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에게 말 걸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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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이가 말을 잊었다.'

MBC TV 월화사극 <대장금>의 타이틀롤을 맡고 있는 이영애(32)는 촬영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말을 아낀다. 아끼는 수준을 넘어 카메라 앞을 제외하면 아예 '함구'다.

이영애가 말을 아끼는 가장 큰 이유는 기(氣) 보호 차원. 밤샘을 거듭하는 촬영 강행군으로 체력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그는 홍삼엑기스와 대추차 등을 복용하며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일단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키 위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장금>의 최병길 조연출은 "이영애 씨는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질 때도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면 연기에 몰입하는 힘, 바로 기가 흐트러질까봐 그런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격정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금방 감정에 복받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등 가히 폭발적인 연기를 한다. 연기 경험이 훨씬 많은 최상궁(견미리)이나 정상궁(여운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저런 다소곳한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힘이 있을까 무섭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또 한상궁 역의 양미경도 "연기자가 말을 많이 하면 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연기를 앞두고는 말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氣)수련에 가까운 장금의 이런 노력에는 주위도 암묵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 몇몇 연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스태프들까지 이영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짧은 말로 현장의 상황을 전해준다. 멀리서 부르지 않고 이영애에게 직접 뛰어가 상황을 알리고 말을 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드라마의 높은 인기 속에 이영애의 주위에는 늘 취재진이 들끓지만 이들 역시 이영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취재가 안된다'는 볼멘 소리조차 '연기를 향한 열정 때문인데 어찌 하겠는가. 게다가 거의 완벽하게 맡은 역을 해내는데 할 말이 없다'는 칭찬으로 돌아선다.

이영애의 이런 모습에 제작진은 지난 99년 SBS TV <청춘의 덫> 출연 당시 심은하를 떠올리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원에게 버림받은 후 표독스러워진 감정 연기를 하며 심은하는 촬영 현장에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삼간 것은 물론 행동 반경까지 아껴 촬영 스튜디오에서 분장실까지 업혀 가기도 했다.

2일 오후 1시부터 3일 오전 7시까지 밤을 꼬박 새며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대장금> 촬영을 마친 이영애는 이날 정오부터 경기도 남양주와 서울 강남을 오가며 'LG 자이 아파트' CF 촬영에도 나섰다. 보통의 '기'로선 감당하기 힘든 논스톱 강행군임은 물론이다.

말까지 아끼면서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영애가 앞으로 어떤 명장면, 명대사를 만들어 낼지 <대장금> 팬들은 애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일간스포츠 이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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