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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69화. 단군신화

중앙일보

입력

우리 민족 ‘한민족’이란 무엇일까요 

오래전, 하늘 위 신의 세계에 환웅이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신의 아들이었지만, 신의 세계가 아닌 땅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죠. 늘 땅을 내려다보며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이에 하늘신 환인은 환웅에게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홍익인간‧弘益人間)’는 명을 내리며 무리를 이끌고 땅으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호랑이와 곰의 소원을 듣고 그들에게 쑥과 마늘을 내리며 동굴에서 수행하게 했는데, 곰만이 끝까지 참아 뜻을 이루었죠. 여자가 된 곰, 웅녀가 아이를 원하자,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맺어져 아이를 갖게 되니 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라 불리는 단군입니다. 단군은 아사달(阿斯達), 또는 평양에 도읍을 세우고 조선을 건국했죠.

벽화에 그려진 신화 속 세상. 별이 그려진 하늘 신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이집트인이 생각한 세상의 질서를 보여준다.

벽화에 그려진 신화 속 세상. 별이 그려진 하늘 신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이집트인이 생각한 세상의 질서를 보여준다.

10월 3일 개천절은 바로 단군이 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훗날 이성계가 조선이란 나라를 세웠기에 이와 구분하고자 고조선이라 부른, 역사상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죠. 사실 단군이 조선을 세운 것이 몇 월 며칠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함경도 지방에서 음력 10월 3일에 단군 탄생을 기리는 풍습이 있어 여기에서 나왔다고 하죠. 1909년엔 독립운동가 나철이 단군을 믿는 종교인 대종교를 세우며 매년 이날 경축행사를 열었는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경일로 정하면서 일제에 맞서 한민족의 정신을 기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본래 음력으로 지내던 개천절을 양력의 같은 날짜로 바꾼 것은 1949년이에요.

개천(開天)이란, 하늘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렸다고도 할 수 있으니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일 수도 있죠. 그래선지 대종교에선 개천절을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 아니라, 환웅이 아사달에 내려온 날로서 기린다고 합니다. 본래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세상의 탄생을 뜻하는 ‘개벽(開闢)’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죠. 한자로 ‘열린다는 뜻의 개(開)’와 같은 뜻의 ‘벽(闢)’이 합쳐진 개벽은 천지개벽이라 하여, 하늘과 땅이 생겨나 열린 것을 말해요. 그런데 하늘과 땅이 어떻게 ‘열리는 것’일까요. 환웅의 이야기처럼 하늘과 땅에 문이 있어 이를 열고 신이 내려온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신화에선 하늘과 땅이 본래 하나였는데, 이 둘이 서로 떨어지면서 나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그려낸 세계에선 땅의 신 게브가 바닥에 누워있고 하늘의 신 누트가 위에 있는데, 이들의 아버지이자 공기와 바람의 신인 슈가 누트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누트의 몸엔 별이 새겨져 있는데, 매일 새벽마다 누트는 태양을 삼켜서 자기 몸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게 하죠. 중국 오나라 신화에선 세계의 알 속에서 거인 반고가 태어났는데, 반고가 자라나며 하늘과 땅을 밀어내어 세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국의 함경도에 전해지는 ‘창세가’에선 합쳐진 세상에서 태어난 미륵이 하늘과 땅을 서로 나누고 땅의 네 귀퉁이에 구리기둥을 세워 고정했다고 하죠.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것은 이처럼 서로 합쳐진 하늘과 땅이 벌어지면서 공간이 생겨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써 사람들이 이 땅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뜻이죠. 이처럼 ‘개벽’이란 단순히 세상이 탄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기념하는 표현이에요.

단군신화에 따르면 환웅이 내려오기 이전에도 지상엔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 하늘과 땅은 그 전에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환웅이 내려온 것이나 조선이 세워진 것을 ‘개천’이라고 부르며 기념할까요. 바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열렸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환웅이 ‘홍익인간’의 뜻으로 지상에 내려올 때 그는 홀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3000명의 무리가 함께 내려왔는데, 여기에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라는 신도 있었죠. 각각 바람과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이니, 문명의 바탕인 농사를 가르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웅은 태백산 꼭대기 신성한 나무인 신단수 아래에 신의 도시인 신시를 세우고 곡식과 수명, 질병과 선악, 형벌 등을 다스리며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해요. 이렇게 환웅으로부터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배우게 된 사람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된 것이죠.

개천절의 주인공인 환웅과 단군은 우리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웅이 내려오기 전 이미 이 땅에 우리 민족이 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환웅과 단군은 짐승과 다르지 않고 사람으로 행세하지 못하던 우리네 조상에게 사람으로서의 마음과 질서를 가르쳤습니다. 짐승이던 곰이 사람이 되었듯,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비로소 우리는 사람이 된 것이죠. 그리하여 환웅과 단군은 유구하게 내려오는 우리네 정신의 조상이 되었어요.

10월 3일 개천절은 우리 민족이 태어난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이는 같은 조상을 둔 같은 핏줄을 이은 후손을 말하지만, 개천절을 기리는 단군신화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여줍니다. 한민족이란 개천절의 정신을 함께 나눈 이들,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라고 말이죠.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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