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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명품도 사봤다…'가성비 끝판왕' 이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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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년째 신혼여행 ⑥ 튀르키예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금각만 해협과 갈라타 다리. 중앙의 높은 탑이 랜드마크인 갈라타 타워다.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금각만 해협과 갈라타 다리. 중앙의 높은 탑이 랜드마크인 갈라타 타워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다(인구 약 1590만 명). 사람들로 복작대는 소란스러움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당연히 심심할 틈이 없다. 이스탄불 사람은 유독 호기심과 정이 많아서, 여행자를 좀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히 우리처럼 둥글둥글하니 사람 좋게 생겼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확률이 더 높다.

아내의 여행

튀르키예에서 가장 오래 된 ‘그랜드 바자르’ 시장. 15세기부터 동서양 문물이 활발히 거래된 장소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오래 된 ‘그랜드 바자르’ 시장. 15세기부터 동서양 문물이 활발히 거래된 장소다.

튀르키예와는 인연이 남다르다. 이 나라에서만 한 달 살기를 다섯 번이나 했는데, 그중 세 번을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요즘 간혹 해외 뉴스에서 이스탄불 소식을 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바로 돈 때문이다. 최근 몇 년새 자이로드롭을 탄 것처럼 환율이 떨어져 버려서다.

튀르키예의 화폐 단위는 ‘리라’다. 이스탄불을 처음 찾았던 2012년에는 1리라가 우리 돈 700원 정도였다. 당시 ‘양고기는 튀르키예가 싸다’는 소리를 듣고 고깃집을 갔는데 웬걸, 140리라(약 10만원)가 적힌 계산서를 보고 ‘여기도 유럽이구나’ 싶었다.

그다음 해 이스탄불에 돌아왔을 때는 1리라가 600원꼴이었는데, 서울과 비슷한 수준의 물가였기에 부담 없이 먹고 즐길 수 있었다. 다시 1년 뒤 방문 때는 급기야 원·리라 환율이 500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당시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현지인도 여러 번 목격했다.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분주한 모습.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분주한 모습.

리라 가치가 200원 아래로 떨어진 2018년의 어느 날. 우리는 이스탄불의 버버리 매장 앞을 둘러싼 긴 줄을 목격했다.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생긴 환차익을 누리고자 많은 사람이 명품 매장에 몰려든 거였다. 종민도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명품 안경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난해 팬데믹 끝물에 방문했을 때는 1리라가 100원대를 간신히 유지 중이었는데, 흡사 동남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10만원 주고 먹었던 양갈비를 단돈 1만5000원에 맛볼 수 있었다.

현재는 원·리라 환율이 50원대까지 떨어졌다.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건값이 급격히 상승하는가 하면, 여행객을 상대하는 관광지의 물건값도 부쩍 올랐단다. 높아진 물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이 튀르키예로 떠날 적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한 달 살기’처럼 관광지 투어보다 로컬 문화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라면 떨어진 환율을 몸소 느낄 수 있을 테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행에서 경비만큼 중대한 문제도 없지 아니한가.

남편의 여행

붙임성이 탁월한 이스탄불 사람들.

붙임성이 탁월한 이스탄불 사람들.

첫 ‘이스탄불 한 달 살기’는 끔찍했다. 숙소가 문제였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경험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악의 집이었다. 숙소는 6개월 전 예약을 마쳤다. 꼼꼼히 따져 골랐지만, 새벽 6시에 도착한 숙소의 몰골은 처참했다. 양말과 옷가지 뭉치가 구석에 쌓여 있었고, 방 전체에서 찌든 내가 났다. 평생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신 아버지의 서재보다 냄새가 강력했다. 우리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집주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더러우면 좀 치워 줄까?”

고급 음식으로 통하는 양갈비도 튀르키예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고급 음식으로 통하는 양갈비도 튀르키예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세계 곳곳의 시장에서 호객 행위를 당해봤지만, 손님을 불러 앉혀 놓고 그들의 전통차를 무한 리필해주는 나라는 튀르키예가 처음이었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중 가장 큰 곤혹이 바로 이 느닷없는 초대였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건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혀 놓고(그도 여의치 않으면 가판 구석에 세워 놓고) 전통차 ‘차이’를 연신 따라줬다.

튀르키예의 전통차 차이.

튀르키예의 전통차 차이.

이스탄불에서 한 달 살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나도 이제는 제법 능청이 생겼다. 요즘은 차이를 한잔하고 싶으면 ‘그랜드 바자르’ 시장으로 씩씩하게 들어간다. 차이를 얻어먹는 나만의 방법도 있다. 일단 인상 좋아 보이는 상인의 가게 앞에서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아지! 부 네카다르?(아저씨! 이거 얼마예요?’)하고 물어보면 대번 점원이 가게 안쪽으로 손짓한다. 자리에 앉으면 차이를 대접받을 수 있다. 이제는 더듬더듬 대화도 주고 받는다. ‘네레리슨(어디서 왔냐)’ ‘귀네이꼬레(남한)’하는 식의 간단한 회화지만, 차이 한 잔을 마시는 동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첫 이스탄불 여행 때 우리는 결국 담배 냄새보다 역했던 그 방을 빠져나왔고, 급하게 다른 숙소를 구했다. 새 숙소는 바닷가를 끼고 있는 근사한 집이었다. 비용이 맞지 않았지만, 우리의 사정을 들은 집주인이 기꺼이 방을 내줬다. 처음엔 그들의 대책 없는 붙임성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넘치는 인간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탄불에 다녀온 뒤로 나도 제법 오지랖이 넓어졌다. 서울에서 외국인 여행자를 만나면 넘치게 참견을 하고 싶어진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한 달 살기 정보· 비행시간 11시간 · 날씨 봄, 가을 추천 · 언어 튀르키예어(어순이 한국어와 유사하여 익히기 수월한 편) · 물가 현지 동네 물가는 태국 방콕 수준(단,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지 물가는 달러나 유로에 맞춰져 다소 비쌈) · 숙소 500달러 이상(집 전체, 중심부에서 30분 내외 거리)

김은덕, 백종민

김은덕, 백종민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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