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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윤의 아트 에콜로지

좋은 건축과 좋은 건축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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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다음 달 도쿄 구도심 미나토구에 ‘아자부다이 힐스’가 완공된다. 1400가구 주거 공간과 사무실·상점·갤러리·호텔과 녹지 광장이 어우러진 주거·업무·문화 복합단지다. 도쿄 구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로 추진된 아자부다이 힐스가 벌써 도쿄의 새 명물로 떠오른 데는 일본 내 최고층 빌딩(아자부다이 힐스 모리 JP타워, 330m)이란 명성뿐 아니라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에게 ‘가든 플라자’ 등 도심의 한 블록 전체의 설계를 맡겼다는 점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땅의 소유주들이 달랐고, 각기 다른 운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쿄시는 주요 시행사인 모리그룹과 오바야시 그룹, 건축주들과 협의를 통해 토머스 헤더윅에게 10년에 걸친 재개발 마스터 플랜을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당시만 해도 토머스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디자이너도 아니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그의 독특한 ‘씨앗 대성당’ 작품이 화제가 됐고 런던의 빨간 이층버스, 런던올림픽 성화봉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다.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나 도시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모리 그룹과 오바야시 그룹은 이 40세의 젊은 영국 디자이너의 천재성과 혁신 마인드를 높이 사 도쿄시 최고의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다.

도쿄 구도심 재개발 작업 화제
‘천재’ 디자이너 알아본 도쿄시
중국은 해외 건축가들과 협업
건축주의 안목이 도시를 키워

도쿄 구도심 재개발로 주목받는 아자부다이 힐스. 토머스 헤더윅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사진 CDBOX for Mori Building]

도쿄 구도심 재개발로 주목받는 아자부다이 힐스. 토머스 헤더윅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사진 CDBOX for Mori Building]

도쿄뿐 아니다. 상하이 엑스포는 토머스에게 멋진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해주었다. 상하이 티안 안 중국투자개발사가 진행하고 있는 ‘1000개의 나무’ 레지던시 아파트 작업이다. 아자부다이 힐스와 ‘1000개의 나무’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기획·설계에서 완공까지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상하이시는 황하강변에 시멘트로 일관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이에 또 하나의 고층 아파트를 짓는 대신 똑같이 분양해야 할 분량의 아파트를 짓되 건물의 높이를 낮추고 길게 펼쳐진 나무를 담는 화분을 담는, 기존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혁신적인 아파트 디자인의 설계안을 수용했다.

디자인과 공사에 10년이 걸린 ‘1000개의 나무’ 레지던시는 내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아파트 프로젝트는 한꺼번에 분양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격차를 두고 분양해 가는 펀드구조를 만들어 아파트 단지의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가며 개발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는 특징도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년간 혁신적 건축 디자인을 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가점을 주고,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규제를 풀어가며 해외 건축가들의 협업을 장려하였다. 베이징 자금성 근처의 후통거리에는 이미 쿠마 켄고·자하 하디드·렘쿨하스·위니마스 등 중요한 건축가들의 특징 있는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국가의 지원에 의해 공간이 제공됐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시대의 중요한 문화재 가옥을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변형하여 디자인됐다. 중국은 실시 설계를 국가가 운영하는 한 회사가 독점한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디자인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역 건축가들을 교육·양성하는 인력개발장이 되는 듯하다.

최근 한국의 건축시장은 매우 흥미롭다. 해외 건축가들의 본격적 등장과 협업이 시작됐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 올해 프리츠커상을 받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미술관, 헤그조그 앤 드뫼롱의 송은아트스페이스, 마리오 보타의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렘 쿨하스·마리오 보타·장 누벨이 디자인 한 리움 등 글로벌 건축 스타들의 열전이 시작되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토머스 헤더윅의 스튜디오는 서울의 노들섬 설계 디자인 공모에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미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 베쓸 등의 작업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게 있다. 좋은 건축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점이다.

건축가의 뛰어난 디자인과 창의성·도전정신은 매우 중요한 시작이지만, 이러한 것을 현실로 실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클라이언트, 즉 건축주들의 선견지명과 안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앞선 훌륭한 건축과 성공 경험이 있어야만 그것과 “똑같은 것을 해달라”고 주문하는 건축주가 아니었을까. 예술적 창의성은 언제나 그것을 믿어주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에 의해 빛을 발하곤 한다. 좋은 건축주가 있어야 비로소 좋은 건축가가 나올 수 있다.

아자부다이 힐스는 도심 안에서 자연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팀랩과 같은 미디어 미술관을 담았다. 또 하나의 도쿄의 마인드 마크가 될 건축의 개관이 새삼 부럽게 느껴진다.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