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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상징을 얹은 로퍼, 패션 아이콘이 되다

중앙선데이

입력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1959년 캐주얼한 차림의 배우 알랭 들롱, 1974년 백악관에서 당시 대통령 포드를 만난 정장 차림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 부시), 1977년 스케이드보드를 타는 배우 조디 포스터, 1999년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 그리고 최근 거리에서 포착된 모델 지지 하디드.

연령·성별·장소·상황이 모든 제각각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구찌 홀스빗 로퍼(Gucci Horsebit Loafer)를 신고 있었다는 것. 올해는 이 구두가 출시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구찌 브랜드의 상징인 홀스빗 모티프, 즉 말 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따온 금속 장식이 출현한 70주년이기도 하다. 홀스빗 모티프는 오늘날 핸드백, 벨트, 주얼리 등 다양한 구찌 아이템에 나타나지만 그 시작은 바로 로퍼였다.

구찌의 창립자 구찌오 구찌(1881-1953)와 그의 아들 알도 구찌(1905-1990)는 승마 및 그와 관련된 아이템이야말로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함축한다고 봤다. 구찌오가 젊은 시절 영국의 최고급 호텔 사보이에서 일하면서 고객들을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구찌오는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 상류층의 여행용품과 승마용품 중심의 가죽제품 가게를 냈다. 부친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확장한 그의 아들 알도는 1953년 뉴욕 부티크 오픈을 기념해 새로운 남성용 로퍼를 내놓았는데, 거기에 말 재갈의 형태를 따온 금속 장식을 부착했다. 이것이 바로 구찌 홀스빗 로퍼다. 이 로퍼는 198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구 소장품이 될 정도로 패션사의 아이콘이 됐다.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CNN은 “구찌 홀스빗 로퍼의 지속적인 인기의 비결은 바로 이 신발의 다용도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홀스빗 로퍼가 출현한 1950년대에 로퍼는 매우 캐주얼한 구두였고 정장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알도 구찌는 로퍼의 대중적인 인기를 활용함과 동시에 말 재갈 형태의 장식을 사용함으로써, 즉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인 승마의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가했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정치인이 양복에 매치해 신을 수도 있으며(부시 전 대통령), 바위산에서 캐주얼한 차림에 신을 수도 있는 것이다.(배우 율 브리너)

여기에는 장인의 기술력도 필요하다. 백악관에서 신을 수 있을 만큼 품위 있는 형태를 갖추고도 조디 포스터가 그랬듯 스케이드보드를 탈 수 있을만큼 편하기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구찌 사에 따르면 홀스빗 로퍼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하고 안창이 따로 없어 가볍고 유연하며 뛰어난 내구성을 가지도록 제작되었다.

이렇게 남녀를 초월해 다양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홀스빗 로퍼의 70주년을 기념해서 구찌는 지난 6월 중순 밀라노 패션 위크 기간 중 남성복 패션쇼에 맞춰 몰입형 전시회 '구찌 홀스빗 소사이어티'를 개최했다. 전시 장소는 밀라노의 미술 디자인 패션 전시장인 ‘스파치오 마이오키.’ 이곳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레시오 아스카리가 기획한 행사는 승마에 뿌리를 둔 홀스빗의 기원과 컨트리 클럽의 전통을 탐구하는 전시였다. 실제 집과 유사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 10명이 작품을 선보였다.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말고삐와 연결된 재갈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으로 장식된 로퍼와 핸드백. [사진 구찌]

이를테면 ‘식당’ 공간에는 미국 조각가 피터패터가 디자인한 초현실주의적인 테이블이 전시되었는데 테이블 다리가 구찌 바지와 홀스빗 로퍼를 신고 있는 사람의 다리와 같은 형상이었다. ‘침실’ 공간에는 미국 사진작가 찰리 잉그먼의 거대한 말 사진과 스위스 아티스트 실비 플뢰리의 침대 같은 설치 작품이 전시되었다.

‘안뜰’ 공간에는 이탈리아의 비주얼 아티스트인 안나 프란체스치니가 구찌 아카이브의 아이템을 중심으로 위트 있게 구성한 ‘호기심의 방’(과거 유럽 상류층이 각종 진귀한 물건을 모아놓은 소규모 개인 박물관)을 공개했다. 참여 작가 중에는 한국 작가 이규한도 있었다. 구찌 아이템에서 발견한 다양한 패턴을 한지 종이등 무늬로 만들어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도록 한 작품이었다.

이 전시는 구찌 홀스빗 로퍼의 디자인 진화에도 영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구찌는 2010년대에 와서는 시어링을 덧댄 슬리퍼 형태의 변형된 홀스빗 로퍼를 선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간 홀스빗 로퍼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처음에는 남성용만 있었으나 60년대에 코가 슬림하고 굽이 높은 여성용 홀스빗 로퍼도 출시됐다. 70년대 들어서는 영리하게 시대 변화에 맞춰 남성용과 동일한 디자인의 활동성 있는 여성용 홀스빗 로퍼가 나왔다. 그후 홀스빗 로퍼는 70년대의 반항적 신세대와 80년대 부상한 커리어우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와 같은 진화가 구찌 홀스빗 로퍼의 오랜 생명력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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