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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현호의 법과 삶

수술실 CCTV설치법은 시대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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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국회는 의료법 제38조의 2를 신설해 지난달 25일부터 수술실 CCTV 설치법을 시행토록 했다. 의료기관 개설자는 수술실 내에 CCTV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과 의료인 면허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우리 의료법은 1962년 종이문서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사이 세상은 디지털 시대로 발전하였고, 이에 맞는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맞는 자연스러운 법 개정이다.

1962년 종이시대 의료법 제정
디지털 시대의 정보기록일 뿐
환자의 알권리 보장하는 수단
과다한 예외조항이 되레 문제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일부 의료인 단체는 “수술실 CCTV가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할 것이다.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될 것이며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는 훼손될 것이다”라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는 입법 취지와 목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CCTV 녹화녹음은 진료정보를 기록·보관하는 방법을 하나 더 추가한 데 불과하다. 의료법은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갖추어 두고 환자의 주된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 등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의견을 상세히 기록하고 서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종이문서로 의료행위를 상세하게 작성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CCTV 녹화녹음보다 더 상세하게 기록 보관할 수 없다. 의료인들은 실시간 수술현장이 그대로 녹화녹음이 가능하게 되어 수술 시나 그 후 상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환자는 자신의 진료정보를 가감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2011년 전자정부법 제정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전자정부를 구축했다. 국민의 각종 정보를 디지털로 저장하여 공공기관정보, 입찰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주민등록등본·인감증명서 등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가장 엄격한 문서인 피의자 신문조서도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2를 신설하여 신문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인권보장의 대명사인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가 증거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과 비교할 때 수술실 CCTV법을 이제 발효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교통사고 발생 시 잘잘못을 따지던 분쟁이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는 차량 블랙박스와 길거리 CCTV 때문이다. 수술실 CCTV 녹화녹음은 의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환자와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의료인들은 수술 시 최선을 다하지만 환자 측에서 수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대리수술을 하였다고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마취 환자를 성추행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명예훼손을 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를 한두 번 경험한 의료인 중에는 이 법 시행 이전에 CCTV를 설치했다가 환자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피소돼 벌금형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이번 수술실 CCTV 설치법은 입법 목적에 맞지 않아 이른 시일 안에 개정돼야 한다. 첫째, 녹화녹음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 사유가 너무 많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동의한 경우에 한하여 녹화녹음 할 수 있고, 응급수술, 위험도가 높은 수술, 전공의가 참여하는 교육 관련 수술 등은 녹화녹음을 거부할 수 있다. 응급 중증질환인 경우 환자가 의료인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대학병원에서의 수술은 대부분 녹화녹음이 거부될 사유에 해당하여 사실상 녹화녹음을 할 수 없다. 녹화녹음을 의무화하도록 개정돼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둘째, 환자는 물론 수술을 집도한 의료인조차 CCTV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 형사고소나 민사소송,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신청을 한 경우에 한하여 CCTV 영상을 볼 수 있다. 진료정보에 대한 알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단순히 CCTV 영상을 보기 위해서 소송을 남발할 위험이 있어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 셋째, 보관 기간도 30일로 너무 짧다. 진료기록이나 수술기록은 의료법상 10년인 점에 비추어 CCTV 영상보관기간도 10년으로 늘려야 한다.

모든 법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지켜야 할 최소한 행위 지침을 알려줌으로써 사회가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이다. 형법에 상해죄·사기죄 등 범죄를 규정한 것은 국민을 잠재적 상해범·사기꾼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상해·사기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수술실 CCTV 설치법 역시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료 정보를 저장함으로써 의료인과 환자 모두 보호하기 위해 제정했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을 계기로 디지털시대에 맞도록 새로운 의료법 제정이 필요하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