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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김인호 럭스나인 대표_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한 매트리스

중앙일보

입력

20년이 넘는 봉급생활을 청산하고 50세에 창업의 길로 뛰어든 늦깎이 창업가 김인호 럭스나인 대표가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는 누워 있는 동안 생체 신호를 수집하고 모니터링하는 최첨단 매트리스로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혁신 제품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늦깎이 나이에 창업에 나선 김인호 럭스나인 대표.

혁신 제품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늦깎이 나이에 창업에 나선 김인호 럭스나인 대표.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의 헬스케어 전문관에서는 국내의 한 매트리스 회사가 22평(72.73㎡) 남짓 되는 꽤 큰 규모의 부스를 차리고 몰려드는 방문객을 바쁘게 맞이했다. 매트리스 회사가 헬스케어라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가 싶겠지만 이 회사가 선보인 제품은 의료기기가 분명하다. 이 매트리스는 누워 있으면 심전도는 물론 호흡, 체온, 맥박 등 바이털사인이 측정되고 낙상 감지나 낙상 후의 상태가 즉각적으로 보고되는 기능까지 갖췄다.

매트리스를 의료기기로 탈바꿈한 주인공은 바로 국내 매트리스 기업 럭스나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침대 회사인 씰리의 한국 법인 대표로 16년간 일해온 김인호 대표가 2011년 창업했다. 그는 올 초 혁신적인 매트리스를 선보이기 전까지 가성비 좋은 토퍼와 매트리스 제품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지난 7월 13일, 방배동 럭스나인 본사에서 만난 김인호 대표는 “럭스나인 토퍼는 ‘대일밴드’나 ‘스카치테이프’처럼 라텍스 토퍼 매트리스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라고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에게 토퍼로 시작한 럭스나인이 어떻게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들게 됐는지 성장과 혁신의 스토리를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설명을 위해 회사의 시작 단계로 거슬러 올라갔다.

“씰리 코리아에서 일하며 업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터라 틈새시장을 알고 있었죠. 그게 토퍼였고요. 씰리는 물론 큰 침대 회사들은 토퍼를 생산하지 않아요. 토퍼는 이불보다 두껍고 매트리스보다 얇은 중간 두께의 깔개로, 바닥에 깔아 사용하거나 매트리스 위에 올려 사용하는 매트리스의 대체품 혹은 보조 용도로 여겨지거든요. 한마디로 작은 시장인 거죠. 작은 기업들만 토퍼를 취급하다 보니 품질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어요. 제대로 된 토퍼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싶어 럭스나인의 첫 아이템으로 정했습니다.”

품질 좋은 라텍스 토퍼로 시장 장악

김 대표의 예상대로 제품에 한 끗 차이를 더하니 소비자의 불만이 불식됐다. 오히려 입소문이 났는지 초기엔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못했는데도 럭스나인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는 “두께감이 있고 질 좋은 라텍스를 사용했고, 커버는 완전히 분리해 세탁할 수 있게 만들었더니 품질이 좋고 편리하다면서 칭찬하더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김 대표는 “코스트코의 테스트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머지않아 정식으로 입점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럭스나인이 판매한 토퍼 매트리스는 37만 장이 넘고 매출액은 약 630억원이다. 또 코스트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토퍼 제품이며, 네이버 라이브 쇼핑에서는 동 시간대 판매하는 100여 개 제품 중 판매량 1등을 놓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작은 회사지만 토퍼 업계에서는 ‘럭스라인 토퍼’가 토퍼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인지도가 높다”고 자랑했다.

토퍼 매트리스 성공 이후 럭스나인은 라텍스 토퍼 매트리스를 비롯해 라텍스 매트리스, 메모리폼 매트리스, 스프링 매트리스까지 제품군을 확장했다. 여느 매트리스 회사라면 모두 있을 법한 라인업이지만 럭스나인의 차별점은 적정 가격과 좋은 품질, 한마디로 ‘가성비’라고 김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최근 ‘브랜드’라는 옷을 입은 매트리스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소비자의 부담이 크다”면서 “퀸 사이즈를 기준으로 스프링 매트리스는 100만~150만원 정도면 적당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서 그는 “물론 원가가 비싼 라텍스를 사용하거나 하이엔드 기술로 만드는 매트리스는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럭스나인 제품은 100만~200만원대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그렇다고 품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김 대표가 설명했다. 제조업에서 품질은 생존과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늘 엄격하게 관리해왔다며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원자재인 라텍스를 베트남, 스리랑카, 중국 등 세 개 국가에서 들여옵니다. 저희가 주문하는 라텍스의 두께는 6㎝예요. 그런데 한번은 3㎜ 정도 얇은, 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이 들어왔더라고요. 미세한 오차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엄중하게 문제를 다뤘습니다. 협상의 여지 없이 컨테이너 두 대 물량을 그대로 반품했어요.”

럭스나인의 활약상과 위상을 듣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안정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던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헬스케어 시장에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김 대표가 직접 궁금증을 풀어줬다.

“토퍼 제품으로 업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얻고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워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은퇴를 고민할 나이에 사업에 도전한 이유가 혁신 제품으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개인적인 목표 때문이거든요. 언젠가 이룰 혁신을 위해 작은 기업이지만 매년 매출액의 5%를 R&D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됐고 남들처럼 저 또한 보건과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때 매트리스를 의료기기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요.”

김 대표는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지표인 바이털사인, 즉 심전도, 호흡, 체온, 맥박 등을 측정할 때 안정적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침대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지 않은가. 매트리스야말로 바이털사인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었다. R&D팀에 ‘바이털사인을 측정할 수 있는 매트리스를 만들자’고 주문했고 2~3개월 만에 연구진이 매트리스에 관련 ICT 기술을 융합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그간 기술팀에 과감하게 투자한 덕에 연구진이 빠르게 실력 발휘를 해줬다”며 웃어 보였다.

럭스나인의 혁신의 결과물. 매트리스이자 의료기기인 이 제품의 이름은 ‘바디로그’다. 바디로그는 크게 두 가지 제품으로 나뉜다. 매트리스의 특정 위치에 몸을 올려두면 바이털 시그널이 측정되는 ‘바디로그 매트리스 기어’와 가슴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패치를 붙여두면 생활하는 내내 바이털 시그널이 측정되는 ‘바디로그 체스트 패치’다. 지금까지 30여 개월간 연구가 진행됐고 럭스나인만의 특허 기술들로 빠르게 완성되고 있다. 1년 후면 정식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이라고 김 대표가 설명했다.

“바디로그 매트리스 기어에 활용된, 매트리스에 누워 신호를 측정하는 기술은 국내에서 발명특허를 출원한 지 6주 만에 특허등록 결정이 났습니다. 현재 해외에서는 출원을 한 상태고요. 이 외에도 동작 및 자세 측정 기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피트니스 영역을 넘어 임상 영역에서도 유효성을 가진 기술로, 사용자의 동작 및 자세에 따른 심전도와 생체 신호를 분석해 사용자의 통증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고령 환자와 만성질환자, 중환자까지 다양한 환자에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발하고 유용한 제품이지만 김 대표는 “굳이 먼 미국에서 열리는 CES에서 시제품을 선보인 데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의료 현장이 아닌 곳에서 수집되는 정보라는 점에서 일종의 원격의료로 분류될 텐데, 우리나라는 아직 원격의료 시대까지 갈 길이 멀잖아요. 원격의료 시장이 개방됐거나 개방되고 있는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유럽 등 해외시장부터 공략하려고 합니다. CES 일정에 맞게 시제품을 제작하느라 수억원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만한 결과물이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의 바람대로 바디로그는 CES에서 해외 기업과 의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미국의 의사들과 요양원, 보훈병원 관계자들은 ‘측정 기술 자체만으로는 차별화되기 어렵지만 동작과 자세에 관련된 특허가 있다는 점, 누워서 편안하게 생체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김 대표는 “부스를 방문했던 미국의 빅테크 기업, 글로벌 통신회사 두 곳과 현재 업무 제휴를 논의 중”이라고도 밝혔다.

원격의료 시장 열린 해외부터 공략

올해 1월 CES 헬스케어 전문관에 부스를 차리고 바디로그 제품을 선보였다.

올해 1월 CES 헬스케어 전문관에 부스를 차리고 바디로그 제품을 선보였다.

동시에 데이터 사업도 준비 중이다. 바디로그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될 바이털 데이터가 럭스나인에는 새로운 먹거리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해 곧바로 데이터를 가공하고 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김 대표의 눈은 젊은 스타트업 대표의 눈빛 못지않게 반짝였다. 제품을 소개하고 보여주느라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고, 이야기에 열중할 때면 의자 끄트머리에 겨우 앉을 정도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뜨거운 열정에 거침없는 도전 정신까지. 이토록 사업가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그가 어떻게 20년 넘게 회사원으로 일했을까. 역시 그는 “회사에서도 늘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도전해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며, 씰리에서의 활약상 하나를 소개했다.

“미국 회사의 한국 법인에는 자주적인 결정권이 많지 않았죠.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소비자는 엄연히 달라요. 생활환경이 다른 만큼 필요한 제품도 다르죠. 한국 소비자들은 침대를 살 때 매트리스와 프레임을 같이 사는 편인데 씰리는 ‘프레임은 팔지 않는다’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한국에서만이라도 프레임을 같이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오랫동안 설득했어요. 10년을 주장한 끝에 ‘김 대표가 이겼다. 프레임도 팔아봐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냈습니다.”

씰리에서 16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도 도전을 택했다. 도전에는 여러 가지 옵션이 있었지만 창업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이유는 앞서 말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유산을 남기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90세의 절반인 45세가 되니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한 명상 프로그램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유심히 고민했는데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회사를 차려 혁신적인 제품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일정한 이익을 환원하자는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혁신은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이익 환원 활동은 창업 3년 차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10년 가까이 총영업이익의 6%를 기부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6이란 숫자가 한창 투자가 필요한 기업에는 버거울 때가 많지만 김 대표는 이를 줄일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앞으로 6%의 결과물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착한 기업’과 ‘영리 기업’이 공존할 수 있을지 묻자 단호하게 ‘당연하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안정적인 월급쟁이로 20여 년을 살다가 불안정한 사업가로 12년을 살아온 김 대표에게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물어봤다. 우선 그는 ‘신뢰’와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사람에게 얻은 신뢰’와 ‘신뢰로 얻은 사람’이 자양분이자 자산이 되어준다고 덧붙였다.

신뢰와 사람을 보고 사업 이끌어야

“기술, 중요하죠. 그런데 훌륭한 기술을 찾고 개발하고 융합하는 건 결국 ‘사람’이에요.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요. 럭스나인도 사람의 힘으로 커온 회사입니다. 이제 막 문을 연 회사가 어떻게 미국의 대형 마켓인 코스트코의 테스트마켓에 바로 입점할 수 있었을까요? 씰리에서 일하며 관계를 쌓은 코스트코 관계자들이 제가 필요한 순간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코스트코에 입점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정도로 어려워요. 신뢰를 얻는 비결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것입니다. 실천하긴 어렵지만 방법은 간단해요. 전 지금까지 납기일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고, 또 한 번도 품절을 내지 않았습니다. 축적된 신뢰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대할 겁니다.”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 이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젊은 대표들에게도 조언을 부탁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 대표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머리 쓰지 마세요.” 그는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막연한 두려움에서 자라난 작은 욕심이 젊은 대표들에게 유혹이 될 겁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으려는 유혹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낼까, 손해를 보지 않을까 계산하게 되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겠지만 ‘상대방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그랬습니다. 럭스나인에서 처음 제품을 만들 때 제조 공장의 사장님께 ‘매출액의 49%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어요. 당연히 판매비, 관리비, 인건비를 제하기 전의 금액이고요. 그 대신 회사의 첫 제품인 만큼 제대로 만들어주길 기대했죠. 이때 판관비를 제해 49%의 결과물을 줄여볼까라는 유혹이 생길 수 있어요. 유혹을 떨치고 약속을 지켜낸다면 신뢰가 쌓이고 좋은 사람이 모일 겁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머리 쓰지 말아야 합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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