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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 수백억 달러 들여 정보조작" 신화사 "미국이 정보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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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12면

서방 vs 중·러 미디어전쟁 격화

서방 vs 중·러 미디어전쟁 격화

서방 vs 중·러 미디어전쟁 격화

미국과 서방에 맞서 온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치열한 사이버전·여론조작전·영향력전·미디어전에 열중하고 있다. 내년 11월 5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와 6월 6~9일의 유럽의회 선거를 각각 8개월과 13개월 남긴 시점에서 중·러가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은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응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가짜뉴스 대응조직인 국제관여센터(GEC)는 지난달 28일 중국정보전략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어떻게 글로벌 정보환경을 재편하려 하나’라는 제목이다. 미국이 중국의 정보전략 관련 보고서를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무부 사이트에 따르면 보고서는 ‘정보환경 재편’이라는 외교적 제목과 달리 내용에선 중국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벌이고 있는 ‘물밑 전쟁’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내용은 ‘중국이 매년 수백억 달러를 들여 외국에서 정보조작을 시도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이 프로파간다·허위정보를 동원해 세계 정보환경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으며, 정보전으로 국제여론 주도를 노린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중국의 정보전·미디어전의 목적에는 대만의 대외활동을 제한하고 ‘대만은 중국의 성(省)’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국제사회에 확산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영향력 확대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케이블TV 등 현지 미디어에 투자해 중국이 원하는 뉴스와 주장을 확산하려고 시도해 왔다. 중국인이나 친중인사를 국제기관의 수장을 맡도록 지원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제임스 루빈 GEC 조사관은 “(중국 정보전·미디어전 관련) 퍼즐 조각을 모으면 세계의 핵심 지역에서 정보 우위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숨 막히는 야욕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이러한 정보 조작을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가치가 서서히, 지속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등을 향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도 활발한 것으로 지목됐다. 지난 7월엔 중국 해커들이 미 국무부 계정에서 6만 건의 e메일을 해킹했으며, 피해자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업무 담당자라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중국이 사이버전 활동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외교력·정보력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같은 달 또 다른 중국 기반 해커가 보안이 취약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시스템에 침입해 미 정부기관을 포함한 약 25개 기관의 e메일 계정을 공격했다고 MS가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월 6일 MS 클라우드의 허술한 보안 문제가 이미 2021년에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해킹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당국은 해킹 관련설을 부인했다. 신화사는 웹사이트에 ‘미국의 정보전’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미국이 정보전과 세균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7월 ‘중국 첩보·비밀공작 증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간부가 중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러시아는 다국어 24시간 방송채널인 RT와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스푸트니크 등을 동원해 왔으며,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 이들 영어나 다국어 매체를 여론전·미디어전에 대대적으로 이용해 왔다.

러시아는 지난 미국 대선 때는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너그룹이 운영하는 IRA(인터넷연구국) 등을 동원해 러시아에 유리한 후보가 당선하도록 공작을 펴기도 했다. 미국은 이 때문에 2018년부터 바그너그룹에 대한 제재를 실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인터넷매체인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뉴욕 카르디에 매장에서 110만 달러가 넘는 3개의 다이아몬드를 수표로 구입했다’는 가짜뉴스를 확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하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이 내용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영어 인터넷 매체인 ‘더 네이션’이 발행일자가 9월 22일이라고 적힌 수표 사진과 함께 지난 2일 처음 게재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건 맞다. 하지만 수표에 적힌 22일에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남편과 함께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머물렀다. 가짜뉴스를 정보전의 무기로 활용하는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 준 사건이다.

귀를 기울일 점은 루빈 조사관이 “정보환경 변화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전·안정에도 손해를 끼친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중국의 정보전·미디어전이 한국이나 나토·호주·일본 등 미 동맹국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도 사이버전·여론조작전·영향력전·미디어전에 더욱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미디어전에 대비해 현재 아리랑TV와 KBS월드 등에 국한된 영어 채널을 더욱 확대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한국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우리 손으로 정확하게 알리는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영어방송 인력의 양성과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글로벌 미디어전이 시작됐으며, 권위주의 국가의 공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영어 방송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영어방송 인력은 정보전·미디어전의 전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전력 확보를 게을리하면 자칫 한류나 국제적 위상, 경제력 등 한국의 성취가 가짜 뉴스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해외 방송망을 확충하고 있는 이들 영어 채널을 21세기 국방력의 하나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정보 당국도 이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고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뉴스와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프랑스의 프랑스24 같은 24시간 영어 뉴스채널을 별도로 설립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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