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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달 넘어 화성으로 가자” 중국, 정부·국회·대학 삼각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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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2019년 한국·중국·일본 3개국이 대학 행성과학 전공자를 위한 ‘여름학교(Summer School for Planetary Science and Exploration in East Asia)’를 열었다. 그해 11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서다.

이름난 행성과학자인 짐 헤드와 햅 맥스윈 교수가 강단에 섰다. 짐은 아폴로 착륙지 선정과 우주인 교육에 참여해 그들이 수집한 월석을 분석했다. 짐이 칼 세이건과 일화를 들려주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햅은 마스 패스파인더를 비롯한 무인 화성탐사에 참여한 경험이 많다. 매일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은 조별 과제로 분주했다. “2020년 중국국가항천국(CNSA)이 발사하는 톈원 1호의 착륙 후보 장소는 화성의 크리세평원과 유토피아평원이다. 어디에 착륙할지, 근거가 뭔지, 착륙선과 로버 중에 무엇을 보낼지, 어떤 연구를 할지, 과학적인 이유를 대라.”

미국 이어 우주강국 2위 부상
달 뒷면에 세계 최초로 안착
최첨단 행성과학자만 700여명
체계·전략 실종된 한국 우주청

우한 여름학교 이듬해, 중국은 톈원 1을 쐈고 유토피아평원을 택했다. 2021년은 말 그대로 화성의 해였다. 2월 9일 아랍에미리트의 ‘알 아말’이 궤도에 진입한 데 이어, 2월 18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퍼서비어런스 로버가, 5월 14일에는 톈원 1이 표면에 안착했다. 톈원과 퍼서비어런스 로버를 나란히 비교하기는 힘들다. 중국은 궤도선과 착륙선, 로버를 동시에 보냈는데, 어쨌든 미국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다.

원격탐사 세계 1위, 우한대학

중국의 첫 화성 탐사선 톈원(天問) 1호를 실은 창정(長征) 5 Y4 로켓이 2020년 7월 23일 하이난성 원창 우주발사장 발사대를 이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의 첫 화성 탐사선 톈원(天問) 1호를 실은 창정(長征) 5 Y4 로켓이 2020년 7월 23일 하이난성 원창 우주발사장 발사대를 이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톈원 1의 과학연구를 맡은 기관 중 하나인 중국지질대학은 교육부가 지정한 ‘특1급 대학’이다. 이들은 과거 아프리카 자원공정을 주도했고, 지금도 중국 광공업과 석유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곳을 나온 오우양 지유안(歐陽自遠) 박사는 중국과학원의 행성과학 권위자다. 그는 일찌감치 달 자원과 헬륨3의 미래 가치를 예견했으며, 달 탐사 계획인 ‘창어’ 연구책임자로 정부에 유인 달 탐사와 화성 탐사를 건의했다.

한편 우한대학은 원격탐사에 특화돼 2023년 미국 메릴랜드대(2위)와 MIT(3위), 스탠퍼드대(10위)를 제치고 원격탐사 분야 세계 대학 1위에 올랐다. 2017년부터 부동의 1위다. 원격탐사는 항공기와 위성으로 기상과 산림, 국토 정보를 수집하고 산불과 오염물질의 이동, 농작물 작황을 감시·분석하는 일이다. 극지해로 개척은 물론 국방·안보에도 없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원격탐사 20위권 안에 5개, 100위권 안에는 14개 대학을 보유한 나라다. 중국지질대학과 우한대학은 달·화성 탐사에도 참여한다. 이처럼 같은 도시에 과학과 응용 연구에 탁월한 2개 대학이 있는 게 우연일까. 우한대학은 교육부가 ‘특 A1급 대학’으로 통 크게 지원한다.

중국은 달 탐사를 통해 우주기술을 체계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창어 1, 2호는 달의 3D 지도를 작성했고 3호는 로버인 ‘옥토끼’를 착륙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뒤이어 4호는 달 뒷면에 최초로 안착했다. 통신위성 ‘오작교’는 창어4호에서 나온 옥토끼 2호의 명령과 자료 전송을 담당했다. 2020년 말에 쏜 5호는, 1m 깊이로 구멍을 파 흙 1.7㎏을 싣고서 귀환했다.

중국은 보란 듯 그 흙을 마오쩌둥의 고향 샤오산에 바쳤다.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이념과 신화와 맞닿아 있다. 창어(嫦娥)는 달의 여신이다. 2019년 중국국가항천국(CNSA)의 장 커젠 국장은 “중국은 10년 안에 과학기지를 짓고 유인 달탐사를 실현한다”고 선포했다. ‘중국판 M2M’(달에서 화성까지)이다.

지난 7월에는 우리나라 제주에서 여름학교를 열었다. 4년 만이다. 참가 학생이 받은 과제는 이렇다. “아르테미스 우주인이 달 남극에 가면 어느 경로로 이동해 어떤 성과를 거둘 건지,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탐사 임무를 설계하라.” 한국 학생을 포함한 일부 참가자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아이디어를 내놨다.

한 중국인은 지금 창어 5호 데이터로 논문을 쓰는 중국의 행성과학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다누리호에 실린 우리 과학 장비는 셋, 논문 쓸 사람은 국내에 40명이 채 안 된다. 데이터의 양만 봐도 턱이 없다. 그러나 최근 연구개발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우리 젊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미래가 불안하다. 정부의 인건비 충당 계획도 미봉책일 뿐이다.

부국강병 떠받치는 인재양성

공교롭게도 중국에서는 요즘 행성과학자가 ‘뜨는 직업’이란다. 행성과학은 천문학과 대기과학·지질학·해양학·빙하학·지구물리학·우주화학을 망라하는 다학제 분야로, 달·화성 탐사를 포함한 우주탐사의 꽃이다. 4년 만에 만난 중국 L 교수는 창어 5호가 큰 성과를 거두자 교육부가 5개 대학에 행성과학과 신규 설립을 인가했다고 전했다. 한국에는 그런 학과가 없다.

우주 강국 2위인 중국은 산업정보기술부와 그 산하의 CNSA, 인민해방군에서 우주계획을 주도한다. 최상위 전략을 짜는 곳은 중앙행정기관인 국무원, 위원장은 총리며 대부분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이다. 중국의 우주 계획에는 9개 특성화 대학과 둥펑 같은 6개 우주도시가 포함됐다. 최고 행정기관(국무원)과 입법기관(전국인민대표회의)과 당이 한 몸처럼 움직인 결과다. 그들이 베이징에 CNSA를 두고 정책 기능만 부여한 이유는 정책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한마디로 중국 우주전략의 목표는 부국강병이며, 인재 양성은 그 수단 중 하나다. 한국의 우주청 밑그림에서는 그러한 체계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는 왜곡됐다. 최상위 전략과 범부처 협력이란 큰 그림도 실종돼 버렸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