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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내년 미 대선 트럼프 회오리…우리는 준비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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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외 정책의 핵심은 장기적 관점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한 증권회사에서 미국의 주식매매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쿠키 영상이 올라왔는데, 미국을 ‘천조국(天朝國)’이라고 해서 올렸다. 어느 틈엔가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하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원래 천조국이라 함은 하늘의 명을 받은 정통성이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천조와 관련된 언급이 적지 않다. 중국 중심의 조공 외교 속에서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중국을 천조라고 불렀다. 이는 특히 중국 한(漢)족이 건립한 왕조를 일컫는 말로 성리학에 의하면 천명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였다.

강대국 파워에 올라타는 것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생존 전략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기존의 한·미간 ‘의리’ 작동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조공외교의 교훈, 구한말엔 세계 정세 못 읽고 몰락
미국의 내부 변화 주시하며 ‘글로벌 중추국가’ 역량 쌓아가야

조선 중종 때 체계화한 조공외교

역사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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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대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천조를 중심으로 한 조공 외교가 이념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16세기 초 중종대였다. 중종은 연산군을 폐위하고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이후 중종은 국내적으로 사림의 시대를, 대외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확립하였다. 반정으로 집권한 자신의 정통성과 명분을 확고히 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계승범 『중종의 시대』)

천조에 대한 인식은 선조와 인조를 거치면서 더욱 강해졌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파병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의리’를 강조하는 실질적 계기가 되었다. 200년간 교린한 의리를 배신하고 이유 없이 군사를 일으킨 일본과 달리 ‘천조의 넓은 은혜’로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리를 중시하는 주장은 일본의 통신사 파견 요청 때 이를 거부하는 논리가 되기도 했다.(선조 29년, 1596년)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국에서 중산왕의 세자가 조선에 왔을 때에도 “하늘이 교만한 오랑캐(일본)를 망하게 했으므로 해내에 기쁨이 솟구친다”라면서 ‘천조의 무덕(武德)’이 크게 떨치고 있으니 류큐와 조선이 서로 우방이 되어 일본을 정찰하면서 서로 협조하자는 뜻을 전달하였다.(선조 39년, 1609년)

조선이 명에 의지하는 외교정책은 16세기 말까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였다. 임진왜란 전란 속에서도 일본을 물리친 것도 천조국의 도움으로 해석되었다. 국내적으로 조선왕의 정통성은 중국 황제로부터 보장받은 것이었고, 조선의 신하들은 조선왕의 신하이자 곧 중국 황제의 신하인 배신(陪臣)으로 명명되었다.

편승전략과 힘의 균형전략

이러한 조선 전기의 정책은 어떻게 보면 소국이 생존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성리학을 국가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도 충분했다. 18세기 이후 유럽과 같이 비슷한 국력을 가진 국가가 병립하는 경우에는 생존과 국가이익을 위해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취하는 정책을 취하겠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은 달랐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있을 경우 주변 약소국이 연합으로 역내 절대강국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없다. 유럽에서 존재했던 동맹이나 연합이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이 절대 강자로 존재했던 19세기 이전의 중동, 남동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힘의 균형 전략이 불가능할 때 약소국은 편승 전략을 썼다.

편승 전략은 17세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천조국이 아닌 청나라에 대한 저항이 강했다. 인조는 “설사 우리나라가 의(義)를 지키다가 병화를 입어 그 병화가 비록 참혹하더라도 원래 그 임금의 죄가 아니면, 민심은 반드시 떠나지 않고 국명도 혹 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병자호란 시에 청이 조선을 침략, 유린한 이유가 왕 때문이라는 명분을 주기도 했다. (인조 14년, 1636년)

청나라는 왜 천조국(天朝國)이 됐나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이후 조선은 명분적으로는 청을 천조국이라 여기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의 조공국으로서 또 한 번의 편승 전략을 취했다. 청나라는 18세기 말까지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한다고 평가될 정도로 세계 최강국이었다. 어차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여기에 편승해서 독립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이 또 한 번 위기에 부딪히자 이제 청국에 대해서 처음으로 천조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친 직후 국내외의 위기 속에서 조선 정부는 조선에서 총독 노릇을 하면서 내정에 간섭하고 있었던 원세개(袁世凱)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지금 이 나라가 천조를 섬겨온 지 200여 년이 되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은(皇恩)을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근래에 와서 시국이 일변하면서 외교 관계가 더욱 넓어져가나, 이 나라는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면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홀로 지냈습니다. 이런 때에 천조에서 이끌어주고 일깨워주며 친목을 도모하고 협약을 토의 체결하여 서로 의지하게 했으니, 여기에서 천지가 만물을 덮어주듯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임오년과 갑신년의 변란이 생겨서 종사가 몹시 위태롭게 되고 사람들이 도탄에 빠졌는데 제때에 천조에서 군사를 출동시키고 재물을 쓴 덕으로 난리를 평정하고 위험에서 구원되게 되었습니다. 외인이 틈을 타서 책동할 우려가 있으면 그때마다 난리를 수습하기 위하여 번개처럼 빨리 와서 종사를 다시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여 나라가 다시 이전과 같이 되었습니다.” (고종 23년 1886년)

냉전시기, 미국에 대한 편승전략

청나라는 명나라와 달리 천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명분이 없었음에도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의 편승 정책은 실패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청나라가 아편정책으로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분명 조선에 있어서 명과 청은 다른 나라였다. 하나는 천조국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오랑캐였다. 그러나 약소국으로서 왕조의 보존과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는 명분을 넘어서 강대국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의리’를 배반한 것이었지만,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냉전 시기 미국에 대한 편승 역시 독립과 생존을 위한 기본 전략이었다. 지금도 확실한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거기다 미국과의 동맹은 ‘민주주의’와 한국전쟁 시기 파병을 통해 ‘의리’라는 명분도 준다. 한쪽에 확실하게 편승하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를 보였던 냉전 시기 비동맹국가들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광해군과 인조의 불투명한 편승 전략은 조선을 큰 위기로 내몰았다.

그러나 분명히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조공체제를 확고히 한 중종대의 편승전략은 200여년간 안정을 주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국제정세 변화를 읽지 못한 편승 전략은 백성을 큰 전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명분이 없었음에도 청에 대한 편승 전략은 조선 후기 빛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지만, 구한말 이후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편승 전략은 왕조의 멸망과 식민지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현재에 대한 냉철한 평가

2000년대 초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를 때에는 조선과 명의 관계를 빗대어 한국의 일방적 편승 전략을 비판적 관점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천조국(千兆國)’이라 부른다고 한다. 국방비가 1000조원이 넘는 국가라는 뜻이다. 그러니 다른 국가가 넘볼 수 없는 국방력을 가진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에 대해서는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미국의 다음 선거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다시 등장하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과연 ‘의리’라는 명분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까. 분열된 미국 사회가 200여년 전 토크빌이 보았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게다가 현재 미국의 국방비가 1000조이지만 동시에 빚이 1000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중단기적 처방도 중요하지만, 세계정세뿐만 아니라 미국 내부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장기적 전망을 갖고 외교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현 정부가 국정 과제에 한국을 ‘글로벌 중추국가’로 규정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대외정책이 필요하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