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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선영의 마켓 나우

자본시장의 명예를 위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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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17세기 말 영국 런던의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선주와 상인들이 선박과 화물에 대한 보험을 들기 위해 자산가들을 만나는 장소로 유명했다. 문서의 아래쪽에 자산가들이 서명하는 관행이 금융시장에서 인수인을 뜻하는 영어단어 ‘underwriter’의 어원이다. 인수인의 역할은 해상보험을 넘어 주식과 채권발행에까지 확대됐다. 특히 현대 자본시장에서 신규공모(IPO)의 인수업무는 기업실사와 기업가치(공모가격) 결정을 포함한 투자은행의 핵심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마켓 나우

마켓 나우

자본시장의 역사는 투자자와 자금을 조달하려는 발행회사 사이에 존재하는 태생적인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해온 노력의 역사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시장규율과 제도의 발전사인 것이다. 투자자들이 발행기업의 회계와 사업정보를 직접 실사할 수 없기에 인수인이 제공하는 정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에는 그들이 인수업무를 담당한 기업들의 성과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JP 모건이나 골드만삭스처럼 설립자 이름을 사명으로 사용하는 투자은행들은 이름 자체가 신용과 평판을 상징한다.

최근 증시에서 인수업무를 담당한 기관들의 이름값을 묻는 사건이 터졌다. 지난 8월 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파두라는 반도체 팹리스 기업의 실적 발표가 논란을 일으켰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6월 30일에 2분기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업과 인수인 모두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파두사태를 통해 세 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성과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도입된 지 18년이 지났다. 상장할 때까지만 숫자를 부풀린 기업인지, IPO 자금을 통해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기업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상장주선인의 기업실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기업실사는 발행기업의 가치평가와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인수업무의 핵심이다. 셋째, 개인투자자 또한 기업과 상장주선인을 감시해야 한다. 내가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나온다고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모범이 되는 사람에게 명예가 주어지던 때가 있었다. 명예를 지키는 사회는 정직과 신의를 추앙하는 사회이며, 개인의 성공이 집단적 성취로 이어지는 사회다. 개인의 경제적 동기가 유일한 관심이며, 사회적 책임을 모두 외면한다면 만년 박스피를 벗어날 수 없다. 자본시장의 신의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외부로 돌리게 되며, 공매도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잘못된 내러티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파두사태를 보며 우리 자본시장에 지켜야 할 명예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생각해본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