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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층 국민’이 실종된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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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정당이 국민을 유쾌하게 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20일 국민의힘이 ‘대법원장 임명 부결, 이재명 방탄의 마지막 퍼즐’이라는 현수막을 스스로 철거하고 대신 ‘국민의 뜻대로 민생 속으로’라는 현수막을 거는 뉴스와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막말·혐오·비방·조롱의 길거리 배출구인 현수막의 절반이 퇴장한다는 선언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환영한다면서도 자신들의 현수막은 ‘팩트에 기반’했다고 주장하며 “먼저 (현황을) 파악해 볼 것”이라고 하니 아직은 반쪽짜리이다. 그러나 24일 공격적·폭력적 언행의 산실인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피켓팅과 고성 및 야유 퇴출에 합의한 것은 고무적이다.

평론식 시사방송 부작용 심각
여야 모두 일방적 지지자 나와
토론 대신 비방과 편견만 난무
국민의 정보욕구 충족 못 시켜

정치 이야기, 금기시 말고 ‘공존형 토론’을. [일러스트=김지윤]

정치 이야기, 금기시 말고 ‘공존형 토론’을. [일러스트=김지윤]

이참에 국회와 함께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를 황폐화하는 원인 중 하나인 ‘평론식 시사방송’(잠정적 명칭임)도 자진 철거를 포함하는 근본적인 개선을 꾀했으면 한다. 평론식 시사방송은 특정 뉴스를 소개하는 진행자와 2명 이상의 다수 출연자가 패널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변호사, 전·현직 정치인, 전·현직 정당 당직자, 전직 청와대 공직자, 전직 언론인, 방송평론가, 여론조사자 등이 뉴스의 이슈를 해설·논평하고 주장도 개진하는 포맷이다. 지상파에도 존재했지만 2011년 말에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도입되면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연합뉴스TV와 YTN도 마찬가지다).

뉴스를 다루는 프로는 주목 대상이 된다. ‘뉴스는 공동체 구성원의 공통 경험을 공적으로 구성하며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The sociology of news』, Schudson) 중요한 텍스트 체계이기 때문이다.

뉴스 방송은 지상파에서 이미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내용으로 혹독한 경험을 치렀었다.

예를 들어 5공화국 시절 KBS가 밤 9시 메인뉴스를 무조건 대통령 동정으로 시작해서 ‘땡전 뉴스’로 불리며 국민의 지탄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정권 미화 편향 방송으로 심각한 시청률 감소도 경험했다.

KBS의 경우, 2012년 8월 평균 30%가 넘던 시청률이 2018년 상반기 13%로 하락했다.

MBC의 밤 9시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2017년 5%대에서 2018년 3%대로 떨어지고, 2018년 8월 9일에는 시청률 1.9%로 지상파 방송뉴스로는 처음으로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한국 공영방송 TV 뉴스의 형식적·내용적 도식에 따른 심층성 분석’, 오해정·최지향) ‘거듭나겠다’고 반성했다.

공영방송의 영향력 감소는 다매체 다채널 미디어 방송환경의 본격화로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현실을 전달하고 해설하는 차원을 넘어 당파적 입장을 노골화함으로써 공정성을 훼손하고 신뢰도 추락을 초래했다.

‘평론식 시사방송’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송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중도층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공동체의 이슈에 대한 태도에서 대략 ‘여당 우호’ 30%, ‘야당 우호’ 30%, ‘중도층’ 40%의 분포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장 비중이 높은 중도층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참여하는 프로는 없다. 양쪽 30%에 속하는 출연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을 옹호하고, 상대의 입장에 대해서는 비난으로 일관할 뿐이다. 극단의 대결과 외골수 편견이 난무해도 이들을 견제할 중도층의 불편부당한 관점과 의견이 설 땅이 없다.

시사 프로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다양한 의견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 공동체의 지혜를 쌓아가는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매번 습관처럼  모든 것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말싸움을 반복하는 무책임한 출연자와 방송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대다수 국민은 자괴감만 높아간다.

‘평론식 시사방송’이 특정 정당의 이익을 강변하는 출연자들의 언어 공격과 궤변의 무대가 되는 제작 관행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불통의 혼돈에는 익숙해지고 소통의 가치에는 무감각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민주적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송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노출, 논의, 해결 과정을 공정하게 제공하며, 이 과정에 합리적으로 참여하는 ‘정보를 활용하는 시민’(informed citizen)의 양성에 기여하는 방송이다. 바람직한 시사 방송은 개딸과 일베와 같은 폭력적 확증편향의 팬덤이 아니라 합리적인 국민의 정보 욕구의 충족을 지향하는 방송이다. 방송의 본질적 기능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에 있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