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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포커스

새 아시아 안보 그룹과 한국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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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윤석열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함께 대한민국 외교 정책은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과거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시아를 다극화된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꺼렸다. 미·중으로 양극화된 세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초점을 둔 나머지 일본·인도·호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아세안(ASEAN)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다.

이전 정부의 이런 정책으로 인해 한국은 인·태 지역에서 증가하고 있는 역동적 안보 외교 흐름에서 뒤처졌다. 새로운 그룹 형성에서 일본이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특히 대북 정책에 쏟아붓고 있던 정치적 자산을 일본에 할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다자주의 오커스·쿼드 등장 때
박근혜·문재인 정부, 기회 놓쳐
한반도 안보 지렛대로 활용해야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완전히 바뀌었다. 윤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내렸고, 이를 기반으로 역내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정책으로 기조가 안착했다. 이것이 한반도 안보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윤 정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한발 늦은 변화다. 한국은 이런 전략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새로운 지역 전략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핵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사시 즉각적 삼국 협의, 군사 훈련과 사이버 공격 대비 강화, 역내 외교 조율 및 연례 삼국 정상회담 개최가 여기에 포함된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인 한국·일본이 함께 한반도에서 억지력을 강화하고 역내 외교 상황에 영향력을 함께 키워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가 이러한 전략의 우선순위에 들어가야 한다. 호주 정부가 최근 발표한 국방전략검토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 80년간 겪어 왔던 지정학적 요충지의 운명을 호주도 경험하고 있다. 역내 다양한 지역에서 호주군이 미군사령부에 통합돼 있다. 한반도 유엔군사령부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호주도 미국·일본과 비교할 때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다. 미국과 긴밀한 동맹 및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과 호주는 같은 중견국으로서 전략적 방향이 유사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의 인·태 전략의 중심에 호주를 놓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은 이미 경험했다. 호주에서 열린 ‘2023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에 한국군이 최대 규모로 참여했고, 방산업체 한화의 K-9 자주포 천둥을 시연했다. 호주가 추진하는 국방 이니셔티브인 오커스(AUKUS)에 당장은 아니라도 잠재적으로 한국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일본·호주·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도 사안별로 한국과의 협력이 가능하다. 캐나다·뉴질랜드 등 기타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많은 전략 전문가가 있고, 이들은 쿼드 참여에 관심이 많다. 다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쿼드 의제에 있어 영향력을 유지하고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는 인도는 쿼드가 지금처럼 4자 협의체로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태 지역을 벗어나 나토 정상회의 참석 등 기술 디커플링(탈동조화)에서 독재 국가의 허위 정보 대응에 이르기까지 유로-대서양과 인·태 안보동맹그룹 사이에 전략적 일치성을 담보하기 위한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나토와 유럽연합(EU)은 유사시 한반도 지원에 나설 것이 확실한데, 그 과정에서 유럽은 중국에 대한 가장 실질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른 외교·안보 및 경제 그룹에서도 한국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방산물자는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강력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인·태 지역에서 한국의 투자는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경험한 한국의 민주 규범 수호와 지지는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강력하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한국이 7년 전 다극화·다자주의를 표방하며 새롭게 부상한 오커스나 쿼드에 함께 참여했더라면 아마도 창립 회원국으로서 이미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은 이들 그룹 및 다른 네트워크를 지렛대로 활용해 역내 안보를 함께 구축해 나가면서 한반도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