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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치적으로 만든 ‘역사 특별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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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형석 역사학자·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김형석 역사학자·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많은 국민의 관심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쏠렸던 지난달 국회에서 ‘동학 특별법’ 개정안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조용히 통과했다. 그동안 역사 관련 특별법은 1995년 ‘5·18 특별법’을 시작으로 ‘친일반민족행위 특별법’(2004년), ‘동학 특별법’(2004년), ‘과거사 특별법’(2005년), ‘일제 강제동원특별법’ (2007년), ‘제주 4·3사건 특별법’(2021년), ‘여수·순천사건 특별법’(2021년), ‘노근리사건 특별법’(2021년)이 제정됐다. ‘거창사건 특별법’과 ‘근로정신대 특별법’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를 합치면 이른바 ‘10대 역사 특별법’이 된다.

최근 ‘동학특별법’ 개정 무리수
보훈 체계 흔들고 공정성 논란
역사를 법으로 재단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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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특별법에는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수반되기에 역사 특별법이 양산되면서 문제점도 적지 않게 생긴다. 국가유공자는 원칙적으로 국가보훈부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격 여부를 정한다. 그런데 5·18 유공자는 특별법에 의해 광주광역시장에게 업무가 위임됐고, 기존의 5·18 유공자가 보증만 하면 공적을 인증해주는 인우(隣友)보증제가 도입됐다. 공정해야 할 유공자 선정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진 꼴이다.

이로 인해 5·18 유공자에 대한 불신이 끝없이 제기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투명성을 위해 명단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급기야 5·18을 고의로 비방하면 처벌하는 조항까지 신설됐다. 이것이 논란을 일으킨 ‘5·18 역사왜곡처벌법’이다.

그런데 동학 특별법은 아예 소관 부처를 국가보훈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로 특정했다. 국가의 보훈 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결정이다. 조선시대에 발생한 동학 사건 참여자를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다. 보훈 대상의 범위도 과도하다.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 인정되고, 독립유공자만 3대 손자녀까지인데 동학은 5대 고손자까지 대상이다.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만든 역사 특별법의 최대 문제점은 역사 왜곡에 있다. ‘제주 4·3사건 특별법’은 4·3사건에 대해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4·3사건은 1948년 5·10 총선거에 대한 남로당의 반대투쟁으로 일어난 사건이 명백한데도 그보다 1년 전의 3·1절에 발생한 사건을 억지로 소환해 당시 미군정에서 발생한 반제(反帝)운동으로 교묘하게 위장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4·3사건의 역사적 성격이 남북 분단에 저항한 통일 운동으로 돌변했다.

동학은 586 운동권 세력의 역사 인식에서 첫머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동학농민운동-항일 의병-무장독립운동-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지는 역사관으로 이른바 ‘백년전쟁’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대한민국 역사가 출발한 것처럼 전시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운동권 출신 관장의 유산이다. 그 시절 일본과 무역 분쟁이 일어나자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소환해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했던 사실도 기억한다.

역사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그 보고서가 국가의 공식 기록물로 남겨진다. 대한민국 정사(正史) 편찬의 기본 사료가 된다. 무분별하게 역사를 법으로 만들 때가 아니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제정된 무수한 역사 특별법에 문제점은 없는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요소는 없는지를 재검토할 시점이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기술해야 한다.

보훈정책도 정확하게 평가하고 공정하게 시행돼야 한다. 국가유공자 유족은 자녀 중에 1명에게 월 7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동학농민운동 유족은 지자체가 증손자까지 전원 월 10만원씩 수당을 지급한다. 그런데도 또 다시 특별법을 개정해 대상을 고손자까지로 확대하고 국가에서 중복 지원하려 한다. 국회는 황당한 동학 특별법 개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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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역사학자·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