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홍성남의 속풀이처방

가정폭력, 모든 범죄의 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세간에 발생하는 각종 범죄에 대한 분석이 난무하지만 결론은 하나, 가정이다. 가정폭력이 모든 사회적 문제의 핵심 원인이다. 가족은 작은 사회집단이지만 아이들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리고 한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정도로 대단하다. 가정폭력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살펴보겠다.

가정폭력을 다룬 보디츠코의 ‘티후아나 프로젝션 200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가정폭력을 다룬 보디츠코의 ‘티후아나 프로젝션 2001’.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학대받은 아이가 폭력성 강해
‘불행의 쳇바퀴’ 끊을 수 없나
사이비 종교의 유혹에도 취약
독재자 추종, 민주주의 흔들어

미국 소아과 의사 켐프는 가정폭력으로 학대받은 아이들은 심한 내적 손상을 입는다고 했다. 두통·복통·말더듬증·야뇨증·불면증에 시달리며 우울증·공포증 등의 정신적 문제를 가진다. 학교에서는 문제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소위 일진들은 대부분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다. 이런 아이들은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밟지 못하고 일탈해서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연쇄살인범이 되기도 한다.

여아들의 경우 어른이 되어 자신이 싫어하는 부모를 닮은 폭력적인 배우자를 고를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집안 환경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래서 배우자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참고 사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반복강박’이라고 하였다. 불행의 쳇바퀴란 뜻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 자신을 불행으로 내모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행동 양식을 반복하며 자신이 박복하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상황을 재현한다.

가정폭력은 대물림된다. 폭력적인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는 폭력적인 가장이 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 나쁜 짓을 재연하는 것이다. 심지어 노부모에게 폭행을 가하고 살해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사이비 교주가 되거나 그를 추종하는 신도가 되기도 한다. 오래전 피지에서 신도들을 학대하는 종교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기이한 것은 학대당한 신도들이 가해자인 교주를 옹호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공격자와 동일시라고 한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그리워하는 것. 더 심한 경우 자기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사이비 교주들은 이런 취약한 심리를 잘 알고 이를 악용하여 착취한다. 신도들을 외부와 차단하여 물리적·심리적으로 감금하고 학대하면 신도들은 교주를 미워하기는커녕 학대의 정도가 심할수록 숭배의 정도가 상승하는 병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이들은 또한 가짜 민주투사가 될 가능성도 높다. 자기폭력성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 대상에게 적개심을 투사하며 선동적 발언을 하고, 스스로 민주투사인 양 연출하는 것이다. 대개 이들은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여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고 상대적 반사이익을 가지고자 할 뿐, 진정한 민주의식이 없다. 빨갱이·친일반역자 등의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정폭력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독재자나 독재자의 추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스탈린이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거의 매일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고 한다. 어린 스탈린은 그런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는데, 어른이 되어 자기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포한 독재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악한의 삶을 살았다.

독재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우리는 교육의 탈을 쓴 학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대를 받을수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른들을 이상화한다. 이것이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이상화하려면 학대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런 현상이 독재국가에서도 발생한다. 즉 국민을 핍박하는 독재자를 칭송하고 우러러보는 사람들, 특히 우리 조상을 학대했던 구 일본제국을 칭송하는 사람들은 학대가정에서 자란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정신과 사공정규 박사는 저서 『마음출구 있음』에서 깊은 대답을 한다. 사람은 어린 시절에는 선택권이 없는 속수무책의 삶에 노출된다.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세상에 본인도 모르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편안함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불행과 고통을 당해도 이것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익숙한 편안함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미래의 큰 고통과 불행보다 당장의 작은 고통과 불행을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삶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낯선 불편감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작동하던 반복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