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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고수 이란, 경제난·내정 불안정 겹쳐 군사작전 부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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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03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동 각국 셈법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국제사회의 주목을 모으고 있는 중동 국가 지도자들. 왼쪽부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AFP·EPA·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국제사회의 주목을 모으고 있는 중동 국가 지도자들. 왼쪽부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AFP·EPA·로이터=연합뉴스]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촉발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다음 주로 한 달을 맞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본격화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2일(현지시간) 가자시티를 완전 포위하고 하마스의 근거지를 집중 공격하는 등 대대적인 보복 공세에 나선 상태다.

관건은 이번 전쟁이 과연 어디까지 확대될 것이냐다. 무슬림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동의 인근 국가들이 참전할 경우 가자지구를 넘어 중동 전체로 전선이 확장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 사태를 바라보는 중동 각국의 셈법과 속내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반미·반이스라엘 연대를 주도하는 이란과 이를 따르는 ‘시아파 벨트’의 정권 및 무장 정파들이다. 예멘의 소수 시아파(인구의 약 35%)인 후티 반군과 레바논의 소수 시아파(약 32%)인 헤즈볼라 반군, 범시아파로 분류되는 시리아 알라위파(약 10%)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이 그들이다. 후티 반군은 2014년부터 정부군·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이뤄진 수니파 연합군에 맞서 내전을 치러 왔다. 현지에선 이란이 공급하는 무기와 물자에 의존하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가 파병까지 하며 돕는 수니파 정부군의 대립이 사실상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적잖다.

변수는 사우디가 후티 반군의 미사일을 미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으로 요격해 왔는데, 미국산 미사일은 미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가 최근 한국산 요격 미사일인 천궁-Ⅱ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중동 정세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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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가 활동 중인 레바논과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도 관심의 대상이다. 레바논은 기독교·이슬람교·드루즈교 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로 이들 종파가 정부 요직을 나눠 맡는 독특한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처럼 종교 간 세력균형이 오랫동안 유지돼 온 현실을 감안할 때 레바논 정부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중 어느 한 편을 들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도 오랜 내전 속에 이스라엘을 위협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게 공통된 평가다.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6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도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들 시아파 정권과 무장 정파들의 배후로 지목받는 이란도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내부 상황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오랜 경제난에 히잡 시위 등 반정부 활동이 지속되면서 내정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젊은층 여론이 정부의 강경 노선에 부정적인 것도 부담이다. 게다가 이란이 언어와 문화, 이슬람 종파 등에서 중동 내 비주류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시아파인 이란이 향후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작전에 나서더라도 다른 수니파 중동 국가들이 선뜻 동참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질적 배경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동의 또 다른 맹주로 꼽히는 사우디의 최근 행보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최근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적극 추진해 왔다. 석유 경제에서 첨단 경제로의 전환과 네옴 메가시티 건설 등 국가적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동 정세 안정이 절대적이란 판단에서다.

그런 점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후 빈 살만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함께한다”고 선언했지만 하마스 대신 하마스와 경쟁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통화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팔레스타인 지지와 하마스 지지를 분리한 셈이다. 특히 사우디는 메카·메디나 등 이슬람 성지가 위치한 국가로 다른 이슬람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점에서 빈 살만의 전략적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국제사회의 진단이다.

빈 살만이 이슬람 세계에서 갖고 있는 지위에 맞설 만한 인물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꼽힌다. 이슬람주의자인 에르도안은 과거 오스만 튀르크 제국 때 군주인 술탄이 이슬람 세계를 이끄는 정교일치의 최고 지도자였다는 점을 내세우며 튀르키예가 이슬람의 중심 국가라고 자처해 왔다. 여기에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되면서 두 나라 관계는 더욱 악화됐고 이후 에르도안은 빈 살만을 맹비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튀르키예가 하마스 요원들에게 군사 훈련과 컨설팅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에르도안의 향후 대응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추진해 온 에르도안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중립을 지킬지, 아니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집트는 가자지구 국경 개방에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등 하마스와 엮이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하마스와 그 동조자들이 이집트로 대거 몰려올 경우 현 정권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처럼 겉으로는 중동의 대다수 이슬람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데 동조하고 있지만 군사력까지 동원해 하마스를 도울 나라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1~4차 중동전쟁 때는 아랍민족주의라는 기치 아래 뭉쳐 사생결단으로 맞섰지만 지금은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한층 복잡해진 가운데 각자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반이스라엘 연대가 당장 구체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다만 중동 정세는 워낙 변수가 많고 휘발성이 높은 데다 헤즈볼라 등 친이란 무장 정파들도 공세 수위를 높여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언제든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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