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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R&D 예산, 줄이려면 제대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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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30면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가장 큰 비율(16.6%)로 삭감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분야 예산이 전년 대비 10% 이상 변동하는 것 자체가 평상적이지 않은데다 국가 R&D 예산은 지난 33년간 우상향이었기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내년도 정부 R&D 예산이 올해보다 줄 것이라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막상 현실화하니 과학·기술계 R&D 현장은 당혹감과 함께 조직적인 반발까지 나오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필자는 ‘사이언스’와 ‘네이처’에서 동시에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두 매체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과학자가 왜 없느냐는 것과 예산 삭감이 정부 설명대로 코로나19 등 위기 국면에서 비정상으로 늘어난 예산을 조정하는 정도가 맞는지 궁금해했다. 우선 실명으로 의견을 낸 과학자를 찾아보니 실제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연구 관련 노조나 학생회 간부 정도였다.

예산 대폭 삭감돼 위기감 고조
우수 인재 유출 도미노 막아야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닉슨 패러독스’다. 냉전 중에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닉슨이었고, 닉슨의 방중은 큰 성과를 냈다는 이야기다. 만약 방중한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었다면 나라가 둘로 쪼개졌을지도 모른다. 즉, 지지자에게 확고한 평판을 지닌 정치인이 그 평판과 반대되는 정책을 실시할 경우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R&D 예산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는 큰 폭으로 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아마도 윤석열 정부까지)에서는 증가 폭이 작았다. 대체로 기성 과학자들이 보수 정권을 지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예산 삭감도 보수 정권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과학·기술계 현장에 닉슨 패러독스가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일부 맞는 얘기다. 국가 R&D 예산은 2008년 10조원를 기록한 후 11년 만인 2019년 20조를 넘어섰는데, 최근 4년 만에 10조가 늘어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확 늘어난 것이다. 내년도 예산 25조9000억원은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24조2000억원과 이듬해인 2021년 27조4000억원의 중간쯤이다.

하지만 지난 보수 정권 때처럼 완만한 증가가 아닌 대폭 삭감이라는 점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학·기술계 R&D 현장에서 외환위기 당시에 버금가는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시 국가 경제 위기 속에 많은 연구 인력이 현장을 떠나야 했다.

물론 이번 예산 삭감으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져 ‘R&D다운 R&D’를 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 R&D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사실 ‘규모’보다 ‘배분’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이번 예산 삭감의 취지로 제시한 ‘나눠주기’ ‘뿌려주기’ 사업 정리는 부처별로 파편화·분절화한 연구개발 사업 구조상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업이 나눠주기·뿌려주기인지 정부와 과학·기술계 현장의 인식과 입장이 다르다면 앞으로 정책 실행에서 효과를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전략기술이나 국가첨단산업 등 유망·핵심 분야를 ‘골라주고 밀어주는’ 것은 비단 이번 정부만이 아니라 과거 모든 정부에서 해왔던 일이다. 과거에 이런 선택과 집중의 R&D가 작동했던 것은 민간보다 정부에 우수한 두뇌가 몰리고, 정부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정부가 제대로 골라서 밀어주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뿌려줄 것이냐, 골라줄 것이냐가 아니라 제대로 뿌려야 고를 수 있고, 제대로 나눠줘야 밀어줄 사업·사람·기술을 찾을 수 있다. 이 엄청난 후폭풍을 딛고도 R&D 예산을 줄인다면 정말 ‘제대로’ 줄여야 한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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