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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민심, 총선 결과와 일치…"밀리면 끝장" 여야 사활 걸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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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호 06면

[여의도 톺아보기] 추석 여론과 선거 상관관계

“추석 민심을 잡아야 총선 승리가 보인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은 물론 당 지도부 차원에서도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이른바 ‘명절 효과’를 선점해야 향후 총선 레이스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수도권과 지방, 노년층과 젊은층의 정치적 견해와 시각이 자연스레 섞이고 교환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형성된 추석 밥상 민심은 이후의 정국 흐름을 좌우하는 ‘대세 여론’으로 자리매김하곤 했다. “명절 민심이 곧 선거의 승패와 직결된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오랜 정설로 굳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픽=이정권·김이랑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김이랑 gaga@joongang.co.kr

주목할 부분은 이 같은 정치권의 속설이 단지 심증적인 차원을 넘어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서도 입증돼 왔다는 점이다. 2008년 18대 총선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최근 네 번의 총선을 보더라도 전년도 추석 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와 이듬해 총선 결과가 거의 일치하는 등 뚜렷한 상관관계를 맺어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총선 6~7개월 전 추석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정당이 그 여세를 몰아 총선 승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추석을 전후로 지지율 경쟁에서 뒤처진 정당은 끝내 역전에 성공하지 못한 채 초라한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실제로 2008년 총선을 6개월 앞둔 2007년 10월 16~17일 KBS와 미디어리서치가 추석 후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은 47.3%, 대통합민주신당은 15.5%로 큰 격차를 보였다. 이 추세는 그대로 총선까지 이어져 한나라당은 과반인 153석을 차지한 데 비해 통합민주당은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 지역구 전체 득표율도 43.5% 대 28.9%로 한나라당이 14.6%포인트나 여유 있게 앞섰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4년 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이런 흐름은 그대로 유지됐다. 당시 총선은 이명박 정부 막바지에 실시돼 정권 심판론이 거셀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때도 여당은 반년 전 추석 여론 지형에서 이미 앞서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011년 9월 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35.4%로 민주당(22.1%)보다 13.3%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듬해 총선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은 전체 지역구에서 43.3%를 득표하며 18대 총선에 이어 또다시 과반인 152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연대해 출범한 민주통합당은 127석 확보(37.9%)에 머물며 2회 연속 패배를 맛봐야 했다.

2016년 20대 총선은 ‘추석 민심=총선 결과’라는 공식과는 결이 다른 흐름을 보인 선거로 꼽힌다. 전해 추석 직후인 10월 6~8일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41.0%로 새정치민주연합(21.0%)에 크게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으며 123석을 획득한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후신)에 1당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여기엔 ‘친박 감별사’ 논란과 당대표 옥쇄 파동 등 전대미문의 공천 파문이 겹치면서 선거 막판 민심이 급격히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당시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공천을 둘러싼 여당 내부 분란의 여파가 일파만파로 확산된 결과 주요 격전지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석패한 게 총선 전체의 승패를 가른 것이다. 특히 총선 지역구 전체 득표율에서는 새누리당이 38.3% 대 37.0%로 앞섰다는 점에서 여당 입장에선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여당발 공천 논란이란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추석 민심이 총선까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는 게 수치로도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후 2020년 21대 총선에선 다시 추석 민심과 총선 결과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9월 24~26일 한국갤럽의 추석 직후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7.0%, 자유한국당은 23.0%를 기록했다. 이듬해 총선 결과는 지역구 163석에 비례대표까지 총 180석을 획득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은 103석(비례대표 포함)을 얻는 데 그쳤다. 지역구 전체 득표율에선 41.5%를 기록해 민주당(49.9%)과의 격차를 6개월여 전 추석 민심 때보다는 꽤 좁혔지만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추석 민심 효과는 대선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박근혜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던 이명박 후보는 대선을 1년여 앞둔 2006년 추석을 계기로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결국 당내 경선에 이어 대선 승리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사실 한국 정치가 워낙 역동적이다 보니 선거 막판까지 여론이 요동치는 경우도 적잖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민심이 마냥 출렁이기만 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론엔 ‘날씨’도 있고 ‘기후’도 있다. 날씨는 날마다 바뀔 수 있지만 기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 일단 가닥이 잡히면 큰 흐름 속에서 매일 작은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전체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번 형성된 추석 민심이 이듬해 총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큰 것도 이런 속성 때문이다.

이처럼 추석 직후 여론의 흐름이 총선 결과와 직결된다는 게 역대 사례를 통해 증명되면서 여야 정당도 “지금 밀리면 뒤집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추석 민심 잡기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최근 여권이 전임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과 허위 인터뷰 논란을 쟁점화하고 시대전환과의 합당을 전격 추진하는 것도, 야권이 전면적 국정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총리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인 것도 추석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과 정국 주도권 강화를 노린 전략적 행보의 일환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손자병법 ‘형편(形篇)’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전략이 나온다. 먼저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들어놓은 뒤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선 승리할 수 있는 상황과 지형부터 갖춰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한국 정치에서 총선이란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먼저 추석 민심을 잡아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건은 여야 모두 30%대 지지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비호감도 또한 60%에 달하는 현실 속에서 누가 먼저 중도층 민심을 얻으며 치고 나갈 수 있느냐다. 추석 이후 과연 어느 당이 선승구전의 흐름을 선점할 수 있느냐도 여기에 달려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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