소 때 받은 교육책자 ‘역사는 변해도 어머니 됨은 불변의 진리로 남아 있는 것처럼 모성을 망각하고 이룩될 수 있는 사회윤리는 용납되어져 있지 않다’를 아직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곳이 미혼모 시설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지금은 학생 심리지원 프로그램이나 교직원 연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온라인상에서만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 나는 다시 바쁜 일정에 파묻혔고 그러다 강릉에 가게 된 것이다.

시상식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공식 일정이 끝난 뒤 사람들과 카페에 둘러앉게 되었는데 그 자리엔 공교롭게도 사임당교육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현재도 강릉에 살고 있는 여성분이 있었다. 그분이 말했다. 울렸어요, 라고. 교육원이 아이들을 울렸어요.

수련회나 야영의 캠프파이어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사임당교육원의 마지막 날 밤에도 아이들을 고조시키는 시간이 있었다. 100여 명의 학생이 모인 커다란 강당에서 아마도 우리는 집 생각에, 부모님 생각에, 며칠간 묘하게 우리를 자극해온 어떤 죄책감에 조금씩 훌쩍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훌쩍이는 동안 강당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고 어느 순간 완전한 암흑에 잠겼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지난 뒤 강당 앞쪽에서 서서히 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빛은 다름 아닌 태극기였다. 암흑 속에서 태극기가 선명한 빛으로 떠오른 순간 훌쩍이던 아이들은 목을 놓고 울기 시작했다. 음악이나 내레이션이 곁들여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날 강당에서 눈이 붓도록 울었다.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었을까. 아이들은 울리면 운다. 우리가 겪은 것은 여학생들에게 주입되던 모성이 국가적 의미로 수렴된다는 걸 명확하게 전하고 있는 교육 구성이었다. 우리는 그때 각자의 이유 속에서 북받치기 시작했지만 또한 우리를 울게 하는 선명한 플롯의 영향 아래에서 울었다.  강릉에서 직접 만난 경험자에게 울렸어요, 라는 짧은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가 사임당교육원에 대해 제일 크게 기억하고 있는 게 훼손의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강릉에서 돌아온 얼마 뒤 김장 준비로 본가에 갔다가 앨범을 꺼내 사임당교육원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임당이라는 현판이 달린 회색 기와의 본관 건물 앞에 119명의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비슷비슷한 단발머리에 색색깔의 한복을 입고, 울어서 눈이 부은 얼굴로.

살아 있다면 2023년인 지금 40대를 한창 통과하고 있을 얼굴들이었다. ‘어머니’가 되었다면 된 대로, 안 되었다면 안 된 대로, 받지 않아도 될 질문을 시시때때로 받으며 살고 있겠지. 지난 몇 년 40대 여자를 화자로 한 소설을 써오면서도 나는 사임당교육원을, 오래전 함께 울었던 119명의 얼굴들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마주』를 끝으로 이제는 좀 더 즐겁게 쓸 수 있는 걸 쓰고 싶다고, 내 여자들 이제 안녕이라고, 그렇게 마음먹고 있을 때 이 얼굴들이 나타났다. 단체사진의 탈을 썼지만 하나같이 다른 119개의 표정으로.

왜일까. 어쩌면 지금부터 그걸 생각해보라고 주신 상인지도 모르겠다.

최은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