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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AI 시대 각광받는 ‘삼삼’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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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검은 돌 흰 돌

검은 돌 흰 돌

‘삼삼’은 AI 시대의 화두다. 바둑판의 좌표로 3의 3. 오랜 세월 외면당하며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했다. 그냥 ‘3·三’으로 쓰거나 삼삼으로 쓴다. 하지만 AI 시대에 와서 삼삼은 가장 자주 언급되는 존재이자 가장 강력한 의문부호가 됐다.

바둑판에서 제3선은 실리선이고 제4선은 세력선이다. 화점은 세력선+세력선이고 소목은 실리선+세력선이다. 삼삼은 실리선+실리선. 극단적으로 실리에 치우친 탓인지 “발전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일본 막부시대 바둑을 지배했던 본인방가에서는 삼삼을 ‘귀문(鬼門)’으로 정해놓고 아예 착수를 금지했다. AI 이전 인기 1위는 단연 소목이었다.

AI 시대에 와서는 화점이 소목을 제치고 인기가 급등했다. AI를 켜면 빈 바둑판이 나오고 잠시 후 4개의 화점에서 파란 점이 깜박인다.

소목도 화점과 집 차이는 없고 승률에서만 약간 밀리는데(0.4%) 이 차이가 인기를 만들어낸다. AI의 블루 스폿이 주는 힘은 강력해서 결국 화점이 초반 최고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첫수 8개 후보 중에 삼삼은 아예 없다. 삼삼을 두면 0.2집 내려간다. 인간에게 0.2집은 별거 아니지만 심리적인 영향은 크다. 당연히 삼삼의 인기는 화점이나 소목보다 크게 밀린다.

하지만 네 귀가 화점이나 소목으로 채워진 다음에 돌연 삼삼이 부상한다. 화점 밑의 삼삼에서 파란 불빛이 깜박인다. 처음엔 많은 프로들이 AI의 즉각적인 삼삼 파내기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말도 안 된다고 격앙했다. (이창호 9단은 지금도 동의하지 않는 느낌). 하지만 이제는 대세가 되었고 관련 정석도 숱하게 나왔다.

여기서 의문이 시작된다. 화점은 블루 스폿이고 그 화점을 파고드는 삼삼도 블루 스폿이다. 모순 아닌가. 삼삼은 혼자서는 블루 스폿이 아니지만 화점을 파고들 때는 거의 블루 스폿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블루 스폿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화점 역시 블루 스폿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에 모종의 비밀이 숨어있는 것 아닐까.

박정상 9단은 삼삼을 첫수나 둘째 수로 두기 힘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굳힘이 좋지 않다. 굳힘이란 귀를 집으로 만드는 과정인데 삼삼에서 눈목자로 굳히는 것과 화점에서 날일자로 굳히는 것을 비교하면 화점 쪽이 낫다. 둘째, 바둑은 초반에 축머리가 치명적일 수 있는데 삼삼은 상대방에게 쉽게 축머리 이용을 당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시안게임에서 신진서 9단은 중요한 단체전에서 흑을 쥐고 두 번인가 삼삼을 사용했다. 초반 4수의 선택은 결국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우칭위안은 슈사이와의 대결에서 화점·삼삼·천원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포진을 들고나왔다. 본인방과의 시합에서 본인방가의 귀문에 착수한 것이다. 비난이 일었다. 이후 삼삼은 잠잠했다.

훗날 ‘면도날’ 사카다 에이오 9단이 삼삼을 썼고 조치훈 9단도 중요한 실전에서 종종 사용하며 삼삼은 명맥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초반에 삼삼을 파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건 명백히 기리(棋理)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AI 시대는 다르다. 삼삼을 먼저 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화점을 두면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쳐들어가는 게 핵심이다.

오랜 세월 삼삼은 ‘화점의 약점’이었다. 한 수 지켜도 삼삼 때문에 집이 되지 않아서 접바둑에선 하수의 근심이었다. 그러나 AI는 화점에서 한 수 굳힌 뒤에 삼삼에 들어가는 것은 좋게 보지 않는다. 살아도 별거 없다고 한다. 뭔가 복잡하다. 기리가 뒤집어지고 바둑의 근본이 변한 느낌이다.

삼삼에 대한 의문부호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취향의 문제로 낙착을 보기에는 조금 허전하다. 삼삼의 비밀을 푸는 것은 AI 바둑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기에 인간 고수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진서 9단은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삼삼은 기분전환용으로 가끔 둡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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