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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베이비부머 재발견, 다극집중의 국토 개조로 지방시대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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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4년여의 지방 취재에서 그 한마디는 지금도 생생하다. 2019년 2월 경북 의성군 금성여상의 마지막 졸업식 당시 94세 학교발전위원장의 고별사 때다. 폐교를 두고 “이 운명적 대세를 누가 막겠느냐”고 했다. 일제와 해방,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글로벌화를 다 겪은 노옹(老翁)의 ‘운명적 대세’라는 말 만큼 한계상황에 직면한 오늘의 지방 도시를 웅변하는 것이 있을까.

의성군 인구는 지금 5만명으로 30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소산다사(少産多死)가 주요인이다. 한 해 출생아 수가 200명대이지만, 사망자 수는 800~900명대로 고착했다. 여기에 젊은이의 대도시권 유출이 겹쳤다. 전국의 농산어촌은 의성군과 오십보백보다. 지방소멸론도 이제는 피로현상이 역력하다.

인구와 지방소멸은 시대 과제
국민 위기의식이 반전 출발점
정부·국회·각계 협의체 필요
고난도 장기전의 각오 다져야

지방의 인구가 햇볕 든 처마 밑 고드름 꼴이라면, 수도권은 인구도, 각종 인프라도 언덕을 구르는 눈덩이 격이다.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인구 비중은 1960년 20.8%였지만, 2020년 절반을 돌파했다(50.1%). 일본의 도쿄권 인구 비중(29%)과는 비교가 안 된다. 도쿄권에 오사카권·나고야권의 3대 도시권을 합친 비율(52%)과 맞먹는다. 가공할 흡인력이다. 경제력 편중은 더하다. 지난달 7일 기준 전체 상장사의 73%(1918사)가 수도권 소재다. 시가총액 기준으론 81%다.

하지만 수도권 극점(極點) 사회도 반석이 아니다. 수도권도 늙고 있고, 결국은 인구도 준다. 지방의 폐교 쓰나미는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과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가 빚어내는 소산다사의 진군을 막을 마지노선은 없다. 과거 인구 공급원이던 지방은 아이 울음 끊긴 곳이 적잖다. 이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쉽게 입에 올리지만, 고급 두뇌나 숙련 근로자 유치는 일·중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두 나라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세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매력국가론은 ‘선택받는 나라’로 구체화돼야 한다.

우리 고령화율 2046년 일본 제쳐

인구 동태를 전형적 소산다사 국가인 일본과 더 견줘보자. 유엔 ‘세계인구 전망 2022’를 보면 우리는 2046년 고령화율이 37.3%로 일본(36.9%)을 제치고, 2052년엔 40%를 돌파한다. 일본은 2100년까지 40%를 넘지 않는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수인 노년 부양비는 2048년 72.5명으로 일본(72.0명)을 웃돈다. 우리는 2100년까지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넘는 유일한 나라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무기력한 인구 동태, 지방 소멸과 수도권 일극의 일그러진 국토는 한국 사회의 두 개 근본모순이다. 두 사안은 예측 가능한 과학의 영역이지만 국난(國難)으로 치달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정책 실패다. 신의 한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인구 감소 사회, 지방 소멸에 적응해가면서도 그를 완화하는 2개 전장(戰場) 동시 승리 전략밖에 없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는 고난도 장기전의 각오가 불가결하다.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책 결정 과정 정비다. 국민 전체의 위기의식 공유는 상황 반전의 출발점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인구 감소와 균형 발전 정책을 다루는 범국민적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모델은 있다. 스웨덴이 19세기 말부터 반세기에 걸친 출생률 추락의 대반전을 이뤄낸 데는 초당파 인구위원회의 백년대계 정책이 결정적이었다. 정당, 관련 사회단체 대표와 전문가로 구성된 인구위의 정책 보고서가 입법의 모태가 됐다. 아이는 국가가 낳아 기른다는 프랑스의 가족 정책 형성 과정도 유사하다.

일본의 최근 움직임도 주목거리다. 재계·노동계·학계 등 대표 약 100명이 지난해 6월 정책 제언 조직 ‘레이와(令和) 국민회의’를 결성했다. 제언 분야는 정치개혁에 관한 ‘통치구조’, 지속 가능성을 검토하는 ‘재정·사회보장’, 인구감소와 고령사회를 다루는 ‘국토 구상’의 세 가지다. 이에 찬성하는 광역단체장 연합, 기초단체장 연합, 초당파 의원 모임도 생겨나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엔 발족 1주년을 맞아 여야 5당 당수 토론회를 열었다. 국민 총화의 시스템은 일본의 상황 악화를 막는 버팀목이다. 우리도 정부와 관련 위원회, 사회단체, 국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틀을 모색할 때가 됐다. 새로운 형식은 여론을 환기하고 내용을 지배한다. 내년 총선을 새로운 협의체 구성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방의 닫힌 문화는 자멸의 길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다. 방향은 인구 대책과 균형 발전 정책의 접목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방의 급격한 인구 감소가 지방 소멸이다. 이 전제 아래 두 분야의 통합적 미래 비전과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 전략 기조는 ‘수도권은 비워서 살리고, 지방은 채워서 살린다’가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지방에 매력 거점 도시를 더 조성해야 한다. 이른바 인구의 댐 건설이다. 대도시권보다 출생률이 높은 지방의 젊은이가 유출되지 않으면 출생률 저하를 완화할 수 있다. 지방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은 대책의 근간이다. 지방 도시의 인프라 집중(압축)과 도시 간 네트워크도 필수다. 인구 축소 균형 시대에 주거 지역과 복지·의료·상업 시설 등 인프라가 흩어져 있으면 유지가 어렵다. 몸집이 줄면 옷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요컨대 새로운 방향은 다극집중(多極集中)이어야 한다.

1955~74년생 베이비부머에 대한 재발견도 절실하다. 2020년부터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편입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는 올 8월 현재 주민등록인구 165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0%다. 한국 현대사의 게임 체인저였던 이들은 학력이 높고 경제력도 있고 사회 참여 의식이 강하다. 지방의 젊은이 유출 공백을 같은 젊은이로만 메우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메가트렌드인 청년 승자 시대는 지금 저물고 있다. 이촌향도(離村向都) 세대인 베이비부머를 잡아야 한다. 평생 현역 시대를 지방이 선도한다는 적극적 발상도 요구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지방의 열린 문화도 불가결하다. 끼리끼리의 울타리를 쳐놓고 소멸 운운해서는 안 된다. 외부인의 시각은 지역 발전에도 긴요하다. 글로컬(글로벌+로컬) 시대에 지방의 닫힌 문화는 결국 경쟁력을 좀먹는다. 지자체의 축성(築城)은 낙성(落城)의 지름길이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비단 균형 발전 차원만이 아니다. 일류(一流)국가의 조건도 아닐까 싶다. 평생 현역의 틀 만들기와 다극집중의 국토 대개조로 지방시대, 한국시대를 활짝 열어젖혀 보자. 대한민국의 뉴프런티어는 대한민국 안에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