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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스피드·안전성서 부동의 정상-메르세데스 벤츠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돌프 히틀러는 인류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지만 독일국빈들에게는 지금도 2대력작으로 꼽히는 공적이 남아있다.
아우토반(고속도로)과 독일전역을 뒤덮고 있는 울창한 삼림.
속도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은 독일의 자동차공업발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잘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잘 달리는 자동차를 만든 것이다.

<아우토반의 제왕>
메르세데스 벤츠승용차가「아우토반의 제왕」이라는 명형을 얻은 것은 벤츠가 아우토반에서 최고 시속 2백60㎞까지 주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일본의 도요타·닛산 승용차도 아우토반에서는 벤츠에 길을 비켜 준다.
독일에서는 한때 자동차의 고속주행에 따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아우토반에서의 속도제한을 검토했으나 독일자동차가 다른 나라의 자동차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속도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 등으로 결국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도사한이 없는 아우토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세련된 수입 규제책인 셈이다.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유럽각국들이 대개 한 두개씩의 유명자동차메이커를 갖고 있지만 독일은 벤츠·BMW·오펠·폴크스바겐·아우디 등 5개에 이르고 있다.
이중에서도「부의 상징」으로 알려진 벤츠는 단연 선두에 서있다.
벤츠의 명성은 철저하게 기술력에서 비롯됐다. 벤츠의 역사는 곧 자동차기술 개발의 역사다.

<최초의 가솔린차>
세계최초의 가솔린자동차를 특허 등록한 것은 벤츠의 창업사인 칼 벤츠였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그는1886년 40여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수년동안의 연구개발 끝에 가솔린 자동차를 개발, 독일의 특허청에 등록한 것이다.
등록번호는 37435. 이름은「가솔린 동력발생에 의해 움직이는 탈 것」.
비슷한 시기에 역시 엔지니어 출신의 고트리프 다임러가 다임러 모터사를 세우고 가솔린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다임러와 벤츠는 서로 죽을 때까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현재 베르세데스 벤츠사의 모기업인 다임러 벤츠 그룹은 벤츠사와 다임리사가 다임리가 죽은 뒤인 1926년 수많은 경쟁회사들을 물리치기 위해 합병한 것이다.
메르세데스는 합병 전 다임러사의 자동차가 얻은 애명.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는 유럽 각국에서 자동차 경주가 많았는데 에밀 옐리네크라는 오스트리아출신의 사업가가1899년 자신의 딸 이름인「무슈 메르세데스」라는 가명으로 다임러의 자동차를 타고 출전, 우승한 것이 메르세데스라는 브랜드를 얻게된 계기였다.
양사의 합병이유에 대해 벤츠사의 홍보총책 리케박사는 『당시 독일에만 자동차회사가 84개나 되는 등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더 좋은 앞날을 위해서 힘을 합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뒤 미국의 GM·포드 등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상륙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합병후 l930년대의 벤츠는 히틀러가 벤츠승용차를 타고 앉아 오른손을 뻗어 인사를 받을 만큼 독일의 「자존심」을 상징했다.
벤츠는 이후 수백 종의 신차 개발을 통해 유럽의 자동차 경주를 휩쓸었으며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명품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심었다.
최고의 안전성, 최고의 스피드를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엄청난 기술개발투자에 의해 가능했다.

<신 차 수백 종 개발>
벤츠는 I95l년부터 충격 테스트 등 자동차 안전시험을 했으며 연간 18억 마르크(8천4백60억원)를 순수한 기술개발투자비로 쏟아 붓고 있다.
웬만한 고급승용차에는 모두 달고 있는 첨단브레이크장치 ABS와 충돌 때 운전석 앞에서 튀어나와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에어백은 벤츠가 슈투트가르트시의 이웃에 위치해있는 보시사와 공동 개발한 것이다.
벤츠는 한걸음 더 나가아 인공위성을 이용해 교통상황을 한눈에 보면서 운행할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 장애물을 자동차가 스스로 식별할 수 있는 「아이스」시스팀을 개발해두고 실용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
벤츠는 또 충돌 때 엔진이 내려앉아 운전석으로 엔진이치고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하고 있다.
안전성뿐만 아니라 스피드는 벤츠의 기술력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벤츠는 이미 1938년 시속 4백32·7㎞의 자동차를 만들었고 1939년께 시속6백50㎞의 레이스 카 제작에 착수, 차체디자인까지 마쳤으나 미국에서의 주행시험을 앞두고 2차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중단되기도 했다.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개발된 기술을 1백% 제품에 반영시키는 품질관리는 더 중요한 명품의 조건이다.
벤츠는 이점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불량률 0·2∼0·3%라는 수치가 그것이다.
비결은 독특한 품질관리제도.
벤츠의 11개 공장중 가장 큰 진델핑겐의 공장에는 4만5천여 명의 종업원이 일하고있는데 이중 3천명이 품질관리만을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15개의 조립라인에서 이상이 발견되는 즉시 처음 공정으로 되돌려보내 결함을 보완하고 있다.

<2중으로 품질체크>
진델핑겐공장의 품질관리매니저 괴벨씨는 『조립라인마다 품질관리사가 이중으로 체크하기 때문에 완제품의 불량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밝혔다.
한가지 독특한 것은 일본의 닛산자동차가 공장을 완전 자동화하는「꿈의 공장」을 지향하는데 비해 벤츠는 핸드메이드(수제작)를 고집하고 있는 점이다.
『기계보다 인간의 손이 가장 정교하다』는 벤츠 측의 설명이다.
닛산은 자동차조립과정의 자동화율을 3년 내에 기술한계 치인 50%까지 높일 계획인 반면 벤츠는 20%를 밑돌고있고 앞으로도 자동화율을 더 높일 뜻이 없다는 것이다.
벤츠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연간 56만대.
생산대수로 보면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올해 약70만대)보다 오히려 적지만 다임러 벤츠그룹의 매출액은 약34조원으로 GM·포드·도요타에 이어 세계 4위(89년)에 올라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매출액은 그룹전체의 74%를 차지한다.
벤츠는 워낙 안전성과 기술력을 내세우는 탓인지 마키팅은 별 특징이 없는 듯 하다.
벤츠본사의 아시아지역 마키팅담당 토마스 바우만씨는 『차를 파는 것만이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고 아프터서비스를 홍해 고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키팅 논을 폈다.
그는 또 『한국시장은 5∼6년 뒤에나 좋은 시장이 될 것』이라며 한국시장에 대해 신통치 않다는 반응을 나타내면서도 한국정부의 높은 관세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았다.
벤츠가 일본에 연간 2만5천∼3만대, 싱가포르 및 홍콩에는 2천∼2천5백여대씩 팔고 있는데 한국은 관세장벽 때문에 2백여대(89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엔 2백 여대>
보급기종인 벤츠l90형이 독일에서 3만8천 마르크(약1천8백만원)에 팔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불평이 시장개방압력의 모습을 갖출 날도 멀지 않은 듯싶다.
벤츠는 최근 EC(유럽공동체)통합에 대비해 창사이래 최대규모의 기업간 합법·제휴를 시도하고 있다.
벤츠는 85년 전기·전자메이커인 AEG, 86년 항공기제조희사인 도르니에·MTU(엔진메이커)· 전투기메이커MBB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다임러 벤츠그룹은 작년7월 자동차부문의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전자부문의 AEG, 우주·항공부문의 DASA, 기타부문 등 4개 분야의 전문그룹을 형성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벤츠 그룹과 일본 미쓰비시그룹의 기업제휴.
지난9월19일 양사의 회장이 합의한 제휴내용을 보면 민수용 IC(집적회로)의 생산협력, 우주분야의 정보·기술자교류, 자동차의 개발 및 생산협력, 부품 상호조달, 자동차판매회사 설립 등 11개 분야에 걸쳐 있다.
벤츠는 독일기업의 취약점인 마키팅 부문의 보완이 필요했고 미쓰비시는 EC통합전에 유럽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기술력을 보완하차는 속셈이다.
이 같은 국제기업제휴를 상징하듯 슈투트가르트시 운터튀르카임의 벤츠기념관에는 30년대 일왕 히로히토(유인)가 탔던 벤츠승용차가 대형일장기 밑에 전시돼 있다. 【글 길진현 기자·사진 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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