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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업] [기고] 우리가 진정 소유하고자 했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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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서강원 iH인천도시공사  주거사업본부장

서강원 iH인천도시공사 주거사업본부장

“집은 토담집이었다. 그 집은 그 집 아이들에게 작은 우주였다. 수십 군데 이사를 다니고 나서 겨우 장만한 아파트. 돈은 은행에서 나고 먹을 것은 슈퍼에서 나는 것으로 아는 아이는……,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알지 못한다.”

수험 필독서로 유명한 공선옥 작가의 수필 『그 시절 우리들의 집』의 일부다. 유년시절 삶의 근간이던 토담집과 치열하게 얻은 아파트, 두 ‘집’에서의 삶을 대비해 ‘집’의 의미를 처연하게 표현했다. 삶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것은 집의 공간·색깔·냄새·철 따라 변화하는 빛일 것이다. 늘 생각해도 결국 주거란 인생과 추억이다. ‘여기가 내 집이구나’라는 안식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딘들 마다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 자신 또한 집과 삶을 동일시하며 신나게 뛰어 토담과 흙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신발을 벗어던지곤 무엇인지 모를 벅참으로 집에 발을 들이던 어린 소년이었다. 여름의 대청마루, 겨울의 사랑방과 표현 못할 평안의 공간. 지금 우리에게 집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삶의 시작과 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집은 슬픔의 역사와 함께 어느새 우리의 마음속에 삶의 안식과 추억을 샘솟게 할 영혼의 우물이 아닌 돈과 부를 만들어 낼 투자의 대상인 물질로써만 인식되며 다가왔다.

일제강점기의 경제적 수탈, 한국전쟁 후 피해 입은 주택들, 경제개발에 따른 산업화가 불러온 급격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유발한 도시화로 무분별해진 주거지, 이러한 스프롤(sprawl·난개발)로 달동네 중심의 불량 무허가 판자촌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임대주택이 등장한 것이다. 정부는 ‘임대주택건설촉진법’(1984년)과 ‘임대주택법’(1993년)으로 체계를 마련하여 주거의 불안정성 해소를 위해 노력했고, 2003년부터 청년, 저소득층 등 장기임대주택과 80만 호 임대주택 공급계획, 중대형 공공임대주택 건설공급 계획 등을 통한 주거안정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 노력에는 앞서 언급한 편안함, 추억과 생활, 공간의 향기와 빛깔까지도 아우르는 ‘삶의 의미’를 품을 편안한 집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50년 이상 장기 거주를 위한 영구임대주택, 30년 이상 안정적 거주의 국민임대주택, 신혼부부 등을 위한 행복주택 등이 그것이다.

4차 산업시대, 산업발전이 삶의 편리를 가져오고 있지만 한편으로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 우리들의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편리와 소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삶을 품고 담을 공간과 품위 있게 영위할 영혼의 안식처를 갖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고, 그로써 삶을 더욱 안정적이고 의미 있게 구성하는 과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임대주택은 더 이상 ‘열등재’가 아닌 주거 충족의 장(場)이다. 하지만 입지, 소형, 부실 등의 부정적 이미지에 정부는 ‘표준건축비’ 현실화와 ‘입지 개선’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삶의 어려움과 직결되는 입지를 위해 교통의 편의성 등을 고려하며 선정단계부터 거주의 동기 극대화에 집중하는 중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갖길 원하는 시대다. 임대(賃貸)의 반대말은 소유(所有)일 것이다. 그토록 얻고자 한 것에서 진짜 추억, 계절의 느낌, 가족의 온기를 소유할 수 있었는지, 집은 없고 값이 올라야만 하는 부동산만 남은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끝으로 법정스님의 ‘무소유(無所有)’를 인용해 살고 추억할 집에 대한 마음을 적어본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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