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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우주인 넷이 3년간 먹을 식량’ 화성 유인 탐사의 필수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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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젊고 똑똑했던 청년이 심한 뇌염을 앓고 난 뒤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지적 능력에는 손상이 없었음에도, 눈앞의 물체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캐럴 계숙 윤은 자신의 책에서 1980년 영국에서 발생한 이 청년의 불행을 소개하고, 이를 뇌염이 그의 뇌의 일부를 손상시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아주 어릴 적부터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이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먹거리가 대개 생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기와 해산물, 곡식과 채소, 야채, 버섯과 각종 향신료까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은 생물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생물을 생물이 아닌 것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다.

NASA가 내건 우주식량 챌린지
지구 밖 먹거리 어떻게 구할까
수경재배, 곤충 키우기 등 제안
지구촌 식량문제도 해결할까

‘딥 스페이스 푸드 챌린지’ 시작

국제 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2021년 11월 우주 실험실 안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확한 고추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 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2021년 11월 우주 실험실 안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확한 고추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풍요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이제 먹는다는 행위를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에서 식도락과 탐닉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이 당연한 사실은 최근 들어 활성화된 지구 밖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매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간은 지구에서든 달에서든 화성에서든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존재지만, 지구 밖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거액의 상금을 걸고 ‘딥 스페이스 푸드 챌린지(Deep space food challenge)’를 시작했다. ‘4명의 우주인이 3년 동안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자원을 투자하면서 최대, 그리고 최선의 상태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라’는 조건을 걸고서 말이다. ‘4명의 3년치 식량’, 이는 인류가 화성을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숫자이다.

이 챌린지에는 총 32개국에서 300개 이상의 팀이 참여했다. 1, 2차 심사를 거쳐 선발된 최종 8개 팀이 2024년 8월에 열릴 실제 시연을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팀들의 아이디어는 매우 기발하고 흥미롭다.  각각의 아이디어들은 시스템 개선, 바이오컬처, 그리고 합성식량,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시스템 개선을 주장하는 팀은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나, 좁은 공간에서 더 효율적으로 재배하는 방법, 물과 영양분을 폐쇄 루프 속에서 손실 없이 순환시키는 수경 재배 시스템 등을 통해 더 좁은 공간에서 더 효율적으로 먹거리를 재배하기 위한 개선점을 찾아내고자 한다. 실패할 확률이 낮은 방법들이다. 광합성을 통한 유기물의 합성은 이미 수십억 년 동안 검증된 매우 성공적인 생산 방식이다. 재배 시스템을 개선하고,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최종 수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산물은 우리가 기존에 먹어오던 먹거리와 동일하므로 거부감도 적을 것이다.

폐쇄공간에서 3년간 살아남기

또 다른 팀들은 바이오컬처(bioculture) 방식을 제안한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균류·해조류 등을 배양하거나, 식용 곤충을 키워 원재료를 얻고, 이들을 조합해 음식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아무리 식물의 효율을 높인다 하더라도, 미생물이나 균류만큼 밀집된 공간에서 키우기는 어렵다. 또한 3년간 폐쇄된 공간에서 똑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기에, 이들은 미생물과 균류를 통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이들을 조합해 음식의 다양성을 꾀하려는 것이다. 낯선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만 줄여줄 수 있다면 이 역시 효과는 좋아 보인다.

세 번째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듯 식량을 제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앞선 두 방식에 비해 좀 더 생화학적이다. 우주 비행사가 숨 쉴 때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유기물로 전환한다든가, 화학적 공정을 통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에 비해 가장 낯선 방식이지만,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재료를 외부에서 들여오는 과정임을 고려한다면, 이런 합성 공정은 우주선이라는 인공적인 환경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성을 꿈꾸며 지구를 살다

언뜻 이 챌린지는 괴짜들만의 기발한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성 탐사는 아직 먼일이다. 정말로 효율성을 따진다면 사람이 아닌 로봇을 이용한 우주 탐사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도 NASA는 왜 거금을 걸고 이 챌린지를 시도하는 것일까. 이는 이 챌린지의 슬로건인  ‘지구와 그 너머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좋은 음식’(Good food for everyone on Earth and beyond)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음식을 만드는 방법,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먹거리를 확보하는 수단은 남극이나 사막 한가운데처럼 극단적이고 척박한 지역에서도 분명 유용할 것이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기아 문제의 해결에 근본적인 시사점을 던져줄 수도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어야만 하는 존재로 남기보다는, 먹으면서도 동시에 한계를 넘어 지구 밖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