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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4개의 전쟁 발발 땐 미국은 한국 도와줄 여력 없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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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지난 8월 열린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3국 간 안보 협력 기반을 준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켜 실전적 행동 지침을 마련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정보 공유는 물론 대응 훈련을 가능하게 했다. 훈련 영역도 지상·해상·공중을 넘어 사이버를 포함한 전 영역으로 확대했다. 훈련 기간 또한 3~5년의 다개년 계획으로 실효성을 높였다. 한마디로 안보 협력의 비전과 이행 방안에 대한 지속력 있는 지침을 만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도 명암이 공존한다. 회담은 일견 3국이 공동으로 당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다분히 중국의 팽창 정책에 대비한 것이다. 한·미·일 간에 공고해진 협력 체계는 북·중·러를 더욱 결속시켜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대만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대만 사태가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 이어
대만 사태시 북한 도발할 수도
북한은 바다서 도발할 가능성
핵잠 개발 등 해군력 증강 시급

“중, 대만·한반도 두 개의 전선 만들 것”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 난민 캠프에서 1일 부진한 구조에 괴로워하는 남성.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 난민 캠프에서 1일 부진한 구조에 괴로워하는 남성. [로이터=연합뉴스]

필자는 지난 8월 대만 외교부와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주관한 토론회에 참가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응 방안을 토의하는 자리였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 나토 대표 등 8명의 패널이 참가했다. 침공 억지 방안을 비롯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적 해양 활동 보장, 경제적 파급효과 최소화 등 많은 주제를 토의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한반도에서도 동시에 전선을 만들 것이라는 미국 싱크탱크 스코크로프트 전략안보센터의 주장이었다. 이는 미국의 힘을 분산하기 위한 중국의 책략으로 과거 6·25 전쟁 사례를 고려할 때 가능한 주장이다. 최근 활발해진 북·중·러의 활동을 보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중국은 이에 대비해 군 지휘 구조를 북부 관구(북한)와 동부 관구(대만)로 재편성하였다. 2개의 전쟁(분쟁)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의 군사력은 반감할 것이다.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장관)에게 그 가능성과 대책을 묻자 즉답을 피했다. 온전히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대만은 그런 담론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북한, 핵추진 잠수함 개발 가능성

지난달 28일 도네츠크에서 러시아군 진지로 포격하는 우크라이나군 탱크. [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도네츠크에서 러시아군 진지로 포격하는 우크라이나군 탱크. [AP=연합뉴스]

패널로 참가한 마커스 갈라우스카스 스코크로프트센터 연구원은 “분리된 분쟁 상황은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도 “한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중국의 개입은 단지 시기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지난 9월 한국 언론 기고를 통해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일련의 주장은 대만 사태에 미온적인 우리에 대한 전략적 압박일지도 모른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며 미국이 그토록 피하려 했던 2개의 동시 전쟁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여파로 대만과 북한 사태까지 발생한다면 자칫 4개의 전쟁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며,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다. 그런 경우 미국은 우리를 도와줄 여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그 무대는 바다가 될 것이다. 늘 그래왔듯 해상에서 적절한 수위의 도발로 미국과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정은이 해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러시아와 협조해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면 역내 해양 안보 환경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한반도를 벗어나 어디서든 도발이 가능하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이용한 전략적 타격은 물론 통상로에서의 어뢰 공격 등 선택지가 무궁무진하다.

북핵엔 독자 대응 역량도 구축해야

하루빨리 현 사태를 안정시키고 북한 도발을 억제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핵 추진 잠수함 대응 능력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핵연료 확보와 농축에 제약이 없는 북한은 조만간 핵 추진 잠수함을 확보할 공산이 크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우리로서는 갈 길이 멀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살려 대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제한적인 핵 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2022년 핵 선제공격 선언과 함께 올해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며 그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 억제하되 독자적인 대응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최근 국제 정세는 온전히 미국의 힘에 의존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토론회 중 대만은 범국민적 항전 의지를 결집할 동기부여 방안이 없다는 말에 놀랐다. 국민의 98%가 본토와 같은 한족이다. 젊은 세대는 왜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 하느냐고 반문한단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젊은 세대는 어떨까? 우리는 한동안 북한이 주적이라는 개념조차 사용하지 못했다. 강압적인 교육 방법으로는 젊은이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우리의 긴박한 안보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진정한 애국심을 고양할 새로운 교육 방법이 절실하다.

대만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하며 대비 태세를 살펴보았다. 중국의 침공에 맞서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와 달리 실질적인 대응 능력은 없어 보였다. 미 해군과 연합작전이 필요하나 관련된 훈련 실적은 물론 계획조차 없다고 한다. 경제적 번영에도 스스로 싸워 이길 능력이 없는 나라의 암담한 현실을 목격하며 자주국방 태세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였다. 스스로 지킬 의지와 힘이 없이는, 비록 동맹이라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